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경풀이: 카이사리아와 사도행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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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5-18 | 조회수4,041 | 추천수1 | |
[성경풀이 FREE] 카이사리아와 사도행전 (1) - 카이사리아 야외극장 이스라엘에 사는 동안, 필자는 바다를 좋아하여 지중해에 자주 나가곤 했다. 오염되지 않은 바다의 연한 소금내를 맡을 때, 비린내가 나지 않아 무척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너무 깨끗해서 물고기도 많이 살지 않는다는 지중해. 성경에서는 ‘서쪽 바다’(신명 11, 24)라 불렸고, 땅덩어리가 작은 이스라엘에 상대적으로 크다 하여 ‘큰 바다’(민수 34, 6-7)라고도 했다. 남쪽 연안에는 필리스티아인들이 살아서 ‘필리스티아 바다’라는 이름도 있었다(탈출 23, 31).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 거만한 로마 시대에는 지중해를 ‘우리 바다’라 불러 로마인들의 교만과 자존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늘보다 더 푸르른 쪽빛 지중해, 세월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파도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많은 인물들을 떠올려 본다. 야포 항구에서 배를 타고 도망가다가 물고기 밥이 됐다는 전설적인 요나. 2,000년 전 유다의 영주가 되어 지중해에 카이사리아 항구를 세웠던 헤로데. 그리고 카이사리아에 총독부를 세운 본시오 빌라도와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간수장에게 복음을 전파했던 바오로 사도. 지중해에 큰 항구 두 개를 두었던 고대 이스라엘은 구약 시대에 남쪽 야포 중심이었고, 신약 시대에는 헤로데가 개척한 카이사리아였다. 특히 카이사리아는 헤로데가 불가능한 자연조건을 극복하고 눈부신 항구 도시로 변모시킨 곳이다. 지금도 많은 유적이 남아 있지만, 특히 유명한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야외극장인데, 무대에서 노래나 연설을 하면 똑같은 음향으로 모든 좌석에 울려 퍼져 지금도 콘서트 장으로 사용한다. 3,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이 극장에 앉아 지중해를 바라보노라면, 사도행전 12장의 헤로데 아그리파스 연설이 떠오른다. 연단에 앉은 아그리파스가 동쪽 아침 햇살을 받으며 화려한 옷을 번쩍번쩍 빛낼 때, 그의 목소리가 바닷바람을 타고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그러자 그 연설에 압도된 사람들이 신의 목소리라 환호했고, 우쭐거리던 아그리파스가 급살병을 맞고 쓰러져 벌레에 먹혀 죽었다(“정해진 날에 헤로데는 화려한 임금 복장을 하고 연단에 앉아 그들에게 연설을 하였다. 그때에 군중이 “저것은 신의 목소리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다.” 하고 외쳤다. 그러자 즉시 주님의 천사가 헤로데를 내리쳤다. 그가 그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벌레들에게 먹혀 숨을 거두었다” 사도 12,21-23). 이제는 아그리파스도 호화롭던 도시도 폐허에 묻혀 유적이 되어 버렸지만, 지금도 카이사리아에 가면 짭조름한 바닷바람 속에서 먼 옛날의 이야기들을 듣는다. [2013년 5월 19일 성령 강림 대축일 인천주보 4면, 김명숙 소피아(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카이사리아와 사도행전 (2) - 카이사리아 유적지
카이사리아 지역은 원래 고대 페니키아 군주 스트라톤의 이름을 따서 ‘스트라톤 탑’이라 불렀지만,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 케이사르가 헤로데 영주에게 선물로 주었다. 타고난 정치꾼 헤로데는 로마 주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려고 그곳에 항구 도시를 개척하고 황제의 이름을 땄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케이사리아’(케아사르의 도시)가 되었고, 한글로 ‘카이사리아’, 영어로는 ‘Caesarea 시저리아’라 한다. 헤로데가 섬긴 아우구스토 케이사르 황제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의 주인공 율리어스 시저(케이사르 영어 발음)의 양자 옥타비아누스였다. 시저가 죽고 난 후 옥타비아누스가 왕위에 오르면서 이름을 아우구스토 케이사르로 바꾸었다. 사실 카이사리아는 역사적으로 예수님의 행적과 그다지 관련은 없지만, 사도행전의 주요 배경이 되었고, 특히 10장에는 카이사리아 백인 대장 코르넬리오와 베드로 사도에 얽힌 이야기가 나온다. 백인 대장이란 백 명을 관리하는 소대장 정도로 이해하면 쉬운데, 당시에는 여든 명 정도를 통솔했다고 한다. 코르넬리오는 이방인이었지만 하느님에 대한 신심이 깊었고, 어느 날 그에게 하느님의 전갈이 내려 야포에 있는 베드로를 데리고 오라는 계시를 받았다. 야포는 카이사리아 남쪽으로 버스 거리 한 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항구 도시로서, 구약 시대에는 솔로몬이 하느님의 성전을 지을 때 야포를 통해 레바논의 향백나무를 수입했었다(2 역대 2,15). - 아래 쪽으로 보이는 대문이 무두장이 시몬의 집으로 전해진다. 베드로는 야포에서 무두장이(피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정오쯤 되어 지붕에 앉아 있던 베드로가 허기를 느끼자, 갑자기 하늘에서 바구니가 내려왔다. 그 안에는 온갖 길짐승 들짐승들이 들어 있었다. 하늘에서 그 짐승들을 잡아먹으라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 베드로는 자신이 정결한 유다인이기 때문에 부정한 음식은 먹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주님께서 정결하게 하신 것을 부정하다 말하지 말라는 말씀을 남기고 바구니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이 바구니의 환상이 무슨 뜻일까 생각하던 와중에 코르넬리오의 사자가 베드로를 찾아오게 되었고, 카이사리아로 함께 올라가면서 베드로는 그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던 선민과 이방인 사이의 경계를 하느님께서 모두 없애셨다는 것, 그래서 이방인이 더는 부정하지 않음을 깨달은 베드로는 카이사리아에서 코르넬리오의 가족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야포와 함께 카이사리아는 이방 선교의 요람이 되었다. [2013년 5월 26일 삼위일체 대축일 인천주보 4면, 김명숙 소피아(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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