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7주일 잠원본당 라우다떼성가단 복음묵상시간에 드릴 말씀입니다.
토요일 안으로는 올릴려고 부랴부랴 했는데, 어느새 주일로 넘어왔군요... 게다가 웬일인지 업로드가 자꾸 실패하는데, 이번엔 잘 되길 바라면서... 좋은 주일 맞으시기 바랍니다.
99. 10. 3. 연중 제 27주일(군인주일)
제1독서 이사 5,1-7(주님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가문이다.)
제2독서 필립 4,6-9(나에게서 배운 것을 실행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복 음 마태 21,33-43(주인은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이다.)
<준비 및 진행 : 이봉섭 바오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복음은 지난 주 복음에 바로 이어지는 말씀으로, 예루살렘 입성 이후 대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다 같이 마태오 복음 21장을 펴 주십시오. 오늘 복음은 33절에서 4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복음읽기>
"또 다른 비유를 들겠다. 어떤 지주가 포도원을 하나 만들고 울타리를 둘러 치고는 그 안에 포도즙을 짜는 큰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는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도지로 주고 멀리 떠나갔다. 포도철이 되자 그는 그 도조를 받아 오라고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하나는 때려 주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쳐죽였다. 지주는 더 많은 종들을 다시 보냈다. 소작인들은 이번에도 그들에게 똑같은 짓을 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알아 보겠지’ 하며 자기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 아들을 보자 ’저자는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이고 그가 차지할 이 포도원을 우리가 가로채자.’ 하면서 서로 짜고는 그를 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어 내어 죽였다. 그렇게 했으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 오면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악한 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제때에 도조를 바칠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서에서, ’집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고 한 말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오늘의 비유가 어떤 뜻인지 짐작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소작인들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며, 그들에게 간 종들은 예언자들입니다. 그리고 주인의 아들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 즉 선민으로 삼으시고 지도자들에게 맡기셨는데, 이들은 하느님의 뜻을 저버렸고, 그래서 보내신 예언자들마저 박해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신 주님께서는 계속 기다려 주시고, 예언자를 보내시고, 끝내는 당신 외아들까지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외아들마저 죽여 버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 때 하느님의 심정이란 어떤 것일까요?
이것은 오늘 제 1독서인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나의 임은 기름진 산등성이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네. 임은 밭을 일구어 돌을 골라 내고,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지. 한가운데 망대를 쌓고, 즙을 짜는 술틀까지도 마련해 놓았네. 포도가 송이송이 맺을까 했는데, 들포도가 웬 말인가?... 내가 포도밭을 위하여 무슨 일을 더 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해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하느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은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들포도같이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제 이루어질 일은 그 때 유다인들 스스로가 대답한 것처럼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이 맡겨지는 것입니다. 배척받은 예수님으로부터 이방인들 가운데 교회가 세워집니다. 시편의 말씀대로 집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 대신 그리스도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포도원 소작인에 관한 이 말씀은 이제 우리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먼저 이 질문에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 그리고 이 세상은 우리의 것입니까?
많은 경우 내 인생 내가 산다, 이 땅은 내 땅이다 하는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생명과 세상을 있게 하는 데에, 이것이 흘러가게 하는 데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며 생각해 보십시오. 내 생명, 시간, 재능과 건강은 내가 만든 것인가? ... 당장 우리는 자기 자신이 살아갈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주인이 맡겨 준 데에서 살아가는 소작인인 것입니다.
다시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주인인가, 소작인인가?
개인적으로 저 자신의 신앙 여정에 있어서 여기에 대한 대답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인생을 보는 눈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바뀔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자기 자신이 주인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생을 자기만을 위해, 또는 자기들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 많이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기도를 드릴 때에도 ’자신의 뜻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 생각은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가대에서도 비슷합니다. 성가대의 주인은 성가대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성가대 주인은 역시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성가대라는 주님의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가대 역시 자기들의 동아리로 생각해서, 참다운 전례를 드릴 생각보다는 사람들 스스로에게 재미있는 노래와 활동을 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렇게 주인이 누구이신지 망각하고 사는 것, 이런 모습들이 이어지는 것, 이것은 결국 다시금 포도밭에서 들포도를 내는 일이 아닌지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소작인이라면 자기 마음대로가 아니라 주인의 뜻에 맞게 열심히 일해서 소출을 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좋은 열매를 얻으면 이것은 사람들 사회에서도 소작인에게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피조물이며 종인 우리를 당신 자녀로 불러 주시는 하느님께서 그 주인이시고, 우리에게 크나큰 은총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런 좋은 열매의 모습을 우리는 오늘 제 2독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고상한 것과 옳은 것과 순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과 덕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들을 마음 속에 품으십시오. 그리고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들은 것과 본 것을 실행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우리만의 힘으로 이런 열매를 얻어야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 품 안에 있고, 성령의 은총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 열매는 결국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제 다시한번 복음을 읽으면서 자기 스스로 느끼고 묵상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묵상>
이 세상과 저희의 주인이신 하느님, 저희가 주님께서 주신 이 삶을 당신 뜻에 맞게, 당신 보시기에 좋게 살도록 인도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