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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51: 하느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는 한(유딧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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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25 조회수4,387 추천수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51) “하느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는 한”(유딧 5,17)


이스라엘의 ‘논개’ 유딧



- 믿음이 강한 유딧은 적장 홀로페르네스가 잠든 틈을 타 목을 베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림은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작,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딧’.


토빗기와 마찬가지로 유딧기도 교훈적인 이야기입니다.

“대성읍 니네베에서 아시리아인들을 다스리던 네부카드네자르 임금 제십이년의 일이다”(유딧 1,1). 아주 정확한 연대 표시인 것처럼 보이지만, 네부카드네자르는 아시리아의 임금이 아니라 바빌론의 임금입니다. 그것도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다윗 왕조를 무너뜨린 임금이니, 저자가 잠시 혼동한 것일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비슷한 전승들이 여럿 있는 것을 보면 실제로 어떤 인물 또는 사건이 이 이야기의 기원이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유딧기는 전쟁 이야기입니다. 줄거리가 익숙하지 않은 책이지요. 한마디로 말하면 논개입니다. 아름다운 과부가 홀로 적진에 들어가 적장의 머리를 베어 오는 이야기입니다.

책의 전반부에서는(1-7장) 아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배툴리아가 위기를 맞게 되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아시리아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메디아 임금 아르팍삿과 전쟁을 할 때 페르시아와 이스라엘 주민들은 아시리아의 편을 들지 않았고, 이에 네부카드네자르는 아르팍삿을 무찌르고 대장군 홀로페르네스에게 다른 지방들을 정복하라고 명했습니다. 해안 지방의 여러 민족은 그를 두려워하여 홀로페르네스에게 화친을 청했으나, 유다인들은 예루살렘과 성전을 걱정하면서 맞서 싸울 준비를 하는 한편 단식하며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전쟁을 앞둔 홀로페르네스가 유다인들에 대해 묻자 암몬인 아키오르가 대답하는데, 그는 유다인들이 하느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았다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기 때문에 그들을 정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홀로페르네스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배툴리아를 포위하였는데, 아시리아 군대가 샘을 장악하였으므로 배툴리아의 주민들은 물이 떨어져 위기를 맞게 되었고, 닷새를 더 기다려도 주님의 도우심이 오지 않는다면 아시리아에게 항복하기로 합니다.

8장부터 하느님을 경외하는 과부였던 유딧이 등장하는데, 유딧은 날짜를 정하여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하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동포들에게 모범을 보이자고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은 그들을 깨우쳐 주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딧은 머리에 재를 뿌리고 자루옷을 입고 하느님께 이스라엘을 지켜 주시기를 간청하고, 화려하게 꾸미고는 시녀를 데리고 적진으로 가서 홀로페르네스를 만나고 그곳에서 지냅니다. 어느 날 홀로페르네스가 유딧을 연회에 불러 술을 마시다가 취해서 잠이 들었을 때, 유딧은 그의 목을 베어 시녀에게 들게 하고 배툴리아로 돌아갑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15-16장) 아시리아 군대는 홀로페르네스가 죽은 것을 보고 달아나고, 유딧은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유딧은 배툴리아로 돌아가 존경을 받으며 살았고, 유딧이 죽은 다음까지도 오랫동안 아무도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못했습니다.

유딧기에서는 배툴리아의 해방을 위하여, 외세의 공격을 받던 유다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유딧이 무엇을 했는가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유딧이 한 구체적인 행동보다 더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유딧기가 보여주는 역사 이해입니다. 유딧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다른 말로 하면, 유다 민족이 살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의 도움은 어디에서 옵니까?

그 대답은 여러 본문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첫 번째가 유딧 5장입니다. 유딧기 5장 3-4절에 나온 홀로페르네스의 질문과, 5장 5-21절에 나온 아키오르의 대답을 대조해 보십시오. 홀로페르네스는 공격을 하기 전에 먼저 그가 공격할 성읍과 군대가 어떠하며, 그 임금이 누구인지를 알려고 합니다. 그는 전쟁의 승리가 군사력에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아키오르의 대답은 (아키오르는 유다인도 아닌 암몬인입니다!), 이 백성이 “하느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는 한”(5,17) 그들은 번영하였고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길에서 벗어나자, 그들은 많은 전투에서 무참히 패배하고 이국땅으로 끌려갔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5,18). 곧, 문제는 군사력이 아니라 백성이 하느님께 충실하게 살았는지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하느님께 죄를 지었다면 홀로페르네스가 승리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홀로페르네스의 공격은 성공할 수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유딧 역시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딧은 “당신의 능력은 수에 달려 있지 않고 당신의 위력은 힘센 자들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9,11). “당신은 오히려 미천한 이들의 하느님, 비천한 이들의 구조자, 약한 이들의 보호자, 버림받은 이들의 옹호자, 희망 없는 이들의 구원자이십니다”(9,11). 외적으로 약한 여인인 유딧은 바로 그렇게 힘없고 약한, 군사적으로는 홀로페르네스에게 맞설 수 없는 이스라엘을 대변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저희 겨레는 하느님께 죄를 짓지 않는 한, 징벌을 당하지도 않고 칼에 압도되지도 않습니다”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11,10). 그런 믿음 때문에 유딧은 용감하게 적진으로 갈 수 있었고,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그들을 여자의 손으로 물리치셨다”(16,5). 이로써 하느님은 “당신께서 모든 권세와 능력을 지니신 하느님으로서, 당신 말고는 이스라엘 겨레를 보호하실 분이 없음을, 당신의 온 백성과 모든 지파가 깨달아 알게” 하십니다(9,14).

“이들은 병거를, 저들은 기마를 믿지만
우리는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네.
그들은 넘어지고 쓰러지지만
우리는 일어나 굳건히 서 있으리라”(시편 20,8-9).

[평화신문, 2015년 12월 25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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