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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복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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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04 조회수5,339 추천수1
[요한 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친구 되기]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국민이며, 휴일에도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한국인은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처럼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일까?


하느님은 안식일에도 일하신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38년 된 환자에게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고 하면서 치유해 주었다고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에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5,17) 하고 말씀하신다. 유다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안식일만 어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라 부르며 하느님과 자신을 동등하게 말했다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 신성모독이라는 것이다.

왜 이런 갈등이 생긴 것일까? 랍비들은 안식일에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지만, 한편으로 하느님께서는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신다고 생각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주만물을 다스리고 계시고 생명과 죽음에 대한 특권을 행사하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안식일에도 사람은 태어나고 죽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주장은 하느님께서 안식일에도 이렇게 일하시니 아들인 당신도 일한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신적 특권을 주장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이 안식일에 휴식을 명하시면서도 계속 일을 하실 수 있다면, 그리고 예수님의 일들이 하느님의 일들이라면, 예수님도 안식일에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다

고대사회에서 자녀들은 아버지에게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거래하는 법이나 기술을 배웠다. 예수님도 요셉에게서 목수 기술을 모방하시고 순종하는 자세들을 배우셨을 것이다.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예수님은 언제나 아버지를 모방하시고 그 뜻에 순종하셨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희랍어 성경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유를 나타내는 부사 ‘가르’를 사용하여 예수님이 아버지를 모방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그대로 모방하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토대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주신다”(5,19-20).

5장 20절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요한 복음이 유일하게 ‘필레오’를 사용하는 경우이다. 필레오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더 강조하여 나타낸다.

또한 ‘사랑한다’는 현재시제를 사용함으로써 지속되는 사랑을 나타낸다. 이러한 지속적이고 친밀한 사랑 때문에 아버지는 자신의 깊은 신비를 아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다.


생명과 심판을 아들에게 넘기시다

예수님의 특권은 그 누구도 보거나 듣지 못한 일들을 아버지에게서 보고 들으셨다는 데 있다. “앞으로 그보다 더 큰일들을 아들에게 보여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5,20).

여기서 “더 큰 일들”이란 바로 생명과 심판을 가리키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에 원래 아버지에게만 속한 것들인 생명과 심판에 대한 지배권을 아들에게 위임하신다.

생명과 심판은 구약에서 하느님의 일들로 엄격히 확립된 것들이다.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며(창세 2,7; 시편 16,11) 심판은 하느님의 일이다(창세 18,25).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신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리신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5,21-23).

우리는 요한 복음에서 영원한 생명과 심판은 세상 끝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심판과 생명의 선물은 지금 이 세상에서 일어난다. 어둠을 사랑하는 자들은 이미 심판 아래 있다(3,19).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5,24). 이 얼마나 감사하고 복된 말씀인가! 우리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갔다. 이것은 미래 약속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사실이며, 이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에 대한 권한을 부여받아 세상에서 하느님의 최고 대리인이 되신다. 고대에 대리인이 되는 것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권위와 능력이 위임되는 것을 의미했다. 임금이 먼 곳에서 평화협정을 맺고 싶다거나 곡물가격을 흥정하고 싶다면, 직접 가지 않고 자기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대리인을 임명했다. 대리인이 한 말은 듣는 이들뿐만 아니라 자신을 보낸 임금에 대해서도 구속력을 지녔다. 그러므로 대리인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마음에 두셨던 이미지다. 아버지를 공경하기를 원하는 이는 누구든지 그를 대리하는 아들을 똑같이 공경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며, 하느님 말씀과 예수님 말씀은 하나이다. 따라서 아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바로 시작되며 단죄와 죽음이 사라진다. 이를 강조하려고 예수님은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5,25)로 부르신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부르시는 것은 여기와 10장 36절, 11장 4절 등 세 구절뿐이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

예수님이 이렇게 자신에 대한 권한을 말씀하시지만 유다인들은 그분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고 하지만 예수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더 큰 이유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신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믿지 않는다”(5,43).

이것은 바로 그들이 하느님 아버지를 믿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그들은 아버지 뜻을 그대로 따르는 아들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5,30).


일이 사람을 만든다

요한 복음 5장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에 대해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다. 예수님이 인간이 되시어 우리가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얼마나 애쓰시는지를 마음으로 알게 되었다.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들이 하나하나 다가오며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머리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셨는데 그것은 모든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15,15 참조).

이것도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배우신 것이구나!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시어 모든 것을 보여주시고 생명과 심판에 대한 지배권을 다 넘겨주신 것이구나! 우리 역시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영 CEO들은 하나같이 “일이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성공한 리더들은 “일이 열의로 바뀌고, 일에 대한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그렇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훌륭한 일을 통해 훌륭한 인격이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열성적으로 하다 보면 인생 마지막에 예수님은 우리보고 “날 닮았다.”라고 하실 것이다.


기도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하신 주님, 저희도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아버지 하느님을 그대로 모방하시고 순종하셨습니다. 저희도 당신을 따라 당신을 그대로 모방하고 순종하며 살고 싶습니다. 저희가 당신이 명하신 사랑의 계명을 지키며 당신의 말씀 안에 머무르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지금 당신께 달려가 사랑을 고백하며 간절히 생명을 구합니다. 저희도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겠습니다.

* 이혜자 인덕마리아 -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석사학위,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성서신학 박사학위(요한 복음 전공)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5월호, 글 이혜자 · 그림 조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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