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리] 성경 속의 인물: 마케도니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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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10-13 | 조회수3,262 | 추천수1 | |
[성경 속의 인물] 마케도니아 ‘거기에서 또 필리피로 갔는데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로 로마 식민시였다.’(사도 16,12)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바오로의 회고다. 그는 두 번째 선교 여행에서 ‘실라스’와 함께 마케도니아를 방문했던 것이다. 이렇듯 사도시대의 마케도니아는 로마의 속주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배출해 중동지역을 250년 이상 다스렸던 대제국이 몰락한 것이다.
마케도니아의 본거지는 그리스 북쪽의 내륙이었다. 그들의 신앙 역시 ‘제우스’를 섬기는 희랍신앙이었고 남쪽 도시들과 연계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기원전 4세기 ‘필립포스 2세’와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등장하면서 관계는 깨지고 만다. 마케도니아가 무력으로 아테네를 비롯한 도시국가들을 합병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알렉산드로스는 동방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뒤 페르시아 침공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페르시아와 이집트를 정복한 뒤 33세의 나이로 갑자기 죽었다. 기원전 323년의 일이다. 그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내분으로 이어졌고 결국 제국은 세 동강이로 갈라지고 만다.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그리고 마케도니아 왕국이었다. ‘헬레니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희랍과 오리엔트의 문화융합을 그렇게 불렀다. 유다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교대로 받았다. 두 왕조는 이스라엘 땅에 희랍문화를 심으려했다. 가장 혹독했던 인물이 ‘에피파네스’란 이름의 ‘안티오코스 4세’였다(1마카 1,10-61).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상’을 세우고 예배를 강요했으며 할례마저 금지시켰다. 안식일을 지키거나 율법을 낭독해도 공개적으로 처형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죽음으로 맞섰다. 저항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 훗날의 ‘마카베오 독립 운동’이다. 한편 이 무렵 로마는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와 전쟁 중이었다. ‘포에니 전쟁’이다. 그런데 마케도니아는 카르타고와 동맹을 맺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참전했다. 하지만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났고 마케도니아는 로마의 눈치를 봐야했다. 이런 와중에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를 거슬러 독립운동을 펼쳤다. 로마는 그리스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전쟁에 뛰어들었고 결국은 마케도니아를 굴복시켰다. 기원전 2세기의 일이다. 이후 마케도니아 왕국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로마의 다음 목표는 에피파네스의 셀레우코스 왕조였다. [2011년 3월 13일 사순 제1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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