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리] 시나이 산은 어디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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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9-02 | 조회수3,310 | 추천수1 | |
[성경과 문화] 시나이 산은 어디인가
“산에 오르지도 말고 산자락을 건드리지도 마라. 산을 건드리는 자는 누구든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탈출 19,12).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교 순례객들은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남부 화강암 산악 지대에 위치한 ‘제벨 무사’(모세의 산, 해발 2285m)를 찾아 나선다. 매일 아침 순례자들은 산 정상에 올라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면서 삼천 년도 더 된 까마득한 옛날, 모세가 받은 십계명을 떠올리며 그 감동을 몸으로 느낀다. 그런데 문제는 시나이 산의 위치가 정확히 어딘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나이 산에서 유다교 최고 경전인 오경의 핵심 곧 ‘십계명과 율법’이 전해졌기 때문에, 그 산은 매우 중요한 현장으로 기억되고 보전되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구약 시대에 시나이 산을 기념하고 방문한다는 것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왜냐면 오경은 분명하게 ‘누구든지 시나이 산에 오르기만 하면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스라엘 왕정 시대에는 시나이 산의 위치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엘리야 예언자가 찾아간 호렙 산은 단지 브에르 세바 남부의 한 지역으로 나타난다(1열왕 19,1-14 참조).
그렇다면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에 시나이 산의 위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점점 잊혀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오경을 절대적으로 신봉했던 유다교에서 시나이 산은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던 기억의 장소’이지만, 현장에 다가갈 수 있는 순례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라비아의 미디안
고대 기록을 보면 시나이 산은 기원전 3세기 이후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약 600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의 북서부, 오늘날 헤자즈 북부인 ‘아라비아의 미디안’ 지역에 있는 것으로 자주 등장한다. 아마도 당시에 홍해를 경유하여 아라비아와 향료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다인들이 아라비아의 북부 지역을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곳을 미디안으로 여긴 것 같다. 그러면서 시나이 산도 당연히 그곳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원전 2세기에 번역된 칠십인역 성경에서 미디안은 ‘마디암(Madiam)’으로 표기되며, 특정한 경우 ‘마디암 도시’로 나타난다. 기원전 3세기 말 알렉산드리아의 유다인 역사가 데메트리오스(Demetrios)와 기원후 1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유다인 철학자 필로(Philo)는 모세가 이집트 관리를 살해한 후 아라비아로 피신했다고 기록했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후 아라비아에 들렀으며(갈라 1,17 참조), 아브라함의 두 아내 하가르와 사라를 ‘시나이 산’과 ‘예루살렘’으로 대비시켰다(갈라 4,21-31 참조). 이 비유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바로 “아라비아에 있는 시나이 산”(갈라 4,25)이라는 구절이다. 아라비아는 갈라티아서를 기록한 기원후 50년대에 ‘나바테아 왕국’으로 불렸을 것이다. 기원후 1세기의 유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저서 《유다 고대사》에서 모세가 이집트 관리를 살해한 후 탈출하여 홍해변 ‘마디안 도시’에 도착하였으며, 시나이 산이 그 지역에서 가장 높았다고 묘사한다.
* 김성 님은 협성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이자 같은 대학 성서고고학 박물관장으로, 성서고고학과 성서지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09년 7월호, 김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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