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1403]좋은 시험방법이 필요합니다 | |||
---|---|---|---|---|
이전글 | [부활제6주일]라우다떼복음묵상 | |||
다음글 | [부활제6주일] 성가정성가대 복음나누기 | |||
작성자이봉섭 | 작성일2000-05-28 | 조회수702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1403번, 실험의 대안에 대해 말씀하신 글에 대한 답변을 위해 올립니다. 다른 분들께서도 함께 생각하시고 좋은 말씀도 해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이형진 보나벤뚜라 형제님께 우선 인사드립니다. 특히 형제님의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진심으로, 그 열정이 신자 공동체를 위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바탕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젠 제가 집에 늦게 와서 글을 쓰지는 못하고, 대신 여러 번 읽었습니다... 그리고 또 생각하기 위해 형제님 글을 여기 옮겨 놓고 이 글을 씁니다. 새로이 맞은 주일 아침... 형제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저도 나름대로나마 같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benezer wrote:
60. 모국어 가사에 붙인 새로운 멜로디들은 그것이 만족할 만큼 성숙과 완성에 도달할 수 있기 위해서 반드시 어느 기간의 경험과 시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순전히 실험해 본다는 구실로 그것을 성당 안에서 해 보는 일은 절대로 삼갈 것이다. 그러한 실험은 성당의 신성함과 전례의식의 품위와 신자들의 신심에 위배되는 일이다. (최명화 역, 사목 2호)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대안이 없군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전례 밖에서 아무리 실험(?)이라고 해도 전례와 같은 환경 일 수는 없습니다.
’순전히 실험해 본다는 구실로.......’이런 사람이 있을까요? 전례를 위해서 새로운 것으로 하는 것이지 순전히 그야말로 순전히 실험해 본다는 구실을 가지고 그러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글이 좀 잘못된것 같군요 교회 밖에서 실험(?)이라....... 저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열심히 음미해 보니, 제가 쓴 글이 아니라 제 글에서 인용한 성음악 훈령 60조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셨군요... 우선은 매우 조심스러워집니다. 제 말에 대해서야 제가 나름대로 보강 설명 내지 해설을 하거나 잘못되었다면 사과를 드릴 수 있겠지만, 훈령에 대해서는 능력 밖일 수 있으니 말씀입니다...
문득, 형제님의 마음이 새로운 약을 개발한 사람의 마음과 비슷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컨대 바르거나 붙이는 약이라면 얘기가 편할까요? 사람한테 도움이 되려고 열심히 개발해서 사용해 보려고 하는데, 좋은 목적으로 만들었어도 정말 부작용은 없을지, 오래 써도 괜찮을지, 모든 곳에(손등, 배, 입술, 입 속 피부, 눈...) 써도 좋은지 특정 부위에만 써야 하는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인체는 실험 대상이 아니다"는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개발자는 열심히 만든 것을 바로 쓰지 못하는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것입니다. 이 원칙에 대해 서운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게다가 이 원칙은 대안을 말해 주고 있지도 않습니다. 사람을 위한 약인데, 인체가 아닌 데에 실험하는 것은 조건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 더욱 문제입니다. 하지만 원칙은 지켜져야 하고 실험은 필요하니, 사람들은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각종 간접적인 방법들을 개발해 왔고 지금도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인체에 사용하는 것은, 비록 ’임상실험’이라고는 하지만, 그 약의 성질과 독성학(toxicology) 등에 대해 필요한 검증이 끝난 다음에야 가능한 일입니다. 약을 모든 부분에 써도 괜찮을지 특정 부위에 알맞은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충분히 밝혀져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제시되어 있는 성음악 훈령(거룩한 전례 안에서의 성음악에 관한 훈령(Musicam Sacram), 1967.) 60조가, 그렇게 꼭 지켜져야 하는 원칙인가가 문제가 되겠습니다. 위에 든 생체실험에 반대한다는 원칙도 오랜 세월 공감대를 세워 왔다가 이제는 현행법의 한 정신으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비슷하게 ’전례가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원칙 역시 그렇게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제 훈령의 명문에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직자 개인이나 몇 분의 가르침과는 다른, 예컨대 교구장이 천명한 교구의 지침이나 교황님의 개인적 발언 등과도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에 해당하며, 훈령 끝에 명시된 것처럼 ’어떤 반대적 결정이든 제거되어 있는’ 것입니다. (1360번글에 정리된 내용들 중에도 이렇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 있고, 따르면 좋은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분명한 것은 그것을 찾는 것은 사람들의 몫이며,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숙제라는 것입니다. 법이나 원칙이 모든 것을 말해 줄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도 의학이나 약학 관련자들은 보다 효과적이고 안전한 간접실험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더욱이 새 음악의 전례 도입 시험이라는 이 경우에서는 자연과학과 비교할 때 실험의 결과가 정량적이거나 분명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좀더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시험 자료를 바탕으로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특히 필요한 것은 판단하는 사람들이 전례와 전례음악에 대해 매우 잘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앞의 글에서도 현재 거론되고 있는 심의제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이 역시 이런 하나의 대안이 될 것입니다. 또 지금도 많이 열리고 있는 각종 연주회 또는 발표회를 통해 생각할 수 있겠고, 그래서 상당히 괜찮다는 공감대가 얻어지면 이제 적당한 모임 및 신심 행사에 사용하면서 다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좋은 방법으로서 알려져 있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