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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이스라엘 이야기: 성문(城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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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20 조회수7,079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성문(城門)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생활 고민 상담소



이스라엘 텔 단의 성문. 오른편 아래쪽에 구약시대 제1성전기 때의 왕좌가 보인다. 임금이나 원로들이 성문에서 백성들의 정치적 법적 고민을 해결했던 흔적이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최북지역 ‘텔 단’에 가면, 제1성전기 때 성문이 남아 있다.

‘텔 단’은 고대 단 지파가 살았던 정착촌으로서, ‘텔’은 인적이 끊겨 폐허가 된 언덕을 뜻한다. 제1성전기는,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봉헌한 후부터(기원전 10세기) 그 성전이 무너진 바빌론 유배까지의(기원전 6세기) 기간을 가리킨다. 구약 성경의 배경이 되는 텔 단은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 고대 정착촌을 빠져 나오는 출구에 바로 성문 유적이 있는데, 그 앞에는 성읍 수장이나 판관이 앉았을 왕좌가 보인다.

일견, 성문 앞에 놓인 왕좌는 의아함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구약 시대에는 중요한 사람들이 성문 앞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이 실패한 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기 전에 마하나임 성문 앞에 좌정했다(2사무 19,9). 압살롬은 아버지를 반역하기 전에 예루살렘 성문 앞을 어슬렁거리며, 재판하려고 임금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자신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며 마음을 사려 했다(2사무 15,2-4). 북왕국 임금 아합은 남왕국 임금 여호사팟과 함께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마련된 왕좌에 앉아 있었다(1열왕 22,10). 보아즈는 베들레헴 성문으로 올라가 원로들을 앉게 한 후(룻 4,1-2), 룻과 혼인하는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했다. 아모 5,10에도 성문의 역할을 암시해 주는 구절이 나온다(“성문에서 올바로 시비를 가리는 이를 미워하고 바른 말하는 이를 역겨워한다”).

곧, 위 구절들을 통해,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성문에서 정치적인 또는 법적인 일들을 많이 처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임금이나 원로들이 앉아 공적인 사안을 의논하거나 백성들에게 알리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에 시비를 가려 주는 재판도 했던 것 같다. 백성들은 또 성문 앞에 있는 원로들에게 가서, 법적인 문제를 문의할 수도 있었다. 원로들은 경험이 많고 연륜이 깊어, 현인으로 존경 받았던 이들이다. 그래서 주로 조언자 역할을 맡았으며(1열왕 12,6 참조), 임금 대신 재판 소임도 담당했다(곤란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성읍 원로들에게 재판을 청하도록 규정한 신명 22,13-19을 참조).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도피 성읍으로 피신하려 할 때도, 그 성읍의 성문 어귀에서 원로들에게 자기 사정을 먼저 설명해야 했다(여호 20,3-4). 게다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이들은 성문 앞에 앉는 것을 선호했다.

예루살렘 구 도시로 들어가는 다마스쿠스 성문. 높은벽으로 둘러 쌓인 예루살렘 성에는 시대별로 다양한 성벽 유적이 남아 있다.

 

 

성 내외 사람들로 붐비는 성문에 앉아 있으면, 바깥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확보한 정보는 민생이나 법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다른 장소가 아니라 굳이 성문인 까닭은, 많은 수의 군중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성문 앞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대 이스라엘은 유사시에 대비하여 성읍을 요새처럼 만들고 그 안에 거주했다. 불가피하게 성 밖에 사는 사람들은, 전쟁이 터질 때마다 성읍 안으로 도피해야 했다(예레 4,5-6 참조). 사정이 이러하니, 성 안은 주민들의 거주지로 너무 조밀하여, 사람들이 모일 만한 곳은 성문 앞 밖에 없었다.

성문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이기에, 그곳에서 공적으로 인증 받는 일도 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성문 앞에서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으로부터 막펠라 동굴을 구입했으며, 그곳에 모인 히타이트 사람들이 그 매매를 인증해 주었다(창세 23,10.18). 신랑이 자기 아내가 처녀가 아니었다고 거짓 주장을 할 때도, 처녀의 가족들은 성문 앞으로 원로들에게 증거물을 가지고 가서 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신명 23,13-15). 보아즈가 룻을 아내로 확정 받을 때는, “성문에 있던 온 백성과 원로들이” 증인이 되어 주었다(룻 4,11).

이처럼, 성문 앞에서 임금이나 원로들이 재판을 하거나 정치적 · 법적 문제들을 논하고 처리했기에, 텔 단에서 발견된 왕좌의 의미도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텔 단 성문이 유적으로 남았지만, 당시에는 그 성읍에서 가장 번화한 장소였을 것이다. 이런 성문의 역할은 잠언에도 반영되어, 하느님의 ‘지혜’가 번화가인 ‘성문 어귀’에서 훈계하고 가르친다(잠언 1,20-23 8,2-4). 곧, 잠언은, 하느님의 지혜를 슬기로운 여인으로 의인화하고, 성문에서 백성들을 지도하고 이끄는 원로, 곧 현인의 모습으로 묘사했던 것이다.

 

* 김명숙씨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4월 19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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