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창세기: 하느님의 어리석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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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1-08-26 | 조회수3,032 | 추천수1 | |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창세기 - 하느님의 어리석음
15,17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인간과 계약을 맺으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께서 다시 땅과 후손을 주시겠다며 계약을 맺자고 하십니다. 여기서 ‘계약을 맺다’는 말은 ‘카라트 브리트(karat berit)’로, 직역하면 ‘계약을 자르다’입니다. 왜 계약을 자른다고 할까요? 창세기 15장 8절에서 아브람은 “주 하느님, 제가 그것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를 비롯하여 여러 짐승을 당신께 가져오라고 이르십니다. 이 말씀에 따라 아브람은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와서 반으로 잘라, 잘린 반쪽들을 마주보게 차려 놓”습니다(10절). 이 표현은 고대 근동에서 널리 알려진 계약 체결 양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계약을 충실히 지키겠다는 표시로 짐승을 반으로 잘라 놓고 계약 당사자들이 잘린 짐승 사이를 지나가는데, 이는 계약을 어길 경우 그렇게 되어도 좋다는 맹세입니다.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지나갑니다(15,17). 연기와 불은 어둠 속에서 가장 잘 드러나기에 주님의 현존을 뜻합니다. 그것이 제물들 사이를 지나감으로써 희생제사를 받아들이고 계약이 이루어졌음을 알립니다. 이어서 주님께서는 이집트 강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땅을 아브람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시는데(18절), 이는 다윗과 솔로몬 때 실현된다는(1열왕 5,1 참조) 약속의 땅의 경계 중 가장 넓고 이상적인 영역입니다. 이 계약에서 아브람이 지켜야 할 사항은 없습니다. 곧 주님께서 주관하고 베푸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16,2 “행여 그 아이의 몸을 빌려서라도 내가 아들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하느님께서는 느리십니다.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분이시니 약속을 기다리는 인간은 초조합니다. 그래서 결국 인위적인 해결책을 강구합니다. 12장 10절 이하에서 아브람은 기근이 심해지자 이집트로 내려가 하느님과의 약속을 생각하지도 않지만(불신앙), 이제는 반대로 안달하며 스스로 약속을 실현하려고 합니다(얕은 신앙). 그리하여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는 자기의 이집트인 여종 하가르를 데려다, 남편에게 아내로 줍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자리 잡은 지 십 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16,3). 적어도 십 년 동안 약속의 실현(자식)을 기다린 셈이니 함부로 아브람과 사라이를 나무랄 수 없습니다. 사라이는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기를 바라면서 그 일을 했습니다. 여인으로서 다른 여자를 남편 품에 안겨 주는 것은 큰 희생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식대로 한 희생이며, 하느님의 뜻을 마음대로 해석한 결과입니다. 결국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상황이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6장은 하느님의 뜻이 실현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아브람과 사라이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인간적이며 합리적인 계획을 짜냈지만, 하느님의 생각(계획)은 분명히 달랐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생각하고 이해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하려 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의 계획이 인간의 지혜와 좋은 의도로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하가르 설화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집을 떠난 자(하가르)와도 동행하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밖에 있는 인간에게도 눈을 돌리시고 그를 당신의 역사 계획에 포함하여 광야에서 울부짖는 하가르와 이스마엘을 위해 오아시스를 세우십니다. 진정 그분은 ‘돌보시는 하느님’이십니다(16,13).
[성서와함께, 2009년 4월호, 배미향 수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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