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구약성경의 맥1: 신학과 성경의 관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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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5-02 | 조회수2,905 | 추천수2 | |
[신앙의 해 - 구약성경의 맥] 제1주제 : 신학과 성경의 관계 어디든지 낯선 곳에 가게 되면 저는 지도 보기를 즐겨합니다. 제가 가있는 곳에 대한 전체적인 전망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제가 있는 곳이 그 전체 전망 안에서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지도를 좋아하는 이 마음은 단지 낯선 곳에 갔을 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지식을 배우게 될 때마다, 저는 그 지식의 조감도와 같은 것을 머릿속에 그려보곤 합니다. 지금 접한 새로운 지식이 그 지식의 배경이 되는 전체적인 전망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것들과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아는 것이 저에게는 무척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극히 일부분의 지식을 알고 있으면서 마치 전체를 습득한 양 우겨댈 수 있는 위험에서 저를 건져주고, 제가 습득한 지식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그림을 형성함으로써 그 그림은 제 삶을 그것에 맞게 꼴 지우도록 저를 자극하고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일 년 동안 경향잡지 독자들을 위하여 구약성경과 관련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제 머릿속에 떠오른 ‘구약성경의 맥’이라는 주제 역시,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인 연관성을 알고 싶어 하는 저의 깊은 갈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 글을 앞으로 일 년 동안 읽게 될 독자들을 저는 이렇게 그려봅니다. 제가 만나게 될 독자들은 저보다 앞서 집필해 주신 훌륭한 저자들을 통하여, 그리고 다양한 기회들을 통하여 구약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연구해 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미 구약성경이라고 하는 보물단지에서 얻어낸 귀한 구슬들을 많이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고 상상합니다. 저는 이제 독자들에게 저와 함께 이미 가지고 계신 그 구슬들을 한데 꿰어 보물을 만들어보자고 초대하고 싶습니다. 구약성경을 좀 더 넓은 안목, 곧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비전 안에서 바라보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별 지식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구약성경의 맥이라는 큰 주제 아래 앞으로 저는 열두 가지의 소주제들을 다루겠습니다. 각 주제를 시작할 때마다 주제를 제시하는 질문을 드리고, 여러분과 함께 그 질문을 숙고하고 함께 답변을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소주제라고 말씀드리기는 하였지만 각각의 주제들은 책 한 권의 분량으로도 충분히 답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다달이 제가 여러분에게 제시하는 답변들은 결코 완전하거나 완벽한 것일 수 없다는 점을 미리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각각의 주제들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 없는 독자들의 현실을 감안할 때 구슬을 꿰어가는 데 꼭 필요한 만큼의 답변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 : 구약성경과 신학의 관계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첫 번째 질문은 구약성경과 신학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구약성경과 신학은 어떤 관계에 놓여있습니까? 이 질문에 답하고자 우선, 신학이 무엇인지를 간단히 설명드리고, 신학의 정의를 통하여 신학과 구약성경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신학이라고 부르는 학문은 다양한 과목으로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신학의 과목들 가운데 신학교에서 처음 배우게 되는 신학 과목은 기초신학입니다. 기초신학을 영어로 하면 Fundamental Theology이지만, 처음 ‘기초신학’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저는 이 과목을 신학의 기초, 곧 제일 쉬운 신학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초신학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결코 만만하지도 수월하지도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이 과목에서 다루게 되는 주제들은 신학을 하기 위한 철학적, 신학적인 기초를 쌓기 위한 것으로, 기초신학은 철학과 신학의 경계 속에 있는 과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기초신학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신앙, 계시, 성경, 영감과 무류성의 문제, 종교적 상징들, 교도권과 교리 등과 같은 것입니다.). 기초신학의 근본적 물음은 우선 신학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것이고, 신학이 신에 관한 인간의 말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하여 신에 관한 말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신학의 출발점은 하느님의 계시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열어 보여주셨기 때문에 하느님에 대한 학문, 곧 신학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신학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은 인간학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곧 인간이 어떻게 이런 계시를 수용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인간 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마음, 달리 말하면 인간이 본성적으로 타고난 초월성에로 정향된 마음이 신학을 가능하게 하는 인류학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이처럼 자신을 초월하는 계시를 수용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면, 하느님은 이런 인간에게 자신을 적극적으로 계시하시며, 이 계시로 인간은 하느님을 알아듣고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초신학이 제시하는 신학이 가능한 이유라 하겠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전해진 하느님의 계시 하느님의 계시는 인류 역사를 통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체험되어 왔고, 각 계시를 통하여 어떠한 하느님의 속성이 드러나고 체험되는지에 따라 계시의 내용 또한 다양한 양상을 취해왔습니다. 인간은 놀라운 자연현상 앞에서 그것에 감탄하며, 그러한 현상을 가능하게 한 초월적인 존재를 상상해 왔고, 인간 이성이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기적 체험을 통하여 인격적인 하느님의 존재와 맞닥뜨리기도 하였습니다. 또는 인간 이성의 연역 작업을 통하여 모든 존재의 근저에 있는 존재의 궁극적인 원천이 되는 존재를 만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대면하는 방법 또한 다양해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 체험들을 통해서 교회의 성인들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이 체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체험은 자연적 계시와 초자연적 계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자연적 계시는 창조된 자연세계에 대한 관찰과 우리 이성의 연역을 통하여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인식에 이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초자연적 계시란 성경(구약성경의 성조들과 예언자들, 신약성경의 예수님과 사도들)과 성전(聖傳)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시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전해진 하느님의 계시를 초자연적 계시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 안에 담겨있는 다양한 인간들의 하느님 체험이 단순한 인간 저자들의 이야기나 기록이 아니라 하느님의 성령께서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으시어 그 이야기들을 기록하도록 인도하심으로써, 성경 전체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는 계시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의 원저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저자들은 각각의 시대와 환경, 역사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한 하느님에 대한 계시를 그들이 지닌 언어와 지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기록하였으며, 다양한 문학양식을 통하여 그것을 표현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현존을 체험한 이들은 그들의 체험을 이야기와 법, 역사와 예언, 시문과 지혜 문학 등 당시에 통용되던 다양한 문학적인 틀 안에 담아놓았습니다. 그러므로 각각의 양식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계시를 제대로 해석하고 이해하려면 그 계시가 담겨있는 문화와 언어, 역사, 그리고 문학이라고 하는 틀들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 저자의 매개를 통하여 성경 속에 담긴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해석은 기초신학의 또 하나의 주제인 계시의 해석과 교도권의 관계라는 물음에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교도권의 인도 아래, 성경 본문에 적절한 해석 방법들을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는 그리스도교 신학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이며 신학의 근간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성경과 신학의 관계는 뚜렷하게 드러났다고 봅니다만, 이 글을 마치면서 신학과 성경의 관계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오늘 여러분의 성경 읽기와 구체적으로 무슨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읽는 성경 본문으로부터 하느님이 누구이신지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그 본문 안에서 살아 움직이시는 하느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본문 안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계시는 아직 읽힌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본문이 기록되도록 영감을 주셨던 하느님의 성령께서 같은 영감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시도록, 성경을 읽을 때마다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 김영선 루치아 - 마리아의전교자프란치스코회 수녀. 가톨릭대학교에서 석박사 통합과정 2년을 마치고 미국 보스톤대학(예수회)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강대학교에서 구약성서 입문을 강의하고,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구약성경과 피정 지도’라는 제목으로 구약성경 세미나를 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1월호, 김영선 루치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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