제목 | 전례헌장 119항의 본문과 해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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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헌 | 작성일1999-08-02 | 조회수1,702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119: "어떤 지방, 포교 지방의 국민들은 그들의 종교 생활이나, 또는 사회 생활에 있어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고유한 음악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종교적 감정을 형성하기 위해서나 그들의 특성을 전례에 적응시키기 위해서 제39조 및 제40조의 정신을 따라 그들의 음악에 정당한 평가와 합당한 자리를 부여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에게서 음악적 교양을 습득케 하는 데 있어 서는 그들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 국민의 전통적 음악을 학교에서나 거룩한 행사에서 장려할 수 있게 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8. 선교지의 성음악(119조) 이미 비오 12세의 회칙 「Musicae Sacrae Disciplina」는 선교지의 성음악에 대해 분명히 문제를 제기했다. (Ibid., n 65; 66; 68 참조) 즉 선교사는 "성음악 문제를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파리 음악회는 1957년 7월, 이 문제에 대해 3가지 희망을 표명했다. 즉 로마식 전례에 이상적인 노래로 그레고리오 성가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 어느 지역에 특유한 전통에 의한 민족의 고유한 양식의 곡을 발달시킬 필요가 있다. 교회의 교육 기관이나 선교 책임을 맡은 자는 상술한 곡의 창작에 협조해야 한다. 1958년 예부성성의 지침은 이와 같은 생각에 따라 전례와 전례 성가에 관한 선교사의 양성을 주장하고 있다. 선교사나 선교지의 사제들로부터 얻은 여러 가지 증언을 비교 검토한 결과, 예부성성은 매우 오래된 풍요한 문화를 가진 민족과 그와 같은 문화를 갖지 않은 민족 사이에 분명한 구별을 두었다. 지침의 취치는 민족이 갖는 종교적 정신을 전혀 별개의 것으로 바꾼다는 그릇된 구실하에 종교적 정신을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미신을 제거하고 종교적 정신을 정화하여 이를 서서히 세련시킴으로써 드디어는 그리스도교적으로 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주된 방법으로 신심 행사의 사용을 교회는 권해 왔다. 전례의 형식이 엄격히 정해져 있는데 비해 신심 행사의 형식은 더욱 단순하고 적당히 변경해 여러 가지 뉘앙스를 보태고, 또 민족의 요구나 관습에 될 수 있으면 맞도록 바꿀 수 있다. 그 때문에 신심 행사는 일종의 전례 임무를 다하고 이 점에서 선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한다.
또 교회는 전례 성가에 모국어를 사용함으로써 일보 전진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각 민족의 혼을 나타내는 선율과 리듬을 전례문에 보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나라의 음악이 그와 같이 되는 데는 전례 헌장이 지적하고 있듯이 '종교 생활이나 또는 사회 생활에 있어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어느 나라 음악이 전통적으로 오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불충분하다. 20세기 사람들의 혼을 표현함과 동시에, 또 그리스도의 혼도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 다. 전례 의식 안에서 사람들의 혼을 그리스도의 혼과 일치시키는 것이어야만 한다. 전통적인 것이라도 비종교적인 음악은 가톨릭의 의식에 합당한 것이 아니다. 한편 비록 종교적인 음악이라도 그리스도의 정신, 즉 평화와 신뢰와 감사와 사랑의 정신을 결여한 음악은 결코 사용할 수 없다. 교회는 '종교적인 감정을 육성하고' 더욱이 전통적인 요소를 보유하면서 내용이 새로운 음악을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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