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국악 성가 와 가톨릭 전통음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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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필수 | 작성일2004-08-11 | 조회수1,543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아래 그레고리오 성가와 국악 성가에 대한 글을 읽고 제 개인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어 이글을 쓰게되었습니다. 저는 음악전공자가 귀한 대덕 연구단지에서(아마 남자의 경우에 해당할 것임.) 성가 지휘를 18년 째 하고 있는 비전공 지휘자입니다. 우선 음악(성가)은 그 느낌의 전달에 있어 표현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이것을 3가지 단계로 구별해 보면
1) 작곡자가 의도한 표현, 2) 음악을 부르는 사람의 표현, 3) 그리고 듣는 이에게 그 음악이 전달되어져 받아들여진 느낌. 결국 가장 마지막인 “받아들여지는 느낌(3번)”이 원래 의도된 표현(1번)과 일치를 이룰수 있어야 비로소 훌륭한 음악으로 구현되는 것이라고 하겠네요. 다행히 성가의 경우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그러나 매우 중요한 하나의 힌트가 있습니다. 바로 표현하고자 하는 가사가 기도이기 때문에 성가가 기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가는 이 기도의 느낌과 일치할 수 있는 가락을 작곡자가 여하히 부여하느냐에 따라 훌륭한 성가인지 아닌지의 여부가 결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예술적인 면은 일률적으로 계수화 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닙니다만 ---). 이런 점에 있어 우리 가톨릭 전통 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는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전달함에 있어 (1) 번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2) 번 항목에 대해서는 성악가나 성가대의 몫이 주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되어 설명을 유보하겠습니다. 마지막 (3) 번에 대한 사항으로 “듣는 이에게 받아들여지는 음악의 느낌”은 듣는 이에 의해 판단되어지는 사항이기 때문에 일률적이고 객관적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굳이 평가를 해 보자면 듣는이가 성장하며 은연중에 몸에 배어든 감성, 다시 말해 그 민족이 갖게되는 고유의 정서와 관련이 있을 것이며 그 몸에 배어있는 정서와 일치될 수 있을 때 가장 극대화 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음악(성가)로서의 느낌 전달에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성가의 경우는 성가가 가장 효과적인 기도의 방법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기도의 느낌을 전달하는 음악의 역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할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3) 번 항목에서는 우리 국악 성가가 우리들에게는 친숙한 가락이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으로 그 느낌이 전달 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3) 번 항목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우리 교회의 전통 분위기와 잘 일치하는, 즉 (1) 번 항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국악 성가가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축일 준비를 위해 새 미사곡을 선정할 때 하느님의 어린양 (Agnus Dei) 곡을 음미하며 곡을 선정하는 편입니다. 이는 저희 대전교구 음악 감독이신 김한승 신부님이 작곡하시면서 표현하고자 하신다는 그 느낌에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강수근 신부님의 우리가락 미사곡 중의 하느님의 어린양이 가슴을 찡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 듯 하며 애절한 느낌 면에서 색다르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는 우리 가락의 친숙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당연히 (3) 번 항목에서 좋은 효과를 내는 곡 중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단지 기도말이 개편되는 과정에서 국악 미사곡의 version 이 여러 개 생겨났고 현대 기법과 연계되며 국악의 맛이 퇴색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어진 점이 아쉽습니다.) 그렇다고 제 개인적으로 국악을 선호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국악이 좋고 싫고를 떠나 우리에게 익숙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한 10년전쯤 강수근 신부님 국악 미사곡을 처음 접하고 용기있게(?) 성가대 연습에 돌입했던 기억이 납니다. 국악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반복적인 듣기에 의해서 어느 정도는 곡을 이해 할 수 있었고 중모리, 자진모리에 대한 사전 이해가 없이도 단지 곡의 느낌으로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가락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희 성가대의 경우는 그레고리오 성가 뿐만 아니라 다성음악도 많이 선호하여 이미 다성음악을 시도한 지가 한 6-7년 되었으며 요즈음도 한달에 한번은 다성음악을 특송으로 애용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가톨릭 전통음악은 하면 할수록 그 맛이 새로워지고 깊어지며 전례와 잘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사중에 전 신자가 함께하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성당 천정에 울려퍼지고 그 은은한 반향(Echo)을 음미하게 되면 천상 음악 같다는 느낌을 가끔 받게 되기도 합니다. 저희 성가대원들도 처음에는 어색해 하던 다성음악이 점점 좋게 느껴져 이제는 그 맛을 제대로 알 것 같다고들 합니다.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데 근 5년은 넘게 걸렸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신자들의 반응입니다. 위에서 얘기한 (3) 번 항목에 대한 것이지요. 현대곡을 특송으로 했을 때와 다성음악을 특송으로 했을 때의 신자들의 반응은 저의 생각이나 성가대원 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현대 곡 쪽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2)번 항목인 표현에서의 미숙함이 있었겠지만 냉정한 쪽에서의 우리의 현실은 그레고리오 성가나 다성음악 같은 가톨릭 전통음악은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더 할 수 없이 좋은 전례음악일지 모르겠지만 일반 신자들에게는 조금 어색한 감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지요. 또 한가지, 미사때 봉사하는 국내의 성가대 중에 그레고리오 성가나 다성음악을 특송으로 하는 성가대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점이 우리 한국 가톨릭이 극복해야하는 사항일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가톨릭 성음악에 관심있는 많은 분들을 중심으로 가톨릭 전통음악의 계승을 위해 그레고리오 성가나 다성음악의 보급과 미사에의 이용에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취해야 할 듯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전례 교육에서 이러한 점이 강조되어 부각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지도자들에게 친숙해 져야하고 그들에 의한 반복적인 시도로 신자들에게 익숙해 져야만 위의 (3) 번 항목에 대한 느낌이 커질 수 있을 테니까요. 또한 (1) 번 항목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국악 풍의 성가 개발에도 유의한다면 우리 교회 전반적인 전례음악 측면에서 균형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이 곳 전례 음악 선배들께서 누누이 강조하셨던 교회 차원에서의 노력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때 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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