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메시아 감상(2)] 원전연주(정격연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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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봉섭 | 작성일2001-12-09 | 조회수637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메시아 감상(2)] 원전연주 (정격연주)
앞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원전연주 또는 정격연주란 작곡자 당시의 연주 규모, 발성법, 당시의 악기와 연주 스타일 등을 연구해서 그에 맞게 연주하는 것입니다. 원전연주에 대한 많은 생각과 그에 따른 정의가 있지만, 마리 레온하르트라는 사람은 이것을 "작곡자가 들어서 낯설지 않은 연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악기와 연주 스타일이 크게 변하면서 고음악도 바뀐 악기와 연주법으로 연주해 왔으니, 아마도 그것을 실제 작곡자가 들었다면 꽤 낯설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작곡자가 생각했던 방식을 살려서 연주하고자 하는 원전연주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졌고, 이제는 세계적으로 주도적인 경향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 글의 초판을 쓰던 1995년에는 2000년쯤이면 한국에서도 원전연주 방식이 많이 보급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어떤 이유인지 아직 생각만큼은 활발하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미 전 세계적인 경향이 된 만큼 한국에서도 앞으로 더욱 널리 보급될 것을 기대합니다. 헨델의 <메시아>가 바로크시대의 대표적인 명작의 하나이므로, 원전연주 단체들이 이 작품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전에 나온 어느 레코드 안내책자에서는 메시아 연주 중 호그우드(Christopher Hogwood)의 연주는 특별한 것이니 소개 않고 넘어가겠다고 쓰기까지 했지만, 이제는 <메시아>의 레코딩에서도 원전연주가 대세인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서는 제가 원전연주를 접하던 과정에서 보았던 특징들을 나름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물론 저도 원전연주에 대해 특별한 공부를 한 것은 아니므로, 더욱 올바르고 잘 정리된 자료가 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악기 및 연주법
원전연주에서는 보통 작곡 당시쯤에 만들어진 악기 또는 그것을 그 방식대로 복제한 악기를 사용합니다. 아예 다른 종류의 악기가 등장해야 하기도 하지만(하프시코드, 리코더, 비올 등등), 같은 바이올린이라도 바로크 시대의 바이올린과 현대의 바이올린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연주법도 다른 점이 많지요. 특히 비브라토(vibrato : 떨림, vibration)를 절제하고 쭉쭉 밀듯이 연주하는 것이 일단 다르게 느껴집니다. 한편 템포도 비교적 빠르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단순히 얘기할 문제가 아니지만, 후대에 연주 편성이 커지면서 템포가 느려지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겠지요. 어쨌든 많은 사람들은 고악기를 쓰는 것 자체보다 그 시대의 양식을 잘 살리는 것이 훨씬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다른 연주법과 고악기들의 특별한 음색들도 원전연주가 인기를 끄는 요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연주 규모 및 편성
우리나라에서도 연말이 되면 매년 빠짐없이 <메시아>가 몇 번씩은 연주되는 것을 봅니다. 특히 여러 교회 합창단이 모여서 매우 큰 규모의 연합 합창단과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연주회를 꼭 열더군요. [할렐루야] 합창은 더욱 빈번하게 연주되는데, 외국 어디서는 [할렐루야]를 만여 명의 합창단을 동원해서 연주한 기록까지 있다고 합니다. 일반 연주회라기보다는 축제 성격이었다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헨델이 <메시아>를 작곡하고 연주하던 당시의 합창단원 숫자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기껏해야 이삼십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겨우 그 인원이 대작 <메시아>를 부른다? 너무 적은 것 같지만 실제로 헨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작곡했으며 그 정도 인원으로 연주하였습니다. 시대가 가면서 연주 규모가 계속 확대되어 왔던 겁니다. 그래서 호그우드(Christopher Hogwood), 가디너(John Eliot Gardiner), 패롯(Andrew Parrott) 등에서부터 이어지는 <메시아>의 원전연주에서는 실제로 이삼십 명 정도의 합창단과 40명 남짓 되는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보통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군살을 뺀 발레리나나 체조 선수처럼 섬세하고 사뿐사뿐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것이겠지요. 아무래도 사람 수가 적으니 웅장함과 박력은 덜하지만, 종교적이고 음악적인 호소력까지 덜하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웅장한 포르테보다 내면에 어려 있는 피아노가 더욱 감동적인 기도가 되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한편 보이소프라노 및 카운터테너의 활용도 빈번합니다. 옛날에는 소프라노와 알토 파트마저도 남성이 노래했다는 얘기를 들어 보셨지요? 한동안 교회에서 여성이 노래할 수 없었던 까닭에, 여성 파트를 변성기 전의 소년이 부르거나 가성을 쓰는 남성(카운터테너), 카스트라토 등이 불렀습니다. 카스트라토는 변성기 전에 거세되어 높은 소리를 그대로 가진 채 몸만 성장한 남성가수로서 (파리넬리라는 이름 들어 보셨지요?), 당연히 지금은 그 명맥이 끊어졌습니다. 한편 카운터테너는 정상적인 남성으로서 다만 가성을 사용하여 노래하는 가수이며, 원전연주 붐과 함께 좋은 기량의 카운터테너들이 다시금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호그우드의 메시아에서는 여성은 독창자로만 기용하고, 합창에서는 소프라노는 소년들, 알토는 카운터 테너들이 맡은 남성만의 합창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합창단은 보이소프라노 16명, 그리고 카운터테너와 테너, 베이스 각 5명씩 총 31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년들은 소리가 약하기 때문에 여러 명 필요했겠지만 다른 파트에선 단 5명씩만이 이 대곡을 연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디너판이나 패롯판 등 다른 연주에서는 카운터테너가 알토 독창자로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창, 발성법
특히 성가대원들은 원전연주를 접하면서 그 노래하는 방법에서 느끼고 배울 것이 많아 보입니다. 우선 소리의 질, 특히 독창자들의 소리가 아주 곱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비브라토, 즉 소리의 떨림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비브라토가 나온다면 긴 음의 끝부분 같은 데서 약간 보이는 정도입니다. 오페라를 한다면 화려한 비브라토가 필요할 수 있고, 근육질의 소리나 격한 소리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오페라 가수들이 부른 <메시아>에서는 대부분 어쩔 수 없이 그런 분위기가 배어 나옵니다. 하지만 교회음악을 하면서도 그와 똑같이 노래한다면 거기엔 문제가 있을 것이며, 보통 비브라토를 거의 넣지 않고 맑게 노래하는 것이 정석으로 통합니다. 소리를 쭉 밀어서 낸다는 느낌이 많이 들고요(절대로 밑의 음에서부터 끌어올린다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정확한 음을 잡아 놓고 그것을 쭉 밀듯이 낸다는 것입니다), 바로크 당시에 하던 대로 트릴과 장식음들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필요한 데서 맺고 끊어 주는 ’articulation’을 어떻게 할 지도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고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성악가 한 사람을 추천하라면 아마 저와 같이 엠마 커크비(Emma Kirkby)를 들 사람이 많을 줄로 생각합니다. 수정처럼 참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소리를 비브라토 없이 고결하게 뽑아 냅니다. 티없이 깨끗한 어린이의 목소리를 완벽한 기량으로 엮어 내는 그의 노래는 고전 이전의 교회음악에 대한 훌륭한 지침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원전연주 부분에서 나이 50인 지금까지도 많은 연주를 해 오고 있는데, 특히 지휘자이며 음악학자인 호그우드와 그 연주단체 Academy of Ancient Music과 함께 한 여러 연주들은 그 하나 하나가 훌륭한 연구 논문이라고 할 정도로 학구적이면서, 단순히 음악적으로만 보아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호그우드의 <메시아> 연주에서 커크비는 제 2 소프라노라는 드문 역할을 맡아서, 이 연주를 정말로 특별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앤드류 패롯 지휘의 메시아에서도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 주고 있습니다.
원전연주 vs 현대적 연주
옛날의 음악을 현대의 악기와 현대의 연주법으로 연주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쁜 연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음악은 작곡가가 처음 창조하지만, 연주자는 곡의 재창조자로서 그 곡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헨델이 보았다면 기절초풍했을 대규모의 메시아 연주를 통해서도 벅찬 종교적, 음악적 감동을 받은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말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이고, 그 기준은 상대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원전연주는 작곡자가 이 곡을 만들 당시의 양식을 연구해서 연주한다는 점, 즉 작곡자의 의도에 가깝게 다가간다는 점에서 그 설득력이 매우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유럽에서는 바로크를 현대적으로 연주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까지 들립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단순히 기술적인 재현이 아니라 실제로 아름다운 음악(종교음악이라면 또한 종교적으로 가치있는 음악)이 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처음에는 원전연주가 학구적인 나머지 그런 감동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 분야가 많이 성숙되면서 이제는 그런 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 듯 합니다. 한국에서, 그것도 아마추어적인 단체들에서는 원전연주라는 것이 멀게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정말로 고악기 또는 그대로 복제한 악기들을 구입한다든지(이미 그에 어울리는 오르간을 갖추었다면 좋겠지만), 그 양식대로 전문적으로 훈련해서 노래한다든지 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헨델이나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등을 연주할 때 장엄하게 한다면서 지나치게 크고 무겁게 노래하는 것보다는, 좋은 원전연주에서 듣는 맑고 날렵한 발성과 악센트, articulation 등을 살려 보고자 노력하는 것들이 더욱 자연스럽고 감동적인 음악을 이루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레고리오 성가나 다성음악도 장대한 오페라처럼 노래할 때보다 절제되고 순수하게 부를 때가 더 장엄하고 감동적인 것처럼 말입니다. 계속되는 메시아 감상글에서도 현대적 연주와 원전연주로 했을 때의 특징들을 리히터(Karl Richter)판과 호그우드판, 가디너판 등을 예로 들면서 쓰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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