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에 있었던 잠원동 라우다떼성가단 복음묵상 내용입니다.
카타리나 자매가 준비한 성탄대축일 묵상내용이 짐정리(이사?) 중에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결국 이것을 먼저 올리게 되었습니다. 늦어서 송구합니다.
99. 12. 26.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제 1독서 집회 3,3-7,14-17ㄱ (3,2-6.12-14)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어버이를 공경한다)
제 2독서 골로 3,12-21 (주님과 함께 사는 가정 생활)
복 음 루가 2,22-40(또는 2,22.39-40) (아기는 자라면서 지혜가 풍부해졌다.)
<준비 및 진행 : 박유정 젬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복음읽기>
모세가 정한 법대로 정결 예식을 치르는 날이 되자 [예수의 부모는]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그것은 "누구든지 첫아들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는 주님의 율법에 따라 아기를 주님께 봉헌하려는 것이었고 또 주님의 율법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정결례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성령이 머물러 계셨는데 성령은 그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죽기전에 꼭 보게 되리라고 알려 주셨던 것이다.
마침내 시므온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전에 들어갔더니 마침 예수의 부모가 첫아들에 대한 율법의 규정을 지키려고 어린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왔다. 그래서 시므온은 그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님,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 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아기의 부모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을 듣고 감격하였다.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또한 파누엘의 딸로서 아셀 지파의 혈동을 이어받은 안나라는 나이 많은 여자 예언자가 있었다. 그는 결혼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같이 살다가 과부가 되어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없이 단식과 기도로써 하느님을 섬겨 왔다. 이 여자는 예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에 바로 그 자리에 왔다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이 구원될 날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의 이야기를 하였다.>
아기의 부모는 주님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들 다 마치고 자기 고향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날로 튼튼하게 자라면서 지혜가 풍부해지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이 날은 신자들이 나자렛의 성가정을 특별히 기억하고 본받도록 하기 위하여 제정된 날입니다. 17세기 이후 성가정에 대한 공경과 신심운동이 발전하고 여러 수도 신심 단체가 조직되자, 교회는 1921년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첫 주일을 성가정 축일로 제정했고, 1969년에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성탄 후 첫 주일로 바꾸었습니다.
성당에서 하는 결혼식에선 성가정을 이루겠다는 약속을 신부님 앞에서 맹세합니다. (제 기억엔…맞죠?) 우리 라우다떼에도 다음 달에 결혼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 분들도 그런 맹세를 하실 것이고 성가정을 만드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가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에 보면 성가정의 본보기가 나옵니다. 바로 예수님의 가정이죠.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 생활을 거쳐서 우리 가운데 오셨고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셨습니다. 루가가 직접 강조하고자 한 것은 어머니의 태중에서 피어나는 생명은 오직 하느님께로 부터만 오는 것이기에 그 생명을 사랑과 감사의 봉헌으로 그분께 돌려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아들 예수의 운명에 동참을 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에서 말하고자 하는 성가정입니다.
오늘은 대사동 성당의 강승수 신부님의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정 방문이나 상담 등을 통해서 듣게 되는 우리들 가정의 현실은 정말 놀라움 자체입니다. 무언가 한 가지라도 문제가 없는 가정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거나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가정이라도 사제에게 와서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외부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아픔이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가정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부부사이가 좋지 않거나, 자녀들이 속을 썩이고, 또 사람들은 선한데 식구 중에 누군가가 병으로 고생을 한다거나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말 못할 한 두 가지의 십자가들을 어느 가정이나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 대부분 가정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가정생활의 모범"하면 나자렛의 성가정을 떠올립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바로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의 속내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이 집안도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사연을 먼저 들어보면 마리아는 시집오기 전에 벌써 아기를 잉태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을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당시 요셉의 주변 사람들은 마리아의 잉태가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요셉까지도 마리아의 잉태 소식을 듣고 파혼하려고 마음먹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면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의 사연을 들어봅시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듯이 요셉은 예수님의 친아버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양아버지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여인이요, 아버지는 친아버지가 아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볼 때 보통 문제가 많은 집안이 아닙니다. 예수님 본인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당시의 사회적인 시각으로 보면 바로 ’사형수’입니다. 게다가 예수, 마리아, 요셉 이 세 분은 고생도 참 많이 하셨습니다. 아기 예수를 죽이려는 헤로데 때문에 마리아와 요셉은 어린 아기를 들쳐업고 에집트로 피신을 가야했습니다. 우리의 성가정은 아기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을 피해서 조국을 떠나 타국으로 도망을 다녀야 하는 험한 세월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문제도 많고, 고생도 많은 이 가정을 온 인류가 본받아야 할 가정이라고 일컫는 이유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마리아와 요셉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삶의 모든 순간 순간에 성령의 이끄심에 용기있게 "예"하고 대답을 했고, 예수님도 아버지 성부의 뜻에 철저한 순명으로 일관된 삶을 사셨습니다. 이것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음에도 그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성가정을 이룩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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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가정은 다른 가정과 달라야한다고 합니다.
과연 우리들의 가정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의 가정과 다른가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우리의 가정은 성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성가정은 교회의 가장 작은 단위라고 합니다. 우리는 성가대를 한다고 성당에 봉사한다며 왔다갔다하면서 가장 근본인 교회, 성가정생활에는 충실했는지 생각해봅시다.
잠시 묵상하시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