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역사서 해설과 묵상: 판관기 11장(입타의 딸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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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6-03 | 조회수3,540 | 추천수2 | |
역사서 해설과 묵상 (48) “내가 주님께 내 입으로 약속했는데, 그것을 돌이킬 수는 없단다.”(판관 11,35) 판관기 안에서 우리는 역사적인 사실의 단편밖에 기대할 것이 없다. 기원전 1030년경 왕정이 출현하기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잘 조직된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다. 각 지파와 가문은 나름대로 역사가 있었고 이 시기에 벌어진 사건과 기억들이 모든 지파와 가문에 동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들이 그런 자료들을 모을 때 역사적인 종합보다는 ‘종교적인 종합’을 원했다. 사실 우리는 신학적인 가르침을 위해 형성된 아주 단편적인 사건들의 시리즈만 갖고 있을 뿐이다.
한편 이런 사건과 기억들은 다양한 유형의 이야기들에 의해 전달되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통속적인 문학유형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래서 기이한 것, 희극적 또는 비극적인 것(에훗이 모압 왕을 살해하는 이야기), 예외적인 것이고 우스꽝스러운 것(삼손의 모험담)이 많다. 역사적인 관심을 보이는 이야기들에 또 다른 관심거리가 섞어들기도 한다. 특정 여인을 추켜세우는 것(판관기 4장 드보라), 특정 의식의 기원 설명(판관기 11장 입타의 딸 이야기), 제단을 세우는 것(판관기 6장 기드온의 소명설화, 13장 삼손의 탄생설화) 등. 판관 ‘입타’는 길앗 출신으로서 암몬족의 침략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한 판관이다. 암몬족과 전투를 벌이기에 앞서, 입타는 주님께서 도와주셔서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자신의 집 문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맞으러 나오는 사람을 주님께 번제로 바치겠다고 서원했다. 그러나 사람의 앞일은 모르는 법. 그가 승전하고 돌아왔을 때, 대문에서 손북을 치며 그를 처음으로 맞은 사람은 그의 외동딸이었다. 입타는 하느님께 서원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외동딸을 하느님께 바쳤다. 사람을 죽여 희생제물로 바치는 관습은 고대근동에서 흔한 일이었다. 열왕기 하권 3장 27절에 따르면, 모압왕 메사는 이스라엘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맏아들을 죽여 번제로 드렸다. 모세오경은 이런 인신제사를 강력히 규제했지만(신명 12,29-31 참조), 이스라엘 안에서도 이런 관습이 있었음을 입타의 딸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판관기 저자는 입타가 딸을 번제로 바쳤다는 사실만 기록할 뿐, 그의 행위 자체에 윤리적 판단은 내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관기 저자가 입타의 인신제사를 옹호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입타의 인신제사는 물론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입타가 하느님께 서원한 바를 끝까지 지키는 정신만큼은 본받아야 한다. “아, 내 딸아! 네가 나를 짓눌러버리는구나. 바로 네가 나를 비탄에 빠트리다니! 내가 주님께 내 입으로 약속했는데, 그것을 돌이킬 수는 없단다”(판관 11,35) 하면서도 입타는 하느님께 드린 약속을 지켰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린 약속은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 약속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일만 잘 해결해주신다면 앞으로 무엇 무엇을 하겠다.’며 약속하고 열심히 기도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일이 잘 해결되면 잊어버리기 일쑤다. 어떤 때는 내가 잘 나서, 내 힘으로 그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면 하느님께 드린 약속은 결국 부도수표가 된다. 신부님이나 수녀님의 축일에 영적 예물을 드리거나 교우들을 위해 기도하기로 약속한 것이 있다면 잘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영적 예물을 부도수표로 만들지 않으려면 앞으로 기도할 것을 적어낼 것이 아니라 이미 기도한 것을 적어내는 것이 현명한 태도다. 묵상주제 “성급하게 말하는 사람을 보았느냐? 그보다는 우둔한 자가 더 희망이 있다.”(잠언 29,20) [2013년 6월 2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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