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자비의 해에 읽는 구약성경: 롯의 맏딸과 모압 여자 룻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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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4-20 | 조회수9,100 | 추천수1 | |
[자비의 해에 읽는 구약성경] 롯의 맏딸과 모압 여자 룻
사해 맞은편 동쪽에 모압 산지가 펼쳐져 있다. 모세의 장사를 지냈다는 느보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옛 모압을 바라보노라면, 롯의 딸들에 얽힌 기구한 사연이 떠오른다.
근친상간이라는 불명예 속에 태어난 아들 가운데 맏딸의 소생이 모압족의 조상인 ‘모압’이었다. 그 이름은 ‘아버지로부터’, 곧 ‘아버지와 동침해 낳았다.’는 뜻이다. 둘째 딸이 낳은 ‘벤 암미’는 암몬족의 조상이 되는데, 이는 ‘내 친족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도 친족인 아버지에게서 아이를 얻었음을 나타낸다.
이번 호에서는 의롭지 못한 계기로 세상에 태어난 롯의 후손 모압이 모압 여자 룻의 효심과 자비를 통해 성화(聖化)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려고 한다.
‘허물 중에 제 어머니가 저를 배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 천사들은 그곳을 방문하여 타락상을 살폈다. 롯은 천사들에게 누룩 없는 빵을 대접했는데(창세 19,3), 고운 밀가루 빵과 최상급 송아지를 내온 아브라함(창세 18,6-8)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 이웃들이 손님을 능욕하려고 몰려왔을 때는, 손님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딸을 대신 내놓으려 했다. 성서 시대에 여인들은 집이 가난해지면 종으로 팔려가는 등 재산처럼 여겨졌다. 고대 근동인들은 제 지붕 아래 머무는 손님을 보호하는 것을 명예가 걸린 임무라고 생각했다.
이런 문화적 특성을 한껏 고려한다 해도, 명예를 위해 친딸을 위험에 빠뜨린 롯의 행동에는 비정한 아비의 모습이 여과 없이 노출되었다. 그래서 재앙이 지나간 뒤, 아버지가 지키려 한 명예를 근친상간으로 단번에 무너뜨린 딸들의 행위에는 나름의 한 맺힌 복수가 녹아있는 듯하다. 아버지가 딸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듯, 딸들도 아버지를 인사불성으로 취하게 해 두고두고 수치가 될 일을 했던 것이다. 결국 그다지 의롭지 못했던 롯은 제 딸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숙적이 될 모압과 암몬을 낳게 되었다.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뒤, 롯은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준 삼촌 아브라함을 찾아가지 않고, 오히려 아브라함과 그의 하느님에게서 멀어졌다. 소돔에서 초아르로 도망갔지만 거기에서도 안심하지 못하고, 산속의 한 동굴에서 살게 되었다(창세 19,30). 그러다가 딸들이 내놓은 술에 만취한 것이다. 이때 롯이 겪은 수치는 대홍수 뒤 술에 취해 잠든 노아가 둘째 아들 함에게 당한 수치를 떠올리게 한다(창세 9,21-22).
온 마을이 유황불에 묻혀 배우자를 구할 수 없었던 딸들이(창세 19,31) 아버지와 동침하게 된 경위도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온 인류가 멸망한 대홍수의 재앙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롯의 경우 범세계적인 재앙은 아니었기에, 인류의 대를 잇는 문제가 아닌 한 가정의 문제로 좁아졌다.
더욱이 일반에서 벗어난 행위가 계기가 되어 종국에는 다윗 임금과 예수님이 역사에 등장하므로, 모압을 낳게 된 맏딸의 기구한 팔자는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의 대를 이은 타마르(창세 38장)나, 야곱을 편애하여 에사우의 복을 가로채도록 도운 레베카의 비정상적 모성애(창세 27장)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 세상은 이처럼 부족한 인생들이 모여 사는 곳이지만, 최종의 선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롯의 이야기 안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모압과 이스라엘의 줄다리기
평범하지 않은 사연을 품고 세상에 나온 모압은 기원전 14세기 중반부터 민족을 이루어 살았던 듯 보인다. 이스라엘과 혈연이었던 만큼 히브리어와 비슷한 셈족의 언어를 썼다.
모압에 대한 기록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여정부터 시작한다. 관계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모압 평야에 진을 쳤을 때 모압 임금 발락은 예언자 발라암을 매수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다(민수 22-24장; 여호 24,9-10). 발라암의 저주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사건으로 모압은 하느님의 회중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고(신명 23,4-5), 이스라엘은 모압의 평화와 행복을 빌어주어서도 안 되었다(신명 23,6).
판관 시대에는 모압 임금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한 뒤 18년 동안 지배했다(판관 3,13-14). 백성의 신음을 들으신 하느님께서 에훗을 판관으로 세우시고 모압 임금을 죽이게 하셨을 때에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울 시대에도 모압과 대적하였으나(1사무 14,47),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 모압이 다윗의 부모를 보호해 주기도 했다(1사무 22,3-4). 솔로몬 시대에는 외교 관계가 맺어지지만, 북왕국의 오므리 임금과 아합 임금 때 모압은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가 아합이 죽자 모압 임금 메사가 반란을 일으키므로(2열왕 3,5), 북왕국과 남왕국이 연합하여 공격에 나섰다. 이에 모압 임금이 맏아들을 번제물로 바치자, 무서운 분노가 내려 이스라엘군이 철수한다(2열왕 3,27). 하지만 모압의 독립은 지속되지 못하여 기원전 733년 무렵부터 아시리아에게 조공을 바쳤고, 701년에는 아시리아의 산헤립 임금의 세력 아래 놓였다.
기원전 6세기에는 바빌론이 모압을 무너뜨렸으며, 그 뒤에는 나바테아인들에게 밀려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크모스의 백성 모압
롯이 아브라함을 찾아가지 않고 산으로 올라가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버렸듯, 롯의 후예인 모압은 크모스를 섬겼다. 고대인들은 나라와 민족별로 다스리는 신이 다르다고 생각했기에, 모압은 주신(主神)인 크모스의 이름을 따서 ‘크모스의 백성’이라 불렸다(민수 21,29; 1열왕 11,7). 하지만 다른 신도 함께 섬기는 다신 문화였으며, 모압의 종교가 이스라엘에게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이 시팀에 있을 때 모압이 우상숭배로 유혹했고(민수 25,1-2), 판관 시대에도 이스라엘이 모압의 신들을 섬겼다(판관 10,6). 솔로몬은 모압 여인들을 위해 예루살렘 동쪽 산에 크모스 제단을 쌓아(1열왕 11,1.7) 주님의 분노를 샀다. 이 제단은 요시야 임금이 종교개혁을 시행한 기원전 622년에야 파괴되었고, 예루살렘 동쪽 산은 ‘멸망의 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2열왕 23,13 참조).
모압 여인을 통해 이어진 다윗 계보
성경은 모압에 대해 대체로 비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했지만, 편견을 배제하려고 한 노력도 보여준다. 대표적 예가 바로 룻기인데, 모압 여인 룻이 보아즈와 혼인하여 다윗 임금의 계보를 잇기 때문이다(룻 4,21-22). 룻기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이방인의 이름으로 불리는 책이다. ‘룻’이라는 이름은 ‘갈증을 해소하다.’ 또는 ‘애정’이나 ‘우정’을 뜻한다. 곧 룻은 제 이름의 뜻처럼 모압으로 피난을 온 나오미의 가족에게 샘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과거에는 모압이 이스라엘을 돕지 않으려 했지만, 그 후예인 룻이 이스라엘에게 휴식처가 되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의 계보도 이어 조상들의 죗값을 대신 갚아주었다. 그러므로 룻기는 한 여인의 굴곡진 인생을 그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룻기의 작중 시기는 판관 시대다.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는 기근이 심한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땅으로 이사했다. 모압족의 평화와 행복을 빌어주면 안 된다는 율법이 있음에도(신명 23,6), 숙적의 땅으로 피난을 간 상황이 일단 예사롭지가 않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이방인과의 혼인을 곱게 보지 않았지만, 나오미의 아들들은 모압 여인을 아내로 맞는다. 그러다가 남편과 아들이 모두 죽자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와 이스라엘에서 하느님을 섬겼다. 곧 아브라함과 그의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롯이 룻을 통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룻기가 실제로 기록된 시기는 바빌론 유배 이후로 추정된다. 바빌론에서 귀향한 뒤 이스라엘 사회에는 유다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많았던 듯한데, 그들을 배척하지 말도록 종용하는 목적으로 룻기가 쓰인 듯하다.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에 반영되듯 이방인과의 혼인을 반대하는 소리가 있었지만, 너무 편협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촉구도 룻기를 통해 들려오는 것이다. 특히 이방의 며느리 룻과 시어머니 나오미가 서로에게 보여준 애정과 헌신은 이런 사회적 금기를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자칫 민족적 배타주의로 흐르기 쉬웠던 이스라엘에게 중도의 길을 열어준 룻의 이야기는 이사야서를 떠올리게 한다.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들, …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고, 나에게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라. 그들의 번제물과 희생 제물들은 … 기꺼이 받아들여지리니,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이사 56,6-7).
구원자 보아즈
옛 이스라엘에는 ‘수숙(嫂叔)혼’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누가 자손 없이 죽으면 고인의 형제가 그 과부와 혼인해 대를 이어주는 관습이다(창세 38장; 신명 25,5-6 참조). 보아즈는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의 친족이었으므로, 룻에게 수숙혼을 할 구원자 자격이 있었다. 다윗 계보에는 이런 수숙혼이 두 번 발생한다.
유다의 며느리인 타마르의 경우를 보자. 본디 에르의 아내였지만 남편이 자손 없이 죽자 시동생 오난과 재혼했다. 오난은 타마르에게서 형의 후손을 일으키게 된다는 걸 알았기에 남편의 의무를 하지 않았다. 그도 자손 없이 세상을 뜨자, 유다는 막내 셀라를 빼돌리려 했다. 이에 타마르가 창녀로 분장해 유다와 동침한 뒤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그 가운데 페레츠가 다윗의 계보를 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룻과 타마르는 둘 다 이방의 여인이었지만 예수님의 족보를 잇는 영광을 안았다(마태 1,3.5 참조). 룻기의 저자도 룻의 사연이 타마르와 유사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4,12에 암시를 남긴다.
롯의 과오를 바로잡은 룻의 효심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룻 1,16). 위기가 닥치면 진정한 친구가 누군지 알 수 있다는 말처럼, 룻은 나오미가 가장 어려울 때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가장 위태로운 시기에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아, 일생일대의 환난을 겪을 뻔한 롯의 맏딸의 아픔을 대신 갚아주는 듯하다.
룻이 시모 나오미에게 보여준 효심과 자비는 후대 여인들에게도 큰 모범이 되었고, 성모님의 예표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따라서 롯의 맏딸이 세상에 내놓은 불명예의 씨앗은 룻의 자비와 효심을 통해 마침내 구세주의 계보로 성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 김명숙 소피아 -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6년 4월호, 김명숙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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