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 게시판

제목 언제나 아쉬운건 <자율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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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문교 쪽지 캡슐 작성일2001-04-13 조회수1,037 추천수16 반대(0) 신고

  성당에는 많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각종 신심단체, 활동단체, 성가대, 레지오 등, 등....

봄이면 많은 단체들이 <성지순례>계획들을 세우죠.

삼삼오오 모여앉아 머리를 맞대고서는

 

"이번 성지순례는 어디로 하지?"

"아냐 아냐, 거긴 지난번에두 갔었지만 별루잖아?"

"점심은 도시락을 맞출까, 아님 김밥을 싸 갈까?"

"관광버스를 빌리면 자리가 많이 남겠는데..우리 <성모회>보구 같이 가자구 그럴까?"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우리 성당에서는 이런 자잘구레한 <고민>들이 싹 자취를 감췄습니다. 엄청나게 부지런한 단체장 한 분이 사목회 간부가 되시더니만, 그 모든 걱정거리들을 혼자서 다 짊어 지신거죠.

 

  "금년에는 우리본당 성지순례를 <천진암>으로 정했으니 모든 단체 소속원들은 몇월 며칠 몇시까지 한 분도 빠짐없이 모이세요! 관광버스 10대가 동시에 출발합니다! 도시락은 전부 한꺼번에 맞췄으니 걱정 마시구요!"

 

  저희 안사람은 성가대 총무를 맡고 있는데 보통 편해진게 아닙니다. 버스 좌석 모자라거나 남을 걱정이 있나, 도시락 잘못 맞췄다고 단원들한테 핀잔 들을 일이 있나?

그런데 성지순례 계획을 짜는 <고민>이 없어진 사람들은 그와 함께 <의미><재미>도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그것은 두 말 할것도 없이 <자율성>이 박탈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굳뉴스게시판에서는 <라틴어 논쟁>이 뜨겁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것은 <성가게시판>에서는 대체로 라틴어 성가를 보존,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한데 반하여, <자유게시판>에서는 반대론자들의 세력^^도 만만치 않더군요.

굳뉴스게시판은 훌륭한 토론광장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으므로 보다 나은 여론 조성을 위하여 어느정도의 논쟁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간혹 어떤 글들을 보면 너무 심하고 무례한 표현이 있어 눈에 거슬립니다.

  라틴어 성가의 보존을 옹호하는 글을 올린 어느 분에게 <무식한 사대주의자 아무개님>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다는 둥, 그 분의 글을 조목조목 인용하여 반박하고, 반박을 당한 분은 다시 또 비슷한 방법으로 반박하고...

마치 형사 사건의 피의자 대질 신문 조서를 분석해 놓은 글 같았습니다.

이거 어디 겁이 나서 게시판에 글 올리겠습니까? 허허..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라틴어 성가>는 좋고 싫고를 떠나서 우리 가톨릭 교회의 중요한 <문화>입니다. 문화가 편가르기처럼 획일적이어서는 아니되죠. 본래 가톨릭은 서양에 뿌리를 둔 종교이기 때문에 근대 서양언어의 뿌리인 라틴어를 도외시 해서는 2000년 가톨릭 문화의 진수를 맛 보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종교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서양 것이라 해서 <배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물론 누군가가 라틴어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공의회 이전처럼 온통 라틴어로 미사를 드려야 된다고 주장 한다면 그것은 넌센스죠.  그러나 <라틴어 성가>를 교우들에게 강요하는것도 아니고 일년에 몇 번 특별한 대축일에 성가대에서 고된 연습 끝에 부르는 것 조차 비난하는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또한 라틴어 성가는 전문성이 있는 음악입니다. 그렇다면 성가대에서 라틴어 성가를 하고 안하고의 선택은 당연히 <음악 전문가>인 지휘자에게 맡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본당의 모든 운영을 책임지고 계신 신부님께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선택을 <권유>하실 수는 있겠으나, <절대로 하지마라!>는 식의 명령은 좀 너무한 것 같습니다.

  사제와 신자들은 주인과 노예처럼 매여있는 관계가 아니잖습니까?  더구나 지금과 같이 다변화된 사회에서 전문분야에 대한 <자율성 보장>없이는 교회를 포함한 어떠한 단체도 원활하게 이끌 수는 없을것입니다.

 

  제 글이 너무 딱딱합니까? 그럼 재미삼아 이런 비유는 어떨까요.

한국의 전라도 어느 지방에 오래 머물던 한 미국 청년이 <판소리>의 매력에 푹 빠졌답니다. 구수한 남도 사투리로 된 사설과 흥겨운 추임새에 반한 청년은 자기네 고향에 판소리를 전했답니다.

  이윽고 청년의 고향에서는 비록 문화는 다르지만 동양의 신비가 깊이 스며 있는 판소리가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어찌된 셈인지 <한국>은 좋아하면서도 <한국 말>을 지독히 싫어하는 꽉 막힌 노인 한 분이 "앞으로 <Pansori>는 한국말로 부르면 안된다. 반드시 영어로만 불러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 뒤 부터 판소리 <심청가>중에 심청이 팔려가는 날 새벽에 구슬피 불렀던 <닭아, 닭아 우지 마라, 네가 울면 나 죽는다>는 대목은 이렇게 불리워 졌다죠 아마?^^

<Chicken chicken, don’t you cry!, your crying I am dying......>

에구구~ 돌 날아 오겠다. 도대체 판소리를 뭘로 알고 이러는 것이여 !

 

  자기네들이 영어를 아무리 잘 해도 판소리의 제 맛이 날 리가 있나요?

두 말 할것도 없이 <판소리>는 우리말로, 그것도 전라도 방언으로 불러야 제맛이 납니다.  가만 있자...그러면 <라틴어 성가>는 무슨 말로 불러야 제 맛이 날까요?

 

여러분! 은총의 부활대축일을 맞아 우리 모두 조금씩만 너그러워 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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