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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성가 토론]역사 소고-새로운 음악의 교회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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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봉섭 쪽지 캡슐 작성일2000-05-26 조회수991 추천수12 반대(0) 신고

[생활성가 토론]역사 소고-새로운 음악의 교회 도입

 

 

  들어가며

 

  요즈음 생활성가에 관한 토론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많은 분들의 입장이 교환되고 어느 정도 방향설정도 이루어져 가는 것 같아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토론은 결국 ’생활성가’로 지칭되는 새로운 양식의 음악을 교회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오랜 교회의 역사 안에서 음악은 소중하게 사용되어 왔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양식의 음악이 계속 발생하였으므로, 새로운 음악의 수용에 대한 논란도 필연적으로 계속 있어 왔습니다. 제가 공부해 온 것이 비록 작지만, 교회 역사의 몇 페이지를 생각하며 오늘에의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초대교회 시기의 음악 문제

 

  교회 안에서 음악을 중요하게 사용한 것은 구약 시대 이래의 전통이기에 초대교회에서도 그러했으며, 따라서 이 때에도 바른 교회음악에 관해 고민했던 흔적들이 남아 전해집니다. 로마의 성 글레멘스(S. Clemens, 1, 88-97)의 희랍어 서간[1]이나 알렉산드리아의 성 글레멘스(150-211/216)의 글 등등이 그 예가 되겠습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성 글레멘스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회합은 악기에 의한 음악을 뺀 진지한 것이어야 한다. 실제로 악기는 사람들을 전쟁으로 몰아 넣거나 욕망에 불붙이거나 사랑의 정열을 불태우거나 노여움을 선동하는 데 합당한 것이다."[1]

  "우리는 더 이상 고대의 피리, 트럼펫, 탬버린, 플루트를 연주할 수 없다. 이런 악기들은 전쟁을 좋아하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그들의 축제에서나 사용하며 자신들의 흥을 돋구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중략)... 히브리의 왕 다윗이 하느님께 어떻게 감사했는지를 살펴보자. ’너희 의인들아 야훼를 즐거워하라. 수금으로 야훼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2]

  즉 원칙적으로 악기를 쓰지 말라고 하고 있으나, 무조건적인 배척이 아니라 ’선별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 때 선별적이고 조심스러웠던 이유는 앞의 이유 이외에도 가령 이교도의 사상이 영입될 위험성, 당시의 악기가 조잡하고 훌륭하게 연주할 연주자가 많지 않아 경건한 분위기를 해치게 될지도 모를 위험성, 또한 오랜 교회의 전통 등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2]. 아마 그 당시에도 어떤 악기를 도입하면 어떻겠느냐 하는 제안이나 움직임이 있었기에, 그에 대해 이런 글이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2. 오르간

 

  오르간은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전통적인 악기이며 크게 존중하는 악기(전례헌장 120)입니다. 오르간의 역사는 매우 깊으며, 원시적인 것을 차치하더라도 기원전 4세기에 이미 물 오르간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합니다 [2]. 이후로 오랜 세월에 걸쳐 물 대신 공기를 쓰고, 나은 풍구나 풀무를 쓰며 파이프가 늘어나는 등 많은 개량을 거쳐 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이루어진 모든 오르간 중이 전례에 적합한 성질을 가지지는 않았겠습니다만, 잘 발전되면서 교회 음악에서 가장 장려되는 악기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지난번에 "잊지 말아주세요. 다성음악도 맨 처음에는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오르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라는 글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성가 게시판 1373), 다성음악이 금지될 뻔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다성음악이나 오르간 모두 ’금지되었었다’는 말을 쓰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맨 처음에’라는 말도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을 넣으신 의도 자체에는 이해가 갑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오르간을 ’배척’한 역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근세에 이르러 세속 음악이 침투하고 타락할 때에 악기(오르간)의 전례 도입을 일시 제한한 적은 있었다고 합니다만[2], 그것은 오르간 자체의 금지 또는 배척이라기보다는 위험을 막기 위한 ’일시조치’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바르지 않은 움직임이 신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막고자 교회가 취한 조치들을 우리는 교회사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15세기에 영국에서 성서 읽기를 부분적으로 제한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위클리프 등이 그들이 번역한 성서에다가 괴이한 유설(謬說)을 함부로 첨가하며, 또 전통에 어긋나는 해석을 선전하므로 그 해독을 막기 위한 일시적 조치였습니다 [3]. 결코 이런 ’일시조치’가 성서 자체를 문제삼아 금지한 것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3. 트렌트 공의회 (1545-1563)

 

  거의 500년 전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때의 일 또한 새로운 음악을 교회에 받아들이는 문제에 있어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소위 종교 개혁이 일어난 이후 가톨릭 교회에서도 내부의 문제점에 대해 자성하게 되었고, 따라서 가톨릭 교회 안에서의 개혁을 추진하면서 이 공의회가 소집됩니다. 그러면서 가톨릭 교회 음악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루어집니다. 이 때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 성가 게시판 143번 또는 전례음악 자료실 10번에 올라 있는 김종헌 신부님의 글[4]에 잘 나와 있으므로,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때 다룬 주제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4].

 

  (1) 교회 음악의 세속화 문제 : 미사통상문 전체가 작곡되기 시작하면서 유럽의 유명한 작곡가들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을 이용하거나 심지어는 세속노래, 특히 샹송을 미사곡의 정선율로 선택하여 미사곡으로서의 통일성을 이루려 하였다.

  (2) 많은 성부를 이용한 다성음악은 신자들로 하여금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게 하고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3) 너무나 많은 전례음악들의 변형들이 등장하였다. 그 예를 우리는 Sequences (부속가, 제 9장 참조)들에서 보게 된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부속가들이 지방마다 다르게 등장함으로써 교회 음악의 혼란을 주게 되었다.

  (4) 교회 전례 안에서의 과도한 악기사용, 특별히 "시끄러운 악기"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5) 전례 때에 취하는 가수들의 불경스러운 태도, 빈약한 발음이나 창법이 교회음악의 문제점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공의회는 trope의 사용을 금하고 부속가의 사용도 단지 네 개만을 허용하여 혼란의 문제를 정리하였고, 성가의 작곡 때에 외설적이고 세속적인 소재의 사용을 금함으로써 진실로 "하느님의 집이 기도의 집이 되도록" 조치하였습니다. 한편 다성음악의 문제에 있어서, 다성음악을 쓰지 말고 단선율인 그레고리오 성가만을 사용하자는 강경한 의견이 제출되었으며[2] 상당한 지지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많은 자료에서는 이 때 팔레스트리나(G. P. da Palestrina, 1525-1594)가 그의 [마르첼리 교황 미사](6성)를 통해 다성음악의 위기를 벗어나게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공의회가 끝난 다음 해(1564) 교황 비오 4세께서 2명의 추기경에게 음악개혁에 관한 감독 임무를 부여하였고, 이들은 이 곡을 들음으로써 다성음악이 교회에 적합할 수 있음을 납득하였다는 것입니다 [2]. 한편으로는 팔레스트리나 때문에 다성음악이 금지되지 않았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확실한 것은, 그 음악이 전례에 매우 어울리며 다성음악으로서도 가사를 잘 전달하면서 기도로서의 성가를 참으로 아름답게 바칠 수 있음을 실제로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성음악의 허용이, 그 전의 많은 다성음악처럼 가사전달의 문제나 세속적인 성격을 가진 음악의 교회 도입을 인정하는 것이 아님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팔레스트리나를 포함한 작곡가들은 이제 자신들이 작곡하는 미사곡 내지는 작품의 서문에 ’트렌트공의회 정신을 따라 작곡한 것’임을 밝힐 정도로 교회 음악의 순수성을 간직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4].

 

 

  4. 체칠리아 운동과 성 비오 10세(재위 1903-1914)

 

  고전시대와 낭만시대가 이어지면서 계속 새로운 양식의 음악이 등장하였습니다. 작곡가들은 더 이상 교회음악에만 전념하지도 않았고, 전례음악의 범주를 벗어난 연주용 작품에 치우친 감도 있었습니다. 역시 교회 음악의 세속화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음악의 부흥을 주창하는 독일 신자들에 의해 1868년 성녀 체칠리아 협회가 조직됩니다 [2]. 이들은 교회음악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팔레스트리나의 작품을 비롯한 여러 옛 교회음악의 선례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진행하였고, 그레고리오 성가에 관련하여 또한 여러 논의와 시도를 진행하였습니다 [5]. 그 중에 예컨대 모차르트의 미사곡 일부와 슈베르트의 미사곡 등은 전례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명되었다 합니다. 또한 이론적 기반을 다지기 위한 노력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이상에 부합하는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시도들 역시 계속되었습니다. 이 모임은 독일에서 시작된 이후 구라파 각국과 미국에서도 결성되었고,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결성 및 활동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체칠리아 운동의 정신은 1903년에 반포된 교황 성 비오 10세의 [Motu proprio - Tra le sollecitudine(목자의 역할을 다함에 있어서)]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 비오 10세는 신자들이 보다 충만한 기도 생활과 자주 성사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례와 교회 음악을 개혁하고자 하였습니다 [6]. 그는 전례음악이 전례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을 밝히며, 성음악의 이름에 합당치 않은 음악이 교회 안에 쓰여지고 있음을 보고 그 혼란을 고치려고 하였습니다 [1]. 팔레스트리나의 음악 양식을 지향하였고 세속적인 분위기(일반 무대와 같은 요소)를 제거하였으며 또한 그레고리오 성가의 부흥을 위하여 솔렘 수도원의 뽀띠에 신부를 그레고리오 성가집 편찬 위원장으로 지명하였습니다 [2].

 

 

  마치며

 

  위의 역사적인 예들에서, 그냥 보기에도 매우 공통적인 부분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새로운 음악의 양식, 형태, 악기 등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타난 새로운 음악(또는 예전부터 있었더라도 교회에서 쓰지 않던 음악)을 전례에도 도입하는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는 적합하지 않은 부분도 많이 있게 마련이었고, 여기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로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은 걸러지게 되었습니다. 그 기준은 오로지 그것이 전례가 요구하는 성질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음악이 그 문제를 떨쳐낼 수 없는 것이라면 힘들더라도 단호하게 전례에서 배척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다성음악처럼 새로운 음악이 가질 수 있는 문제를 떨쳐내고 훌륭하게 전례에서 봉사적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김종헌 신부님의 글[4]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500여년 전 트렌트 공의회에서 제기된 문제점들, 즉 세속화 및 가사, 악기, 태도와 창법의 문제 등이 오늘날 생활성가 또는 CCM에 대해 제기되는 비판과 매우 비슷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앞의 예들을 생각할 때 이러한 유사성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닐 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지금 토론하고 있는 새로운 음악 역시 전례에 사용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문제를 떨쳐내야만 한다는 당연한 귀결이 얻어집니다.

  장르 자체가 전례에 ’부적합’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보이며, 실제로 전례에 쓸 수 있다는 공감대를 가진 곡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냉철히 판단할 때 현재의 생활성가 또는 CCM 중 많은 (’전부’가 아닙니다) 곡들과 그 연주들이 전례적인 문제를 가진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변화를 통해 전례에 적합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음악은 과감하게 전례에서의 사용을 그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상심할 것이 아니라, 전례와 교회음악에 대해 성심을 다해 공부하며, 음악적 재능을 통해 어떻게 봉사할 것인지 생각하고 노력한다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한편 이 장르가 반음과 불협화음을 통한 감각적 코드진행 및 복잡하고 불규칙적인 리듬 등의 특성을 가지다 보니, 앞서 언급된 문제에서 벗어나 전례에 합당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좀더 ’어려운’ 작업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어떤 장르에서든 좋은 전례음악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같은 특성이 젊은이들에게 보다 쉽고 친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기에, 이런 점을 통해 전통 성가가 하기 힘든 소중한 역할을 훌륭히 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참고자료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해설총서, 현석호 옮김, 성바오로출판사, 1993.

[2] 김건정, 교회 전례 음악, 가톨릭출판사, 1987.

[3] James Cardinal Gibbons, 교부들의 신앙, 장면 옮김, 가톨릭출판사, 1964.

[4] 김종헌, 트렌트 공의회와 교회 음악, 굿뉴스 성가 게시판 143, 1999.

[5] 신상호, 체칠리아운동 관계항목 요약글, 굿뉴스 성가 게시판 825, 2000.

[6] 한국가톨릭대사전 제 6권, 한국교회사연구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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