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예수님과 다시 새롭게12: 새로운 살림살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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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1-12-21 | 조회수3,476 | 추천수1 | |
예수님과 다시 새롭게 (12) 새로운 살림살이 “살림”은 살리는 일, 살려내는 일을 뜻한다. “살리다”는 “살게 하다, 죽이지 않다”, “죽지 않도록 하다”를 의미한다. 살림의 반대말은 죽임이다. “살이”는 살아가는 일이다. 그래서 살림살이는 살림을 살아가는 일이다. 살림은 한 개인이나 집안이 삶을 꾸려가는 방식이다. 사람은 살림을 살아가는 존재이고, 삶은 살림을 실천하는 자리이다. 살림을 생활화하여 삶의 일로 삼는 것이 살림살이이다. 살림살이는 죽이지 않고, 죽지 않도록 감싸주고 보살피는 삶의 방식이다. 우리는 사람-사이(人間)에서 살림살이를 살아야 한다. 살림살이는 사람살림, 사람살이이다. 그래서 우리의 살림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역사적 예수님의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즉 그분의 일은 살림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을 살리셨다. 그분은 사람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병든 이를 고치셨고 죽은 이를 살리셨다. 특히 예수님의 살림은 식탁 공동체에서 잘 드러난다. 사실 역사의 예수님은 먹고 마셨다. 예수님이 먹고 마심으로써 인간의 일상적인 삶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예수님은 인간의 가장 평범한 행위, 즉 가장 일상적인 삶이 구원의 자리가 되게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혼자서 먹고 마시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 함께 먹고 마심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셨다. 예수님은 이 식탁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친교를 나누셨다. 예수님의 식탁 친교(Table fellowship) 혹은 식탁 공동체(Tischgesellschaft)는 닫힌 공동체가 아니라 열린 공동체였다. 제자들뿐 아니라 당시 유다인들의 사회에서 변두리로 내몰렸던 사람들도 예수님의 이 식탁 공동체에 함께 초대되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식탁 공동체는 사람답게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을 사람답게 살게 한 자리, 곧 살림의 자리였다. 이 식탁 공동체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살리시고 또 살게 하셨다. 예수님은 마침내 당신 자신을 사람들이 먹고 마시게 내어 놓으심으로써 사람을 살리고 또 살게 하는 일을 계속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의 열린 식탁 공동체를 기억하고 거행하는 교회 공동체의 성찬례는 구원을 거행하고 구원을 이루는 살림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람을 살리는 길, 즉 살림의 길을 열어 보이셨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분이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신 사람의 본래 모습을 인간들에게 보여 주시기 위하여, 인간 세계 바깥에서 인간을 하느님 쪽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아드님을 사람이 되게 하셨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다른 사람들을 당신과 함께 하느님께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원하신 본래의 인간, 완전한 인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참 사람의 모습을 인간에게 보이시기 위해서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 덕분에 인간은 참 사람, 참 사람됨을 배운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심으로써 인간이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 열렸다. 사람다운 사람은 사람 노릇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 참 사람, 사람다운 사람은 사람의 본래 모습을 온전히 이룬 사람, 즉 가장 슬기로운 사람이다. 몸과 마음을 맑게 하고 갈고 닦아서 사람의 본래 모습을 깨닫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사람이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사람이 되는 것이고, 참된 인간화(人間化)의 길이다. 참 사람 예수님은 사람다움, 사람됨, 인간화의 모범이고 전거이다. 참 사람 예수님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일하셨다. 예수님이 벌이신 하느님 나라 운동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계, 곧 인간화가 실현된 세계이다. 예수님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가르쳤고, 실천하셨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사람다움이 실현되는 세계가 하느님의 나라이다. 전인적인 참된 인간화의 실현이 하느님의 나라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 사람이 되는 길, 참된 인간화의 길은 참 사람 예수님의 참 삶을 사는 것이다. 그분의 삶은 “비움”, “섬김”, “나눔”, “사귐”이었다. 첫째, 예수님의 삶은 비움이다. 그분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당신을 온전히 비우시어 여느 사람과 똑같이 되셨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 8,9) 둘째, 예수님의 삶은 섬김이다. 그분은 하느님과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사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지배와 섬김의 관습적인 질서를 바꾸셨다. 지배하고 지도하는 역할은 이제 다른 사람에 대한 섬김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이렇듯 예수님은 새로운 리더십(leadership)을 실천하셨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3) 셋째, 예수님의 삶은 나눔이다. 그분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가르치고 실천하시며 나누셨다. 마침내 그분은 당신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삶을 사셨다. 당신 목숨까지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하셨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9) 넷째, 예수님의 삶은 사귐이다. 참 사람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셨다. 그분의 사귐은 식탁 공동체에서 잘 드러난다. 예수님의 공동체는 그야말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실천이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이 사셨던 “비움”, “섬김”, “나눔”, “사귐”의 삶을 실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고, 사람이 되는 삶, 된 사람이 될 수 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 예수살이가 바로 사람됨의 길, 참된 인간화의 길이다. 예수님께서 살리신 우리, 그분이 먹여 살리시는 우리는 그분의 삶을 뒤따르도록 초대된 사람들이다.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은 우리도 사람을 살리는 살림을 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살림을 사는 것, 즉 살림살이이다. 이 살림살이가 우리 삶 안에서 예수님의 비전, 그분의 정신, 그분의 가치를 살아가는 예수살이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이고 우리 공동체를 꾸려가는 방식인 우리의 살림살이는 살림을 살아가고 실천하는 살림살이가 되어야 한다.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잘 하는 살림꾼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살림에 투신하는 살림꾼이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또 다시 예수님을 선택한다. 이제 우리는 또 다시 예수님의 살림을 선택한다. 우리는 죽임이 아닌 살림을, 폭력이 아니 평화를, 닫힌 공동체가 아니라 열린 공동체를 선택한다. 그래서 우리는 살림을 살아가고 실천하는 알뜰한 살림꾼, 성실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한다. “다시 새롭게”, “예수님과 다시 새롭게”, 그것은 새로운 살림살이에로의 초대이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 참된 인간화의 길이다. 사람을 살리신 예수님처럼 사는 삶, 즉 예수살이가 살림을 사는 삶, 즉 살림살이이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이 살림에 투신하는 살림꾼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살림살이에서 생명, 살림, 평화를 선택하고 실천하는 삶, 그것이 바로 새로운 복음화의 길이다. [월간빛, 2011년 12월호, 송창현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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