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다두단장을 보내며....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제1회 가톨릭 남성합창 페스티벌 연합합창 - 주여 나를 받으소서(성 이냐시오의 기도) | |||
작성자조남진 | 작성일2001-06-20 | 조회수2,473 | 추천수20 | 반대(0) 신고 |
우리는 그를 "영원한 단장"이라고 불렀다.
청량리성당 엔젤사랑 성가대 이수문 다두 단장.
’ 성가대 단장’- 그것은 그의 십자가였을까,영광이었을까?
그가 창립멤버로 활동하고 키워온 청량리성당 엔젤성가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영원한 단장이라고 불렀고 그는 그 이름을 좋아하는듯했다. 우리는 모두 십자가 지기를 싫어하고 성가대 단장이라는 십자가를 그에게 지워 주었다. 그리고 그가 내려놓지 못하게했다.
다두 단장은 그에 걸맞게 평생을 살았다. 그는 어제(6월16일) 아까운 젊은나이라 할 수 있는 55세로 생을 마감하고 우리곁을 떠났다. 그동안 소강 상태였던 간암이 지난해 가을 재발되고, 1년이 채 안되어 갔다.
불과 3개월전인 3월말의 영세식때 그는 자신의 건강을 생각지 않고 부족한 남성 테너소리를 염려하며 영세식 성가를 하기위해 포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올라왔다. 이것이 그가 청량리성당에서 봉헌한 마지막 성가였다. 이제 우리는 그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창미사 ’ 아뉴스데이’ 에서의 테너 솔로부분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불과 한달전만해도 4차례의 항암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며 "이제 테너는 걱정하지 말라"며 농담을 하던 친구.간 기능이 떨어져서 식사를 마음껏 할 수 없는 투병생활 중에서 "시원한 열무김치에 국수 한 젓가락 말아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며 생의 의욕을 추스르던 친구.
젊어서나 나이 들어서나 흰소리를 잘해서, 솔직히 내가 젊었을때 나는 그의 그런 부분을 마음에 안들어 했다.그러나 나이들어서 보니, 그런 흰소리나 싱검이 얼마나 삶의 윤활유가 되고 사람들 사이를 편안하게 해 주는 일인가를 알겠다. 그런 위트와 언어적 순발력을 우리는 " 싱검을 잘 떤다"고 퉁을 주기도 했지만 그는 이렇게해서라도 성가대에 활기를 불어 넣어 주려 했었음을 이만큼 나이든 다음에야 알겠다.
1970년대초에 결성된 청량리성당의 엔젤성가대의 창립멤버인 그가 있었기에 오늘의 청량리성당의 ’엔젤’과 ’엔젤사랑’이 있을 수 있다.
기술직 공무원으로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70년대초 가난하고 춥고 배고프던 시절, 단원들을 위해 봉급의 거의 대부분을 쏟아 부었다. 성당의 지원이나 성가대 운영비라는 것이 전혀없던 시절, 매주 금요일 정례 연습이 끝나고 촐촐히 집으로 돌아가는 단원들을 잡아 한턱을 기분 좋게 내었다. 봉급이나 출장비의 거의 대부분은 성가대단원들의 복지후생비로 쓰였다. 그때 그가 돈을 모았더라면 근사한 아파트 한채는 샀을거라고 우리는 믿는다. 일찍 결혼을 한 후에는 제기동 천변- 지금의 한신아파트가 들어선 그 개천변의 단칸 셋방으로 단원들을 데리고 가 따듯한 밥을 지어주기를 좋아했다.
성경에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했는데 , 그는 물질로 엔젤을 키웠을 뿐 아니라 몸으로도 정말 헌신했다.
울릉도, 제주도, 포항, 인천, 여수...., 전국의 항만 축조공사 설계를 하고 현장을 지휘하고 다녀야 하는 그는 항상 지방 출장을 가거나 지방 근무를 해야했다. 그러나 그의 출장지가 여수가 되었든, 제주도가 되었든, 그는 성가대 연습이 있으면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그리고 서울에 와서도 집에 들르기 전에 성당에 와서 성가를 하고 밤늦게야 집으로 들어갔다. 아니, 부인 세실리아씨에게 알리지 않고 성당행사에만 참석하고 다시 근무지로 돌아 가는 때도 있었다.
이런 그의 헌신으로 엔젤성가대는 유지되었고 , 70년대, 청량리성당 청년성가대는 서울시내 본당 청년성가대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타고, 지금은 명동대성당 주임이며 서울대교구 성음악감독이 된 당시의 보좌 백남용신부가 열성적으로 키운 성가대였다.
개인적인 이유등으로 70,80년대 활동했던 엔젤이 삶의 터전이던 청량리와 청량리성당을 떠나 20여년간의 긴 휴면기에 들어갔고 간신히 몇몇끼리 소식이나 주고 받을때 그는 엔젤의 부활을 적극 추진했다. 그리고 99년 6월 재결성 이후 ’ 엔젤사랑’이란 이름으로 서울 동서남북에서 모여와 청량리성당에서 매주 토요일 특전미사 성가를 봉헌할것을 약속하며 요즘 성가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 우리는 미국에 둥지를 튼 엔젤사랑의 김석주 안드레아씨의 초청으로 미국 연주여행을 갖기로 하고 연습에 한창 바빴었다. 그리고 우리의 행운에 감사했다. 20대 청춘 때 만났던 단원들이 중년이 넘은 나이에 만나 어렵지만 함께 성가를 하고 외국여행을 함께 한다는 축복에 감사했다. 그 은혜에 두려움도 느끼며 우리의 앞에 이런 즐거운 일만이 계속되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어제, 우리가 토요 특전미사를 마치고 병원에 다시 그를 보러 가려는 때 그는 우리곁을 떠났다.
이것이 인생이다. 인간의 계획만으로는 되지 않은 것이 인생이다.
그는 그의 짧은 생을 알았을까.
유난히 하느님을 위한 일을 앞장 섰던 다두 단장. 군대에서 폐품을 모아 시골 성당을 위해 종을 사서 달아주고 ,시골 공소를 도와주고 성가대를 몰아 열심히 소년교도소로, 군부대로 봉사활동도 다닌 그를 하느님은 예쁘게 보시어 일찍 데려 가셨나보다.
금요일 밤. 그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 되어 간다는 소식을 듣고 불과한 한 두시간 안에 모여든 엔젤사랑 20여명은 그의 입원실에서 임종경을 바치며 그를 위한 작은 즉석 연주회를 했다.듀엣도 하고, 합창도 하고... 기도를 듣고 노래를 듣고 고통중에 맑은 의식을 되찾은 그는 까리타스에게는 "고리기도 잘하고 있느냐"고 싱검을 떨고 , 우리집 안드레아에게는 "안드레아 형님, 어제 고추 심었어요" 했단다. 그리고 부모님의 노환으로 갑자기 친정으로 불려가야했던 나를 찾으며 "모니카씨가 안 보인다" 고 했다고 한다.
이별식에 내가 참석치못해 안타깝지만 그는 이해해 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아름다운 헌신을 기억한다.
그리고 ’엔젤사랑’을 이끌던 다두는 떠났지만 그의 영혼은 우리와 함께 머물며 ’엔젤사랑’ 성가대를 더욱 끈끈하게 연결해주고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하느님안에서의 부활을 믿으며, 마음을 모아 하느님을 찬미하는 성가를 계속 봉헌 할 것이다.
( * 다두단장의 장례미사는 지난 월요일 9시, 그의 교적이 있는 사당5동에서 봉헌되었으며 사당5동 성가대의 많은 분들이 나와 성가를 해 주셨습니다. 또한 청량리 엔젤사랑이 함께 성가를 할 수 있게 배려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