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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이스라엘 이야기: 에스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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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13 조회수5,077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에스테르


민족 몰살 위기로부터 유다 백성 구해낸 여걸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의 작품 ‘에스테르 여왕’, 1450년경.


이스라엘에 살면 유다인뿐 아니라 아랍 모슬렘을 만날 기회가 많다. 두 민족이 공존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모슬렘 여인들은 히잡을 쓰거나 매우 보수적인 경우에는 부르카를 입는다. 히잡은 얼굴을 제외한 머리 부분을 감싼 보자기고, 부르카는 눈만 내놓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검은 코트다. 둘째, 셋째 부인으로 들어가는 처녀들이나(모슬렘 남성은 율법적으로 처를 넷까지 거느릴 수 있다) 부르카로 외부와 차단된 여인들을 볼 때면, 페르시아 시대에 하렘으로 들어간 에스테르가 생각나곤 했다. 페르시아 시대는 기원전 6세기 후반부터고 이슬람은 서기 7세기경 태동했으니 연대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둘에게는 하렘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하렘은 아랍어로 ‘금지된 장소’를 뜻하며, 한 가정에 속한 여인들이 사는 곳을 가리킨다. 외부인들, 특히 외간 남자들은 들어갈 수 없다. 페르시아어로 하렘을 가리키는 말이 따로 있었을 것이나, 본 글에서는 편의상 하렘으로 칭한다.

에스테르가 왕실 하렘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크세르크세스 임금의 비 와스티가 폐위된 사건이었다(에스 1장). 연회 동안 술에 취한 임금이 손님들(모두 남자들이었다) 앞에서 왕후의 미모를 자랑하려고 호출했는데, 와스티가 굴욕을 견디지 못하고 그 요구를 거절한다. 한 나라 국모인 왕후를, 더욱이 하렘에 사는 아내를 기생처럼 다른 남자들 앞에서 과시하려 했던 욕구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임금이 어지간히 취했었던 듯. 결국 와스티는 불복 죄로 폐위 당한다. 그 뒤 왕실은 새 왕비 간택을 위해 전국에서 처녀들을 소집했고, 유다 유배자였던 모르도카이도 사촌 누이 에스테르를 하렘으로 들여보냈다(2,6-8).

에스테르의 본래 이름은 ‘하다싸’다(2,7). 도금양나무를 뜻하는 ‘하다쓰’가 어원이다(도금양나무는 이사 55,13 즈카 1,8 등에 언급된다). 도금양나무는 늘푸른 관목으로서, 평화와 축복의 상징이었다. 이름에 걸맞게 하다싸는 수많은 처녀들을 제치고 왕후가 된다. 에스테르는 이방 양식에 맞추어 개명한 것인데, 바빌론 여신인 ‘이쉬타르’가 어원으로 보인다. ‘별’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스타라’에서 파생되었다고도 본다. 탈무드는 에스테르 이름 안에 포함된 ‘사타르’(감추다)라는 히브리 어근과 연결하기도 했다. 에스테르가 마지막까지 자신의 유다인 정체성을 감추었기 때문이다.

도금양나무(하다쓰).

 

 

한편, 에스테르의 즉위와 동시에 하만이라는 사람이 궁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공교롭게도 하만은 ‘아각 사람’이었는데(3,1), 아각은 사울을 몰락으로 이끈 아말렉 임금의 이름이다(1사무 15,19-22 참조). 곧, 아말렉의 후손으로 암시된 하만에게 모두 무릎을 꿇고 절해야 했으나, 유다인인 모르도카이만 거부한다(3,2). 이것이 하만의 분노를 사, 유다 민족을 전멸하려는 계획을 세운다(3,6). 하지만 하만은 왕후가 유다인인 것은 알지 못했다. 에스테르기에서는 내시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하렘 여인들은 마음대로 바깥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스테르가 왕비로 뽑히기 전에는 하렘 총 관리인인 내시 헤게가 그녀를 총애했고(2,8), 왕비가 된 뒤에는 내시 하탁이 에스테르가 모르도카이와 소통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었다(4,5). 에스테르는 하만이 민족 말살을 꾀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고민하다가, 임금과 하만을 특별 연회에 초대하는 방법으로 하만의 허영심을 부풀린다. 그러다가 세 번째 연회 날 돌연히 자신이 유다인임을 밝히고, 하만이 자기와 자기 민족을 죽이려 한다며 임금에게 호소해 몰락시킨다(7장). 이 극적인 승리로 이스라엘에는 ‘푸림’이라는 절기가 새로 생겨나게 되었고(9,32), 지금도 유다인들은 푸림 때마다 가장 무도회 같은 파티를 연다. 에스테르가 끝까지 정체를 감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푸림’이라는 말은 하만이 유다인들을 학살할 날짜를 정하려고 던진 ‘제비’를 가리킨다(3,7).

사실 에스테르가 왕후로 간택되었기에, 유다 민족도 구하고 이야기는 희극이 되었다. 하지만 만약 다른 여인이 뽑혔더라면, 에스테르는 하렘에 갇혀 평생 불행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모르도카이는 사촌 누이를 걸고 정말 위험한 도박을 한 셈이다. 그러나 에스테르는 평화와 축복을 상징하는 도금양나무다. 처음에는 소심하고 여렸던 그녀가(4,11-14 참조) 목숨을 걸고 민족을 구하려 할 만큼 능동적으로 변모해(4,16) 이름값을 한다. 그래서 에스테르는 마침내 성모님의 예표가 되는 구약의 여인들 중 하나로 꼽히는 영광을 안게 되었던 것이다.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10월 11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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