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사도들의 서간: 야고보서 - 우리는 실천으로 의롭게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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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8-16 | 조회수3,002 | 추천수1 | |
[사도들의 서간] 우리는 실천으로 의롭게 됩니다 - 야고보서 두 달간 로마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편지에서 바오로는 율법과 할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죄를 용서받고 의로워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바오로의 생각과 달리, 믿음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된다고 외치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야고보서의 저자입니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누구인가? 신약성경에 보면 “작은 야고보”(마르 15,40)를 제외하고도 세 명의 야고보가 더 언급됩니다. 먼저, 예수님의 제자로서 요한과 형제간인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가 있습니다. 그는 기원후 44년경 헤로데 아그리파의 명령으로 처형됩니다(사도 12,2). 그런데 야고보서가 50-60년대에 활동하던 바오로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해 그와 반대되는 자신의 가르침을 피력하고 있는 것을 볼 때(야고 2,14-26), 제베대오의 아들이 야고보서를 적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두 번째로, 또 다른 예수님의 제자였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야고보 역시 야고보서의 저자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저자가 자신을 사도라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형제 야고보가 있습니다(마르 6,3; 갈라 1,19). 여기서 형제란 친형제(개신교), 이복형제(동방정교), 사촌과 같은 친족 (가톨릭)을 통칭하는 표현입니다. 전승은 주님의 형제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동일한 인물이라고 전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가족과 친척들이 공생활 당시 그분을 믿지 않았다는 복음서의 증언을 살펴볼 때(마르 3,21.31; 요한 7,5), 두 인물을 동일한 인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학자들은 대개 주님의 형제 야고보가 예수님 부활, 승천 이후 제자들과 더불어 주님을 믿게 되었는데(사도 1,12), 이 야고보는 주님의 형제였기 때문에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특별한 위상을 누렸던 것으로 봅니다. 실제로 갈라 1,19에서 바오로는 예루살렘에 올라왔을 때 주님의 형제 야고보만 만났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갈라 2,9에서 바오로는 “야고보와 케파와 요한”을 교회의 기둥이라고 언급하는데, 그 순서를 보면 야고보가 가장 첫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천으로 의롭게 됨 야고보서의 저자는 말씀을 실천하라고 가르칩니다(1,19-27; 2,8-13.14-26 등). 이 주제는 야고보서 전체의 핵심 주제입니다. 야고보는 바오로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데,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바오로(로마 4,1-12)와는 달리 아브라함이 실천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설파합니다(2,18-26). 곧, 아브라함이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벗으로 불리게 되었지만, 그것만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쳤기 때문에, 다시 말해 하느님의 뜻을 실천했기 때문에 의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주겠습니다”(2,18). 이런 야고보의 견해는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산상 설교(5―7장)의 내용과 일치하지만, 바오로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흥미롭게도 갈라 2,11-13을 보면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 문제에서 바오로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야고보가 바로 주님의 형제 야고보로 야고보 서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인물인 듯합니다. 어쨌든 주님의 형제 야고보와 야고보 서간의 존재는 초대교회에 바오로와 다른 생각을 가지던 이들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훌륭한 자료입니다. 자비의 실천 야고보 서간을 읽다 보면 야고보가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옹호하고 부자들을 공박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1,9-11; 2,1-13; 5,1-6). 야고보는 부자들에게 자기 일에만 골몰하다가는 결국 시들어버릴 것이라고 경고합니다(1,11). 그리고 가난한 이를 업신여기며 차별대우하는 이들은 결국 율법에 따라 범법자로 선고받을 것이라고 외칩니다(1,10). 이런 부자들에게 야고보는 닥쳐오는 재난을 생각하며 소리 높여 울라고 말합니다(5,1). 그리고 마지막 때까지 재물을 쌓기만 하는 부자들을 향해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가진 것을 나눌 것을 권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곧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자비를 실천하지 않으면, 그의 믿음은 죽은 믿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2,14-17). 혀를 조심하여라 야고보는 또 혀를 조심하라고 가르칩니다(3,1-12). 많은 이들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 악의 유혹에 넘어가 다른 이들을 가르치려 듭니다. 혀를 가지고 이웃을 비난하고 심판하며, 자만에 섞인 말까지 합니다. 분쟁을 일으키고 다투며 싸웁니다. 야고보는 이런 이들을 두고 하느님의 적이라고 외칩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을 떨며 자신을 남보다 낫다고 여기는 이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 은총을 베푸실 것입니다(4,1-10). 사실 우리의 혀는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미하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혀는 쉴 새 없이 악한 짓을 행합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하느님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시련과 유혹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려 하면 반드시 많은 유혹과 시련을 겪기 마련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좋아 보이는 것들이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야고보는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유혹과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입니다(1,12).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실천은 종이의 양면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신념을 가졌던 루터는 종교개혁 당시 믿음이 아닌 실천을 강조하는 야고보 서간을 두고 ‘쓰레기 서간’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루터의 평가와는 달리 야고보 서간은 믿음만을 외치며 실천을 외면하는 이들에게 던져진 하느님 말씀입니다. 마태오 복음도 야고보서와 같은 생각과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믿음과 실천이라는 주제는 종이의 양면과 같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진실한 믿음이 없는 이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을 것이고, 또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이들에게서는 진정한 믿음의 향기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실천 가운데 무엇이 우선인지를 따지기보다, 참된 믿음을 가지고 날마다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는 것. 그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 염철호 사도 요한 - 부산교구 신부.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으며, 역서로 「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바오로딸, 2012년)이 있다. [경향잡지, 2013년 8월호, 염철호 사도 요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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