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공동체와 함께 읽는 성경: 평화의 성경 읽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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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5-11-08 | 조회수4,203 | 추천수1 | |
[공동체와 함께 읽는 성경] 평화의 성경 읽기
성경에서 평화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샬롬(shalom)은 완전, 완성, 번영, 안녕을 가리킨다. 곧 평화는 한 개인이나 사회의 물질적이고 영적인 번영과 풍요로움을 가리킨다. 따라서 성경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마음의 평화나 가까운 다른 사람들, 곧 가족, 이웃, 동료들과의 관계에서의 평화뿐 아니라 폭력의 끝, 전쟁의 종식의 의미를 포함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평화는 창조의 목적이고 재-창조로서의 구원은 평화의 회복이다.
성경의 정의와 평화
성경의 평화는 정의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 곧 성경은 정의를 통한 평화를 제시한다. “정의의 결과는 평화가 되고 정의의 성과는 영원히 평온과 신뢰가 되리라”(이사 32,17).
하느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기에 그분의 정의에는 사회적인 것과 생태적인 것의 분리가 있을 수 없다. 곧 성경이 말하는 정의는 우리 삶의 모든 측면들, 즉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것, 공적이고 사적인 것,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것, 인간뿐 아니라 그 밖의 모든 피조물과도 관련이 있다. 따라서 구원으로서의 재-창조(re-creation)는 사회 정의와 생태 정의를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그 정의의 결과가 평화이다.
사회-경제적 평화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한 사회-경제적 비전은 율법에 토대를 두며 예언자들의 메시지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이룬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실천은 사회-경제적 평화를 실행하기 위한 율법과 예언자들의 초대를 계속하며, 경제적이며 정치-사회적인 구조의 변혁에로 초대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사회-경제적 평화의 비전(vision)에 따르면, 토지나 다른 자본과 같은 생존을 위한 자원은 하느님의 것이다. 인간은 단지 청지기로서 그것들을 사용할 뿐이다. 따라서 이 자원들은 공동체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자원들에 대한 접근은 개방적이어야 한다. 자원들을 현재 사용하는 이는 청지기이기 때문에 그 자원들은 공동체 안에서 다른 이들에 의해 사용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곧 자원들은 사용자의 배타적인 사용을 위한 것이 아니고, 자원의 생산물은 소유자 자신의 소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소비와 분배의 구조는 필요에 바탕을 둔다. 이와 같이 성경이 제시하는 평화의 사회-경제적 전망은 필요한 이가 충분함(enough)을 가지는 모든 이의 자급자족이며, 억압받는 이나 궁핍한 이가 없는 평등과 정의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은 사회-경제적 대안을 제시하신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에서는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되고, 지배와 착취에 반대하는 나눔과 섬김, 형제-자매됨, 상호성과 연대성, 그리고 친교가 실현된다. 따라서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돈, 토지, 노동, 권력의 영역에 있어 대안적 방안들, 즉 경제적이고 사회-정치적인 구조의 변혁을 위한 초대이다.
생태적 평화
성경의 생태적 평화는 하느님, 백성, 땅 사이에서의 조화와 화해의 상호 관계이다. 하느님은 당신 백성에게 땅을 주시고, 땅은 백성에게 양식을 제공하여 먹여 기른다. 그리고 백성은 이에 대한 응답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섬긴다. 이 상호 관련성 안에서 평화의 생태학이 제시된다. 그런데 이 평화와 조화의 관계는 죄로 말미암아 단절되었다. 구약 성경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창조 세계를 회복할 계획을 시작하셨음을 증언한다. 하느님의 관심은 단순히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땅의 모든 민족들을 위한 것이다. 하느님의 계획에는 이스라엘의 땅만이 아니라 온 땅을 포함한다. 곧 하느님은 온 창조 세계에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 그런데 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아직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하느님이 당신의 메시아를 보내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메시아를 통하여 하느님은 완전한 평화를 이루실 것이다.
신약 성경에서 그려지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구약 성경의 계시와 연속선상에 있다. 복음의 메시지는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이스라엘과 그 땅이 어떻게 온 인류와 온 땅을 포함하도록 확대되는가를 보여준다. 이스라엘 안에서 그들을 위하여 하느님이 행하신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류의 모든 민족에 대한 축복과 온 창조 세계의 최종적 구원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전체 창조 세계에 대하여 계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평화는 피조물이 서로 올바른 관계를 가질 때 드러나는 전체 창조 세계의 온전함, 조화, 안녕이다.
구원은 인간이 가지는 하느님과의 내적 평화 이상이다. 구원은 인간의 모든 관계들과 관련 있다. 예수님의 일은 단절과 소외를 치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
평화를 이루는 사람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로마 제국의 평화(Pax Romana)가 거짓 평화(pseudo-peace)임을 폭로하였다. 예수님은 로마 제국 질서의 기초인 억압과 불의에 도전하셨고, 현존하는 거짓 평화의 질서를 동요시키는 것을 당신의 사명으로 삼으셨다. 그분은 비폭력적이고 희생적이며 평화를 이루는(peacemaking) 사랑의 길을 선택하셨고, 당신 제자들을 그 길로 초대하신다. 폭력과 보복의 포기를 통한 “평화를 이루기”는 정의의 추구에 있어 예수님의 독창성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리고 그분의 선택은 원수 사랑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평화를 이루는 사람”(peacemaker)으로 산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를 이루기”는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서, 가난하고 변두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돌보고 모든 피조물의 고통스런 외침에 주목하는 것이다.
* 송창현(미카엘) 신부는 1991년에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S.S.D.)를 취득하였고, 현재 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외침, 2015년 10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글 송창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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