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 게시판

제목 귀국 후 2개월동안 느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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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포레 레퀴엠 - 위령성월묵상음악회" 초대합니다. - 개포동성당 우니따스성가대  
작성자김종헌 쪽지 캡슐 작성일2000-02-07 조회수1,387 추천수17 반대(0) 신고

내일이면 제가 귀국한 지 꼭 두 달이 되는 날입니다.  그 동안 세 군데에서 강습회를 가졌으며, 주일이면 이 본당 저 본당의 미사에 참여하면서 크게 느낀 점을 간단히 몇 가지만 적고 싶습니다.  짧은 기간이고 많은 본당을 다녀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 생각이 한국 교회 음악의 실정을 모두 반영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오래동안 국외에서 살았기 때문에 혹시 여러분과 다른 시선으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글 올립니다.  혹시나 참조가 되신다면...

 

1)  성가의 빠르기에 대해

거의 모든 본당에서 제가 유학을 가기 전보다 전반적으로 어쩌면 아주 빨리 노래를 부른다고 느꼈습니다. 전에는  곡의 가사나 종류, 그리고 전례 시기에 관계없이 너무 느리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런 속도의 변화는 많은 경우 신선하게 느껴졌고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염려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속도를 빨리 해서 노래하다 보니 곡에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곡이 너무 빠른 관계로 숨이 가빠 따라가지 못한다는 인상이었고, 성가대들 역시 속도를 빨리 하는 것에만 열중한다고 느꼈습니다.  

 

여러분이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미사 중의 성가들에는 빠르기 표가 사용되지 않습니다.  아무렇게나 불러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곡의 가사 그리고 전례공동체의 음악적 수준에 맞추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배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유없이 그리고 습관적으로 공동체에서 너무 느리게 부른다면 지휘자는 곡을 빨리 하도록 교육하여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사를 여러번 읽고 그 가사가 표현하는 바 메씨지를 서로 교환하는 것이 빨리 부르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성가를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이를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음표를 노래하기에만 혹은 노래의 속도에 대해서만 몰두하다 보면 음악이 주는 감동, 혹은 메씨지를 맛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쉬운 예로 여러 본당에서 성가부르는 것을 들을 때 거기에는 클라이막스나 이제 음악이 마친다는 느낌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약간만 속도를 늦춘다면 가사를 음미하면서 성가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가사의 의미를 살리면서 노래할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했으면 합니다.

 

2) 영성체 노래의 선곡

영성체 때에 부르는 찬미가의 의미와 주의할 점에 대해서 제가 216번에 올린 글을 한번 참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영성체 행렬 때에 부르는 찬미가들은 하느님과 성체를 영하는 신자들의 일치, 그리고 영성체자들의 상호간의 하나됨을 노래하는 가사가 가장 적합하다고 했으며 단순히 성체성사를 흠숭하고 현양하는 노래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체강복 (지금은 행하는 본당이 거의 없다고 생각됩니다) 때에 부르는 노래들은 영성체 행렬 때에 부르지 않도록 교회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늘에 별 수가..."  "하느님의 어린 양..."

등 그리고 216번에서 영성체 때에 부르지 말아야할 곡들을 찾아 보십시오.

 

3) 행렬 동안 두 가지 이상의 찬미가를 부르는 경우.

각 본당에서 봉헌 때나 영성체 행렬 때에 하나의 찬미가로는 부족하여 두 개 혹은 세 개의 찬미가를 부르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이런 경우 성가집에 있는 어떤 곡의 모든 가사를 끝내고서는 노래와 함께 반주가 딱 끊어지는 경우가 거의 대분이었습니다.  너무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전례의 흐름이 끊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회자가 다음 찬미가의 번호를 일러주는 동안 아니면 다음 곡을 시작하기 전까지 반주자는 계속해서 오르간을 연주했으면 좋겠다고 느꼈습니다.  

 

 

4) 화답송을 노래할 때

화답송, 혹은 시편성가는 방금 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을 위한 음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시편 구절들을 똑똑하게 노래하여야 합니다.  제가 판단하기로는 한국인 작곡의 거의 모든 시편노래들은 후렴을 제외한 다른 부분의 4성부는 반주용이지 합창을 위한 4성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혼자서 아니면 어떤 한 성부가 시편구절을 노래하는 동안 오르간이 이를 뒷받침해 주기 위한 반주로 사용하기 위해 4성부로 악보화 된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시편구절들을 노래할 때 이 부분을 성가대에서 4성부로 노래한다면 첫번째로 신자들이 들으면서 묵상해야 할 시편 내용이 신자들에게 잘 전달되지 못하게 됨으로써 제대로 된 묵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곡의 기능이 상실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독창자나 한 성부가 시편구절을 똑똑히 노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성부로 성가대가 노래하는 것을 피하도록 합시다.

 

또 신자들에게 시편 후렴의 악보를 전혀 주지않고 성가대만 노래하는 경우가 있는데 시편의 후렴을 주보에 실리는 방향을 모색해 보았으면 합니다. 신자들로 하여금 찬미기도로 인도하고 제대로 후렴을 노래할 수 있기 위하여 화답송의 후렴은 주보에 실려야겠습니다.

 

 화답송을 제대로 노래하는 방법은

      1. 선창자 (혹은 성가대)의 후렴

      2. 신자들의 후렴 반복

      3. 독창자 (혹은 단성부로 성가대)의 시편 구절

      4. 신자들의 후렴 반복

      5. 3번과 4번이 교대로 이루어짐

 

 

5) 기타

숨쉬기: 음악의 동기는 주로 4마디로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거의 대부분의 노래들은 4소절을 마치고 숨을 쉬게 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례 때에 신자들이 노래하는 것을 지켜보면 거의 대부분의 본당에서, 그리고 신자들이 겨우 두 소절만 하고 숨을 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웁게도 우리 성가대들도 거의 대부분이 이 phrase를 지키지 못하고 두 소절만 노래하고 숨을 쉬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의 습관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이렇게 노래해서는 한국말이 되지 않을 뿐더러 음악의 흐름 역시 단절되기 일수입니다. 유심히 자기 자신의 노래부르는 습관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놀랍게도 본인이 지적한 것이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두 소절마다 숨쉬는 악습은 고치면 좋겠습니다.  

 

성가대의 악보 보는 습관: 어떤 성가대는 음악을 다 외우고서도 악보를 들고 노래하는 가 하면 어떤 본당 성가대들은 악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노래를 부르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물론 정확하게 노래하기 위해 악보를 보아야 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것보다도 이렇게 악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 역시 아주 나쁜 버릇인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몇 십년간 성가대를 한 분들이라도 수십년 동안 부른 성가도 아직 책만 보고 지휘자는 쳐다 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소프라노 파트에서 노래하는 분들도 그러합니다.  어떤 음악이든지 외울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지휘자를 보고 노래하는 습관을 길러야겠습니다.

 

 

몇 가지 안 되지만 간단히 적었습니다. 본당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전례를 한번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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