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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이스라엘 이야기: 야훼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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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09 조회수5,249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야훼 이레


‘죽은 아들마저 일으켜 주신다’는 믿음 증명



-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의 작품 ‘이사악의 희생’.


이스라엘은 새해가 시작할 때마다 뿔 나팔을 분다(레위 23,24 민수 29,1). 뿔 나팔은 히브리어로 ‘쇼파르’라 하는데, 대개 숫양 뿔로 만든다. 모양에 구부러짐이 있어, 나팔로 다듬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숫양 뿔의 곡선은 회심을 상징한다. 죄를 짓더라도 곡선을 그리며 하느님께 돌아올 것을 믿고, 또 그렇게 기원하는 의미다. 그리고 뿔 나팔은 아브라함에게 관련된 상징이기도 하다. 그가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려 할 때, 주께서 숫양을 대신 주시어 이사악을 구하신 야훼 이레를 떠올리기 때문이다(뿔 나팔이 숫양 뿔로 만들어졌음을 기억하시라). 지금도 유다인들은 새해 뿔 나팔을 불며, 이사악에게 일어난 야훼 이레의 신비가 자녀들에게 되풀이되기를 기원한다.

이사악 번제 사건(창세 22,1-19)은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다. 당시는 아브라함이 집안 평화를 위해 이스마엘을 내보낸 뒤였다(창세 21,8-21). 그런데 이젠 이사악마저 잃을 지경이니, 과연 ‘부모나 자식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께 합당하지 않다’는 마태 10,37 말씀 그대로다. 주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이라 하지만, 그럼 그의 신실함을 여태 모르셨다는 뜻인가? 물론 그의 인품을 모르셨을 리 없다. 그러므로 이 시험을 통해 무언가 깨닫는 이는 하느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인 난관을 통과한 끝에, 자신이 얼마나 주님을 신뢰하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히브 11,17-19의 말씀처럼, 설사 이사악이 죽는다 해도 주께서 죽은 아들마저 일으켜 주시리라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을 계기로 아브라함 안에 잠재된 신앙이 표면으로 올라와 현실이 된다. 곧, 그럴지도 모르는 가능성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표출돼, 자신도 잘 깨닫지 못한 믿음의 깊이를 증명해 주었다.

뿔 나팔.


아브라함이 믿음의 바닥까지 모두 드러내자, 목적을 달성하신 하느님은 이사악 대신 숫양을 준비하셨다. 아브라함은 숫양을 바친 뒤 그곳을 ‘야훼 이레’라고 이름 붙인다. 야훼 이레란 ‘주께서 보시다’ 곧 ‘주께서 필요한 것을 살펴 채워 주신다’는 의미다. 아브라함이 번제를 바치러 간 ‘모리야’ 땅도 ‘보다’라는 어근에서 파생한 지명으로 추정된다. 야훼 이레의 ‘이레’와 어근이 같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주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모리야 땅을 찾아 간 것이며(창세 22,2-3 참조), 주님은 그곳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잠재력을 ‘보도록’ 이끄신 것이다. 그러므로 모리야는 계시의 땅이다. 이때 이사악은 번제에 쓸 나무를 짊어지고 가야 했는데(창세 22,6), 이는 훗날 십자 나무를 메고 죽음의 언덕으로 가시는 예수님에 대한 예표가 된다. 이 때문에 야훼 이레는 매년 부활 성야 제2독서로 봉독된다. 예루살렘에 봉헌된 예수님 무덤 성당에도 십자가의 길 10처 성화에 이사악 번제 모자이크가 장식돼 있다.

그렇다면 모리야 땅은 어디였을까? 2역대 3,1은 예루살렘 시온 산과 같은 곳으로 보았다. 다만 이 해석에는 역대기가 제2성전기 문헌이라는 한계가 있다. 북왕국·남왕국이 멸망하고 바빌론 유배까지 거친 뒤에 쓰인 책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전승이 생겨난 시대와 차이가 많이 나므로, 역대기 기록만으로는 모리야 땅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게다가 시온 산이 모리야였다면, 아브라함은 나무를 준비해 갈 필요가 없었다. 바로 맞은 편에 나무가 울창한 올리브 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리야가 브에르 세바에서 도보 삼 일 거리라는 사실 외에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지만, 역대기 기록을 존중해 지금도 시온 산을 모리야 산이라 부른다.

모리야가 정확히 어디건 간에, 이사악 번제 사건이 시사해주는 바는 또 있다. 주께서 이사악 대신 숫양을 주셨듯, 가나안의 악습인 인신제를 하지 말고 짐승 번제로 대체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정말 야훼 이레가 아닌가? 그렇다고 성경이 인신제를 완전히 없앤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느님 당신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들을 제물로 내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희생 제사를 완성하신 뒤에는 동물 번제도 필요 없게 된다(히브 7,27). 그리고 숫양 뿔 나팔이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야훼 이레를 상징해주듯, 신약성경에도 구원의 나팔 소리가 비슷하게 이어진다. 바로 이 나팔 소리가 들리면 주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시고(1데살 4,16), 망자들은 썩지 않은 몸으로 되살아나게 되리라 한다(1코린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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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6년 1월 10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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