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많은 작사가를 기대하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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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헌 | 작성일1999-10-07 | 조회수2,135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클레멘스님 반갑습니다. 김종우님께서 대신 게시해 주신 글 (420과 421번) 잘 읽었습니다. 성가 가족들도 많이 공감하시는 것 같고요. 저도 문제되는 곡들을 상당히 찾아 놓았습니다만, 이경우님께서 앞으로 ’찬미가와 가사’에 대한 부분을 더 깊이 연구해서 좋은 글을 올려주실 수 없는가 하고 청을 드려봅니다. 가사와 선율을 보시는 안목을 보고 부탁을 드려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찬송가의 가사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가지로 연구해 밝혀 놓고 있지만 아직 가톨릭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손을 못 대는 형편입니다. 그만큼 찬미가 가사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전문적으로 찬미가의 가사를 쓰는 사람이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한 분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좋은 가사를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우리 한국 교회가 좋은 찬미가 작곡가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생각합니다.
성가도 성악곡이고 성악곡은 가사가 먼저입니다. 가사를 음미하고 가사의 흐름을 선율로 만들어야 하겠죠. 이런 예는 라틴말로 된 거의 모든 노래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고전 음악사에서 우리는 딱 세 사람의 작곡가를 공부하게 됩니다. Haydn, Mozart 그리고 Beethoven이죠. 교향곡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Haydn이 Mozart나 Beethoven과 같이 훌륭한 성악곡 (전례문을 대본으로 한 음악 제외)을 작곡하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생전에 좋은 시인을 얻지 못하였다는 것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노래 작곡을 위한 가사는 정말 중요합니다. Beethoven도 합창 교향곡을 쓸 때 쉴러의 가사를 이용했고, Mozart의 경우, 비극, 희극, 고전 오페라의 모든 분야를 정상으로 올리게 된 것도 Lorenzo da Ponte라는 시인의 훌륭한 대본 때문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좋은 성가, 찬미가를 위해서는 우리도 좋은 작사가들이 꼭 필요합니다.
성서나 전례서에서 영감을 얻은 창작이 되어도 좋고 paraphrase한 것도 아주 좋습니다. 아니면 자신의 신앙심에서 우러나온 것도 좋겠죠. 그러나 이 경우에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 벗어나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그 예는 옛날 연미사 (Requiem Mass)의 부속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속가의 선율은 제가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Dies irae dies illa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곡입니다. 그러나 이 곡은 새로운 전례에서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가사의 내용이 "그 진노의 날이 오매 "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의 교리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새로운 그리고 영원한 삶의 시작이지 하느님 진노의 날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가톨릭 교리와 맞지않는 이 노래는 더 이상 사용될 수가 없어졌습니다.
저도 한글을 깨우쳤고 어릴 적 누구나 그러하듯 시도 쓰 보고 작문도 해 보았지요. 그렇지만 저는 성가 가사를 만들 염두를 내지 못합니다. 저의 글짓기 실력은 한글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정도이니까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고양시킬 수 없고,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 생활성가, 복음성가, CCM이 등장하면서 온갖 종류의 가사들이 ’성가’(?) 작곡을 위하여 등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례에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시와 문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제가 살펴보아도 아주 신파조로 된 가사가 너무나 많은 것 같아요. 제가 김지윤님이 질문하신 글의 답을 준비하면서 그분께서 예로 드신 성가(?)의 가사와 김승덕이가 부른 "아베 마리아"란 유행가의 가사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의미없는 미사여구의 남발인 가사 그리고 아예 종교적인 색채도 없는 가사들이 많이 있죠. 더구나 요새 유행하는 대중음악을 이용하다 보니 말과 선율의 조화는 생각도 못할 지경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제 교수님이 작곡하시는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가사를 큰 종이에 적어 놓고 단어 위에 마다 액센트 표시를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이 만들어 내는 노래들은 액센트를 받아야 하는 단어의 부분은 언제나 음악의 강박에 오도록 배려되어 있습니다. 우리 작곡가들도 이런 노력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이 작곡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우선 생각나는 대로 멜로디를 만들어라 그리고 가사를 .... 이거 뭐가 거꾸로 된 작곡기법이 아닌지 모르겠군요.
전 신앙인이라 해서 전례에 사용하기에는 곤란한 대중 음악 풍의 가사를 만들지 못한다거나 이런 풍의 노래를 작곡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전례에 사용하기를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저의 생각입니다. 미신자들을 위해, 청년,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현대 대중음악의 형식을 빌어 복음의 정신을, 아니면 인간의 참된 가치관에 대해 노래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 교회에서도 많은 배려를 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전례 때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교 차원에서 말입니다. 이번에 H.O.T. 문제로 대구에서 발생한 어떤 여고생의 자살 이야기를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그 학생의 부모를 우리가 탓하겠습니까? 아니면 죽은 그 여학생을 탓하겠습니까? 제가 생각하는 것은 적어도 인간의 생명이란 귀한 것이어서 설령 부모의 꾸중을 듣는 한이 있더라도 마음 대로 끊을 수 없다는 가치관을 가르치는, 교회의 정신을 전파하는 데에는 그들이 좋아하는 노래말과 작곡 형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런 가치관을 전하기 위해서는 좋은 의미와 옳은 가사를 이용하여 음악성 높은 곡을 만드는데 관심있고 관련있는 분들께서 많은 노력을 기울어 주셔야겠죠. 진부한 가사와 평범한 음악은 남의 가슴을 울리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성가 가족 여러분!!!!! 지금 한국 교회 음악의 발전을 위해서는 좋은 시인, 가사만을 전문으로 하는 작사가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도 봉헌 때나 영성체 때에 그럴 듯한 곡을 가지고 성가대의 특송도 부를 수 있을 겁니다. 모두가 똑 같은 찬미가 형식의 16소절 아니면 32소절 짜리 음악 뿐이니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글 짓기에 재질이 있는 우리 성가 가족들 중에서 전례에 사용할 노래 말만을 전문적으로 만드시는 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한번 용기를 내어 공부해 보고 싶은 분은 없으신지요?
이경우님 쓰신 가톨릭 성가의 문제점 (1)의 경우에도 (지적하신 가사와 선율의 일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새로운 미사 기도문을 개정하는 작업에 작곡가들은 한 명도 참여하지 못 한 것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저는 봅니다. 그리고 작사를 전문으로 하는 분도 있었다면 아무리 기도문을 제대로 고친다 하더라도 음악으로 작곡될 기도라면 더 좋은 노래 말이 될 수 있도록 의견이 교환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의 어린 양’ 같은 경우의 응송은 음악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가사입니다. 적어도 음악적인 한 동기는 4소절이 가장 적당하다고 보는 데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주어도 대상도 없는 말을 가지고 어떻게 음악을 잘 구성할 수 있겠습니까? 대 영광송에는 "저희에게"라는 말까지 있는데 이곳에는 왜 삭제했는지 알 수가 없죠. 이런 뜻에서 작곡가와 작사가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詩에 관심이 많은 분들의 분발을 다시 한번 촉구합니다.
이 경우님 뵙는 김에 ’찬미가와 가사’에 대한 단견을 두서없이 올렸습니다. 시간나는 대로 제가 생각하는 찬미가 가사에 대해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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