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촛불, 떠남...그리고 이종설님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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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욱 | 작성일2003-01-08 | 조회수894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이종설님께
저는 수개월 전에 미사와 옷차림의 이슈가 굿뉴스 자유게시판의 화두가 되었을 때, 의견개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느낀 바가 있어서 가능한 한 침묵을 유지하려고 했던 해외 교포입니다. 물론 성가대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오랫만에 성가게시판에 들러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을 좀 느끼고 있던 차에 최근에 님께서 쓰신 두개의 글, 즉 "지겨운 촛불"과 "떠나고 싶다"고 말씀하신 글을 보게 되었고 저의 의견을 밝히고자 합니다.
인터넷 게시판에 쓰는 글이 남에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제가 충분히 알고 있으므로 가능한한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는 것을 우선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님께 상처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저의 기본적 의사와는 반하여 순전히 저의 글쓰기 실력의 미진함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수없이 많은 개신교와 그 신자들이 사회를 지배하다시피하는 한국에서, 정통성을 갖춘 우리 가톨릭이 그래도 종교인들 가운데서는 진리와 진실과 정의에 언제나 한발짝 더 앞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언제나 우리는 시위대나 시민단체 편에 서야한다는 바보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가톨릭 내부 문제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성모병원사태에서 그들의 수많은 절규와 외침을 들으면서도 많은 교우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유감스럽지만 저도 개인적으로 그 사태에 대해서는 잘잘못의 판단을 유보합니다.
우리가 흔히 촛불시위라고 말하고 있는 그 용어는 사실 처음에는 촛불추모행렬이었습니다. 이름이야 어떻든 좋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기대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변질되어 가는 경향이 있어서 비난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시작된 동기와 의도 등 그 본질적 순수함을 폄하해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촛불행렬은 어린 두 학생이 사고를 당하여 죽음에 이르렀고 이를 조사/처리하는 과정이 불합리하고 부정직한 방향으로 전개된 것에 대해, 이름모를 한 젊은이가 평화적으로 함께 모여 촛불을 밝히자는 바램을 인터넷을 통해 말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국민들이 함께 자발적으로 참여합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많았던 것을 보면 그만큼 평화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죽은 영혼의 넋을 기리고 꽃다운 어린 학생들을 죽게한 상황을 제대로 조사조차 할 수 없는 우리의 무력함을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 추모행사는 해외 교포들에게까지 퍼져 지구를 꺼지지 않는 촛불의 띠로 연결하기도 했습니다.
소녀들이 유관순열사의 반열에 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추모인파가 나라의 정체성을 흔드는 것인지 아니면 정체성을 찾자는 것인지는 조금만 관심을 가지시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항입니다. 지극히 평화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던 국민들의 높은 의식수준과 그 숭고한 가치는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일부와는 분명히 별개의 것으로 생각되어야 마땅합니다.
저는 정의구현 사제단이 하시는 일들에 대해서 참여는 물론 큰 관심을 가져 본 적도 없습니다만, 그 분들의 역사의식과 참여정신은 감사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정의구현 사제단을 비롯하여 우리 교계에서 여중생 사건과 관련하여 가졌던 행사나 미사를 몇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 11월 27일 정의구현 마산교구 사제단이 진해에서 추모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두 여중생의 추모음악회를 가졌었는 데, 날짜와 장소는 체크하지 못했습니다. - 12월 2일 마산교구 창원 사파 성당에서는 안명옥 주교님의 주례로 ’살해미군 무죄판결 항의 시국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이는 80년대 지학순주교님 이후 주교님의 주재한 두번째 시국미사였기 때문에 그 의미가 깊습니다. - 12월 2일 ~ 9일까지 정의구현 사제단은 ’살해 미군 회개를 위한 생명 평화 단식기도회’를 개최했으며 8일간의 단식기도회가 끝난 후 9일에는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선거유세도중 이회창씨가 참석하였다가 주례신부로 부터 심하게 무안을 당했다고 해서 유명해진 미사입니다. - 12월 13일 대구 대교구에서는 400여명의 사제 수녀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건 관련 야외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그밖에 다른 건들도 있었을 터이지만 잠깐동안 검색해 본 바로는 위와 같군요. 비록 그 분들이 서해교전에서 죽은 병사들을 위해 기도회나 추모회를 갖지 않았다고 해서 위에 열거한 미사나 기도회의 가치와 의미가 평가절하 될 수 있는 걸까요?
서해교전에 죽은 군인들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그 사건은 여중생 살해 사건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한가지 저도 궁금한 게 있습니다. 죽은 군인들을 위하여 연미사가 봉헌되길 원하신다면 그 사건으로 인하여 함께 죽은 북한 군인들도 동일하게 추모해서는 안될까요?
이 게시판에서 서해교전의 발발 원인과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입니다. 그 전투에서 죽어간 영혼들의 넋은 내편 네편을 가리지 않고 위로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데올로기의 함정이 숨어있을 수 있고, 정의구현 사제단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 사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해외 노사모의 한사람으로서 노 당선자가 시위 자제를 요청한 것에 대해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후보시절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상황과 위치와 입장이 달라진 것이겠지요.
자, 정리하겠습니다. 저는 님이 말씀하고자 하신 속 뜻은 결국 - "촛불추모의 숭고한 뜻은 공감한다. 그러나 이를 전략적 정략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 곳은 엄연히 성가를 이야기하는 게시판이지 시국을 논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므로 계속되는 충고와 권유에도 불구하고 지겹게 반복하는 그 행위를 이풀잎과 그 추종자들은 즉시 그만두어라..." 이거 아니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저는 그 뜻에 100% 동의 합니다.
워낙에 풀잎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고래심줄 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으며 상식과 원칙을 반복적으로 무시하는 행위에 질릴대로 질렸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지, 원래의 님의 뜻은 위에서 방금 말한 그런 의미였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긴 글을 쓰는 것은 빈대 때문에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지 말자고 고언을 드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종설님께 부탁말씀 드립니다. 저는 이 게시판을 무척 사랑합니다. 성가대와 맺은 인연이 짧고 해외에 거주하는 바람에 미사전례와 성가대에 대한 정보를 가장 손쉽고 광범위하게 얻을 수 있는 곳이 여기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님이 올려주신 글들로 부터도 마찬가지로 많은 것을 배우고 저에게는 피가되고 살이 되었습니다. 제발 떠나신다는 말은 말아 주십시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느낌입니다.
성가를 말하는 이들이 이 곳의 주인이라면 불청객 때문에 주인이 떠난대서야 되겠습니까? 다함께 좀 더 노력해보기로 하시지요. 미력이나마 저도 돕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라파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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