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은총의 순간들 3- 아시아가톨릭평신도대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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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남진 | 작성일2010-09-21 | 조회수1,158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9월1일 첫날 개막미사와 저녁의 기도까지 잘 진행되자 로마에서 온 전례 담당 캐빈신부는 한국교회의 정성과 노력을 보았다는 듯 원더풀이라고 했고 얼굴에 웃음이 보인다( 내가 웃지 않고 긴장한터라 상대도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기도시간을 좀 더 잘 운용해야겠다는 생각에 기도시간 성가를 맡은 포콜라레의 젊은이 담당 자매와 다음날 아침 기도시간에 대한 의논을 하고 늦게 집에 돌아왔다. 9월2일 아침 6시30쯤, 집을 나서야 하는데 태풍의 위세가 대단하다. 비바람을 뚫고 나가기가 겁나 멈칫거리고 있는데 명동전례담당신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간밤의 비바람으로 꼬스트홀 위에 걸었던 현수막이 찢겨지고 마당에 쳐놓았던 몽골 텐트들이 날아가고 차가 피해를 입었단다. 서둘러 나가는데 태풍의 위세로 내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다. 걱정이 앞선다. 이런 날씨라면 내일 외국인들을 이끌고 명동에서 절두산까지 순례 하는 것도 힘들겠다는 생각이다. 절두산의 미사는 저녁 7시로, 한참 퇴근시간이라 길이 막히므로 참가자들을 이끌고 지하철로 가기로 되어있다. 내 한몸도 힘든데 어떻게 하나, 어떻게 수백명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나 , 과연 야외미사는 가능할까? 여러 걱정이 된다. 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이 그리는 하느님의 모습과 한국인들이 느끼는 신앙적 영감을 국악미사곡을 통해서 전해 주고 싶었다. 올해초 서울국악성가합창단을 발족시킨 예수고난회 강수근신부께 행사 취지를 알리고 미사성가를 의뢰한 터이다. 애초에 실내미사였던 9월 3일의 미사는 근 50명에 달하는 국악합창단과 거문고, 가야금, 대금, 소금, 아쟁,장구,등 8명의 하늘소리국악관현악단의 반주단 규모 등과 대회참가자 3백50여명을 계산할때 넉넉한 장소에서 펼쳐져야한다고 하여 방향을 바꾼 것이다. 성경말씀대로 내일 걱정은 내일 하자. 모든것을 하느님 섭리에 맡기는 수 밖에 없었다. 9월2일의 회의시작은 오전 8시30분 아침기도로 시작한다. 오늘의 기도 시간은 I LOVE YOU LORD 노래로 연다. 어제 저녁 회의가 늦게까지 계속되고 8시에 저녁식사 , 그리고 밤 9시30분에 환영 리셉션이 있었다 . 모두들 밤 11시 정도에나 잠자리에 들수 있었을텐데 태풍속에 잠을 제대로 잘수 있었을까 싶은데도 거의 정시에 참가자들이 회의장에 도착한다. 11명의 남녀 젠 (청년 포콜라레 )들이 기타 반주로 "I Love You LORD"를 조용히 리드해 나가자 어느새 회의장 안에는 전체의 합창이 이어진다. 나는 처음 선곡 할 때 가톨릭굿뉴스의 베드로신부(양승국신부)의 묵상 글에 깔린 이 노래가 쉽고 단순해서 골랐다. 막연히 좋다는 생각이었지 그렇게 이내 세계인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전체가 함께 부르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어리둥절해졌다. 나 같은 할머니만 이 노래의 위력을 몰랐나? 차분한 노래와 기도 속에 밤새 요동치던 태풍도 멀리 물러나는것 같다. ------------------------------------ 행사 3일째이다. 9월3일의 아침기도를 마치자 나는 저녁 7시의 절두산 순교성지 야외미사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광주대교구에서 빌려온 80벌의 제의를 싣고 탑차에 끼어앉아 일찍 떠났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런 뒷 준비 보다는 회의장안에 앉아서 한 사람의 청중이 되고 싶다. 미얀마, 몽골,투르크메니스탄 , 파키스탄, 스리랑카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 미사 참례 하러 갈때 생명을 걸고 가는 나라, 간신히 묵주기도만 할 뿐 15년간 사제를 본 일이 없는 나라...아시아 각국의 생생한 이야기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내용들이다. 자신감이 어느새 자만간, 자족감으로 변해 위기의 싸인이 오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딴 세상, 제1 세계 국가이다. 종교때문에 탄압과 차별을 받는 나라도 아니고, 오히려 교회안에 인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풍요가 넘친다. 얼마나 감사한가? 솔직해져 보자. 우리가 언제 아시아 교회를 우리 이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기회만 되면 유럽 성지 순례다 어디다 하며 교회도 구미지향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성경은 이웃사랑을 가르치는데 내 나라 가까이의 이웃나라 교회들은 우리 이웃의 테두리 안에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경제력이 낮다고, 신자수가 적다고, 믿음의 색깔이 다르다고 외면했던 것이다. 우리가 선교 230여년만에 5백만의 신자를 갖게 된것은 생명을 바쳐 주님을 선포하고 증언한 신앙선조들의 덕분이다. 우리는 그분들의 순교 영성을 잊지 말고 오늘의 순교자가 되어 주님을 따라 열방에 주님을 선포하며 살아가야한다. 그러기에 오늘 절두산 순교성지에서의 아시아가톨릭평신도대회 사흘째 미사(염수정 안드레아주교 집전)는 뜻깊다. 많은 회의론속에 절두산순교성지 박물관 관장신부님은 뚝심있게 야외미사를 추진하셨다. 저녁 7시미사인데 성가대는 세 시간 전부터 와서 마지막 연습을 한다. 절두산에서는 전날 태풍의 영향으로 애써 준비한 시설물들이 모두 날아가고 저녁식사 자리를 다시 준비 해야하는데도 감사하는 모습들이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거짓말같이 푸르다. 비가 갠 뒤 후끈거리는 길을 걸어 지하철을 타고, 다시 내려 도보로 성지에 도착한 대회 참가자들은 끈끈한 더위 속에도 기쁘게 순례를 하는 모습이다. 행렬로 시작, 한강이 넘실대며 흐르는 절두산의 뛰어난 풍광속에 유장한 강수근신부의 국악미사곡이 흐르는 이날 밤 야외미사는 장관이었으며 참가자 모두에게 특별한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안겨 주었던 것 같다. 이날 작곡가 강신부 자신이 지휘해 봉헌된 국악미사는 국악의 발성등을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이, 음표만 보고 불렀던 성가와는 완전히 다른 맛, 느낌으로 일반본당 성가대들의 바른 국악성가 연주의 책임을 느끼게도 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국제회의에 따른 미사 전례 인지라 외국참가자를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 한남동 국제성당 성가대의 수산나 자매가 외국인과 한국인들이 함께 부를수 있는 영어성가곡들을 뽑아주었다. 이 자료를 기본으로 하여 매 미사마다 입당, 봉헌,성체, 파견에 영어노래 2곡, 한국 성가 2곡을 넣었다. 전례서에 한국어 노래는 일일이 로마나이즈해 외국인들도 부를 수 있도록 표기했다. 영어로 부를지라도 한글가사가 있는것은 밑에 가사를 병기했다. (더운 여름날 악보 사보를 해 준 아마뚜스합창단의 신문교형제에게 감사한다). 또한 선곡을 할 때 주집전자, 보조집전자의 나라를 고려, 특송 성격으로 '예수님 따르기로' (인도성가), 사랑의 어머니(폴란드) , 주를 찬미하여라(독일)를 선곡했다. 그러나 절두산 한국성지 미사때 참가자들은 Ju nim ja bi rul~ (주님 자비를 ~)이렇게 애써 로마나이즈해서 표기한 책은 아예 펼칠 생각도 않고 흠뻑 국악 미사에 빠졌으며 , 미사 뒤에 환상적이라는 표현을 했다. 전례담당 캐빈신부는 한국을 떠날 때까지 국악성가중 ' 알렐루야' 가 특히 인상적이었던듯 그 곡조를 흉내내 보려고 애썼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고 이날 저녁 장엄한 성지 미사를 바치면서 나는 우리는 참으로 하느님으로 부터 선물을 많은 받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고, 받은것을 나눔으로써 한국교회가 세계 교회 안에서 선택받은 교회로서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느낌이 굳어져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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