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Te Deum Laudamus, 성 암브로시오 사은 찬미가'에 대하여(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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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병철 | 작성일2005-09-15 | 조회수783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Te Deum Laudamus, 성 암브로시오 사은 찬미가'의 국내 변천 과정; 당시 이문근 신부님께서는 서울 한강본당 주임으로 계셨고 본당 사목회가 회갑연을 마련했다. 회갑연은 잔치와 음악회 등 두 가지 행사로 꾸며졌다. 신부님께서는 당신 친필 작품들을 나에게 정리하게 하셨는데 '복자찬가(현 순교자 찬가)', 라틴어 가사의 'Ave Maria'와 'Te Deum' 외에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미완성의 선율 두 곡이 전부였으며 몇 곡이 더 있는데 신학교에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Ave Maria'; 소박하고 근엄하셨던 신뷰님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선율 아래에 7~8 마디 정도의 arpeggio 반주가 깔려 있었던 미완성의 소품이었다. 'Te Deum'; 남성 unison 위주의 흐름에 간간히 2부 또는 3부 화성진행이 있는가 하면, canon 기법이 구사되어 있었다. 내가 할 일은 이 두 곡을 혼성4부로 재구성하여 당시 명동 가톨릭합창단(지휘; 성두영)에 넘기는 것이었다. 이 연주회는 성두영 지휘로 성대하게 치뤄졌다. 나는 1966~7(주임; 이문근)과 1983~90(주임; 김수창, 김병도) 등 두번에 걸쳐 명동 가톨릭합창단을 지휘한 바 있다. 1984년의 어느 대미사에 이 'TE Deum'을 봉헌 하면서 나는 나 스스로를 얼마나 꾸짖었는지 모른다. 큰 스승의 작품을 이토록 졸렬하게 다룰 수가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그 안에 예술성도 장인 정신도 찾아 볼 수가 없는 우스꽝스런 광대놀이로 일관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새롭게 작심하고 이 곡에 다시 손을 대었던 것이다. 아예 이 참에 가사도 우리 모두가 알아 듣는 우리 말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원문을 그대로 옮긴 우리말 기도문을 살려내게 되었다. 나의 원칙은 '글자는 물론 바침 하나도 기도문은 훼손 되어서 안된다' 였다. 85년에 KBS 교향악단 협연으로 명동성당, 국립극장에서 나 자신의 지휘로 연주하였을 때 나의 스승 이문근 신부님께서는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 이 때의 그 많았던 갈채와 찬사를 가슴에 담고 용산 성직자 묘역에 잠 드신 그 분의 영전에 찾아갔던 기억이 새롭다. 이 곡은 그 후에 부천시립합창단 등 여러 성가대들에 의해 연주 되었으며 내 뜻에 따라 약간의 수정이 가해져 마침내 완전한 것으로 탄생케 되었다. promusica.co.kr 온라인 악보 보기. 017 207 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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