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은혜 속에 용기를(발표회를 마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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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봉섭 | 작성일1999-11-24 | 조회수1,041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오, 주님, 정말 저희가 이 일을 했단 말입니까?"라고도 여쭙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답은 너무나 명백했습니다. 저희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분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참으로 부족한 저희를 도구 삼아 다시한번 당신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지난 11월 20일, 넘치는 은총 속에 잠원동 라우다떼성가단 15회 발표회를 마쳤습니다. 사실 이번에는, 지난해 발표회를 비롯하여 그동안 있었던 여러 변화와 노력들을 발판 삼아 정말 뜻있는 발표회를 이루고 싶었습니다. 구원자 예수님의 일생을 주로 전통 성음악인 다성음악과 그레고리오 성가를 통해 차분히 따라가며 묵상하는 일, 주님께 바치는 합당한 전례음악의 모습에 대해 같이 생각하는 일, 내부적으로 이런 음악에 맞는 소리를 익히는 등 실력을 쌓는 일, 수익금으로 불우이웃 돕기, 무엇보다도 정성된 찬미를 통해 단원들과 참석한 분들의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 그러나 현실은 걱정스럽기만 했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이번 발표회는 전에 없이 많은 곡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몇 배는 연습해야 할 곡들을 한두 달 사이에 연습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삐걱거리는 음악으로는 그런 일들을 하기 어려운데 말입니다. 정말 열심히 하기는 했습니다. 좀 들락날락하다가도 이내 대부분 단원들이 자기 시간 억지로 쪼개고 잠까지 줄여 가며 성당으로 모였지요... 그러나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작다는 것이 갈수록 드러나, 사람들을 애태웠습니다. 발성적인 부분을 상당히 해결했다 싶었을 때에도, 각 파트가 선율을 주고 받는 다성음악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은 악보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고, 또한 무반주 곡들이라 피치가 떨어지고 파트별로 차이가 나기도 했습니다. 발표회 바로 직전까지도 그렇게 불안했습니다... 기도는 전에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갈수록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많은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발표회 바로 전, 작년에 처음 그랬던 것처럼 희망하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묵주기도 5단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카타리나 자매가 그냥 사람들 다 모인 데서 하자고 하더군요. 묵주기도에 생소한 단원들도 아직 많은데 한꺼번에 5단씩 해도 괜찮을까 싶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단장이 단원들을 모았고, 제가 간단히 묵주기도는 성모송을 지겹게 반복하는 기도가 아니라 입으로 성모님을 부르면서 마음으로 신비를 묵상하고 대화하는 기도임을 환기시킨 후 로사리오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동료들이 함께 간절히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머뭇거린 것은 차라리 제 교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속 기도하고 준비하면서, 우리가 노래를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주님께서, 성모님께서 함께 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발표회장으로 올라갔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모두들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과연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부족함을 참으로 놀랍게 채워 주시며 저희에게 당신의 찬미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노래하는 단원들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분명 이전에 저희가 하던 것과는 다른 차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음악적으로 중간에 정확하지 않은 부분, 음이 떨어진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로움은 그런 부족함마저 따스하게 덮어 주었습니다... 앞에서 본 지휘자, 옆에서 들은 반주자도 참으로 주님께서 함께 해 주셨고 그 안에 기도하는 분위기가 가득했다며 정말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연주에 오신 분들께서도 함께 기도하실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고요히 손 모으고 눈마저 감고 들으시던 수녀님들의 아름다운 모습도 계속 기억에 남습니다... 발표회 후, 단원들과 OB들 사이에서도 가장 많이 나온 말이 주님께서 함께 계시며 채워 주셨다, 정말 기도하는 모습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성가단 행보 가운데서 숱하게 주님을 잊었고 자꾸만 주님께 찬미드리기보다는 사람끼리 좋은 음악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놀라운 은총과 채워 주심 가운데 마음모아 기도하며 주님의 찬미를 전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현존을 가슴 벅차게 느끼면서 말입니다. 이토록 기쁜 체험을 허락하신 주님께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요... 저희를 그토록 어렵게 했던 그 상황과 과정들이 생각납니다. 만약 순조롭고 탄탄하게 연습할 수 있었다면 좀더 안정된 마음으로 노래할 수 있었을 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들은 주님 은총을 보기보다는 저희 자신들이 잘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어둠이 사람을 방해하려 하지만 결국 빛을 더 분명하고 아름답게 드러내듯이, 저희를 괴롭히던 어려운 상황들도 결국에는 주님의 현존과 크신 은총을 더욱 밝게 드러내 주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크신 은총과 많은 분들의 사랑을 돌이키며 저는 바쁜 와중에도 다시 또 다시 기뻐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또한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저희의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주님 은총 안에서 그분께 찬미를 바치는 동시에 그분 도구가 되어 다른 분들의 마음까지 울릴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큰 기쁨과 힘이 됩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더욱 참되고 정성어린 찬미와 주님 보시기 좋은 삶을 봉헌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합니다.
그리고 성음악을 하시는 모든 분께서도 다시금 용기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제가 지금껏 저희 발표회를 홍보하고 오늘 또 장황한 글을 쓰는 것은, 그 은혜로움을 함께 나누는 동시에 다른 분들도 함께 생각하고 힘을 얻으시기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희도 수많은 ’동네 성가대’ 중의 하나입니다. 노래하는 사람 중에 성악 전공자 딱 한 명 있습니다. 친구 따라 술 따라 나온 사람 물론 많습니다. 노래가 재미 없다, 전례에 얽매인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저희도 주님 은총 안에 기도하고 노력하면서 성장하고 있고(물론 앞으로도 계속해야지요), 주님의 아름다운 일을 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환경과 세대가 다른 가운데서도 정성을 다한 찬미를 바치며 주님의 도구로 쓰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놀고 싶어하는(누구나 그렇듯이) 사람들 가운데서 기도하자는 말을 꺼내는 것, 우리끼리 재미있는 노래를 찾던 사람들 가운데서 주님께 드리기 위한 성음악을 추구하는 것은 처음부터 쉽지 않습니다. 당장 스스로의 부족함이 느껴져서 망설여지고, 재미없는 사람 또는 잘난 체 하는 사람으로 찍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또 말을 한다 해도 잘 따르지 않아서 지쳐 버리기 쉽습니다. 이것은 저와 제 주변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알면서도 가만히 있다가 그냥 지쳐서 성가대를 떠나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망설임을 접고 그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자신이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부족하게나마 좀더 먼저 참된 것에 접했고 그 안에서 주님의 은총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말 못하고 망설이는 것은 어쩌면 겸손이 아니라 자기만을 지키려는 교만일지 모릅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모든 분들, 특히 성음악과 관계되신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인도하심 안에 참되고 정성된 찬미를 계속하여 바칠 수 있기를... 다시금 너무도 크신 주님께, 그리고 도와 주시고 마음써 주신 모든 분들께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1999. 11. 24. 천주교 잠원동교회 라우다떼성가단 이 봉 섭 바오로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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