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서정도 신부님곡들의 행방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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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남진 | 작성일2004-04-05 | 조회수560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임용학 형제님.
서정도신부님의 그 곡들이 전해지나요? 제가 과문한 탓에 그날 서신부님의 이름을 처음 들었습니다. 서 신부님의 여러 작품들의 행방이 궁금하군요. 초창기에 서양음악을 공부한 분이 후에 사제가 되어 성가 작곡에 기여한 것은 길이 알려야 할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의 한 대목같습니다.연대로 보아도 서신부님이 훨씬 앞서서 활동하신것 같습니다. 대구는 일찍부터 남방천주교회라하여 독립적으로 교구 수준의 활동을 하던 곳이라 열심한 분들이 많이 계셨던 곳인데 생존해 계셨던 분들중에 누가 기억하는 분이 없을까요?
다른 이야기인데 ’ 백동(혜화동성당) 70년사’ 인가를 보다가 어디에선가 나운영이란 이름이 나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가집에 실린 두곡이 유난히 제 정서에 닿았던터라... 나운영과 가톨릭? 항상 의구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가족들을 만나서 확인해 보아야겠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전례음악봉사자 연수회에서 최병철 교수님의 증언으로 확인 할 수 있게 되어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최상준 시몬신부로부터 1944년 영세를 받았다는 것과 47년의 개종. 당시로서는 교회로서, 음악계로서도 큰 충격이었겠습니다. 최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초기교회 음악사를 더듬어 볼 수 있었습니다. 올해로 명동성당에 오르간이 설치된지 만 80년이 되고 그 당시의 오르간은 대신학교로 가져갔다는 대목도 그렇고... 이런 역사의 편린이 쌓여서 전체를 이루어가는 것이니까. 선배들의 증언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제가 알기만해도 안익태, 전봉초, 윤용하등 상당수의 이름이 떠 오르는데...음악가의 상당수가 가톨릭 신자들이었다는 옛 역사와 현실을 비교해 볼 때. 음악계의 평신도운동이 더 활발해지도록 모두가 힘을 합해야겠습니다. ( 댓글이 잘못되어 독립적으로 올라갔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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