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예식 중 율동 도입에 대한 교황님의 말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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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소순태 | 작성일2006-06-06 | 조회수1,178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 찬미 예수님!
아래의 게시글 6375에서 이미 안내해 드린 내용들 중에서, 일전에 약속드린 바도 있고 또 전례 예식 중 율동 도입 행위가 국내에서 조만간 더 자주 발생하려는 듯 하여, 오늘 오후 점심 식사 후에 모처럼(?) 시간을 내어, The Spirit of Liturgy라는 영문 책에 있는 전례 예식 중 율동(Dancing) 도입에 대한 교황님의 말씀을 번역하여 보았습니다. 다들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Dancing is not a form of expression for the Christian liturgy. In about the third century, there was an attempt in certain Gnostic-Docetic circles to introduce it into the liturgy. For these people, the Crucifixion was only an appearance. Before the Passion, Christ had abandoned the body that in any case he had never really assumed. Dancing could take the place of the liturgy of the Cross, because, after all, the Cross was only an appearance. The cultic dances of the different religions have different purposes—incantation, imitative magic, mystical ecstasy— none of which is compatible with the essential purpose of the liturgy of the “reasonable sacrifice”. It is totally absurd to try to make the liturgy “attractive” by introducing dancing pantomimes (wherever possible performed by professional dance troupes), which frequently (and rightly, from the professionals’ point of view) end with applause. Wherever applause breaks out in the liturgy because of some human achievement, it is a sure sign that the essence of liturgy has totally disappeared and been replaced by a kind of religious entertainment. Such attractiveness fades quickly—it cannot compete in the market of leisure pursuits, incorporating as it increasingly does various forms of religious titillation. I myself have experienced the replacing of the penitential rite by a dance performance, which, needless to say, received a round of applause. Could there be anything farther removed from true penitence? Liturgy can only attract people when it looks, not at itself, but at God, when it allows him to enter and act. Then something truly unique happens, beyond competition, and people have a sense that more has taken place than a recreational activity. None of the Christian rites includes dancing. [The Spirit of the Liturgy, (SF, CA: Ignatius, 2000), p. 198]
춤추는 행위는 기독교 전례를 위한 표현 양식이 아닙니다. 3세기 경에, 일부 영지주의적-신성부정적(Gnostic-Docetic) 집단에서 춤추는 행위를 전례에 포함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십자가형은 오로지 외형적 형상일 뿐이었습니다. (이들의 이단적 주장에 의하면) 수난 전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신을 포기하셨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그가 실제로 (십자가형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단적 주장의 결과로서) 왜냐 하면, 결국에, 십자가는 단지 (의미없는) 한 외형적 표현이기 때문에, 십자가형을 재현하는 전례 대신에 춤추는 행위로 바꿔치기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 종교들에 있어 집단 춤 행위는 - 주술, 모방 마술, 이상스러운 의식 혼란 상태 등의 -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 중 어떠한 것도 "이유있는 희생" 그 자체인 전례의 본질적 목적에 부합하는 것은 없습니다. (어떠한 장소에서든지 간에 전문 춤 흥행단에 의하여 수행되는), 통상적으로 (전문가적 입장에서 볼 때에는 당연하겠지만) 환호와 박수소리로 끝나는, 춤추는 무언극을 도입함으로써 전례행위를 흥미롭게 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짓입니다. 전례 중의 어느 순간에서든 사람들이 실시한 행위 때문에 환호와 박수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은 전례의 본질이 전적으로 사라지고 그것이 일종의 종교적 유흥으로 바뀌어졌음을 나타내는 확실한 징후입니다. 그러한 매혹은 빨리 사라지게 되는데 - 다양한 형태의 종교적인 기분 좋은 자극들을 점차 저 많이 혼합하게 되는, 레저를 추구하는 마켓에서 경쟁하여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저 자신 또한 통회의 예식이, 말할 필요도 없이, 일련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는, 춤 공연으로 바꿔치기 된 것을 경험하였습니다만, 더 제거할 만한 그 무엇이 진정한 뉘우침에 있기는 한 것인지요? 전례가, 전례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천주를 바라보아, 천주께서 (전례 중에) 강림하시어 (우리들에게) 작용하실 수 있을 때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심미안적) 경쟁 행위를 훌쩍 뛰어넘는, 참으로 단 하나뿐인 그 무엇이 (전례 중에) 벌어지게 되어, 사람들은 유흥성 행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그 무엇이 (전례 중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어떠한 종류의 기독교 예식도 춤추는 행위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The Spirit of the Liturgy, (SF, CA: Ignatius, 2000), p. 198]
위의 글에서 마지막 부분, 즉
전례가, 전례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천주를 바라보아, 천주께서 (전례 중에) 강림하시어 (우리들에게) 작용할 수 있게 할 때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심미안적) 경쟁 행위를 훌쩍 뛰어넘는, 참으로 단 하나뿐인 그 무엇이 (전례 중에) 벌어지게 되어, 사람들은 유흥성 행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그 무엇이 (전례 중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핵심 내용인 듯 하며, 특히 실내 혹은 실외를 불문하고 전례예식 중에 율동의 도입은 안된다는 말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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