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예수님 이야기7: 세례자 요한의 출생(1,57-66),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1,8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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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4-03 | 조회수5,687 | 추천수0 | |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7) 아기 이름을 ‘요한’이라 우긴 엘리사벳과 맞장구 친 즈카르야
- 에인 케렘에 있는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 성당 전경.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세례자 요한의 출생(1,57-66)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웃과 친척들은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여자인 데다 나이까지 많았던 까닭입니다. 더구나 즈카르야는 벙어리가 돼 있었고 엘리사벳 역시 다섯 달이나 숨어 지냈던 것을 생각하면(1,22.24 참조)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것이 당연했겠지요. 하지만 이상하다는 그들의 느낌은 큰 기쁨으로 변합니다. 엘리사벳의 득남이 하느님께서 베푸신 “큰 자비”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입니다.(1,58)
이스라엘 백성은 사내아이를 낳으면 여드레째 되는 날에 할례를 베풀고(창세 17,12; 레위 12,3 참조) 이름도 함께 지어주었습니다.(2,21 참조) 이때 친척이나 이웃 사람들이 와서 함께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전에는 아기에게 올 수 없었는데 사내아이를 낳은 산모는 이레 동안 부정하다는 율법 규정이 있었던 것이지요.(레위 12,2 참조)
마침내 할례 날이 왔습니다. 이웃 사람들과 친척들이 와서 축하하면서 아기의 이름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아버지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되지 않았더라면, 즈카르야가 먼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즈카르야에게서 이야기를 들으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즈카르야가 말을 못하기에 사람들은 관습대로 아기 이름을 즈카르야로 짓고자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로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지었지만 때로는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짓기도 했다고 합니다.
- 성당안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 경당.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그런데 엘리사벳이 반대하고 나섭니다. 아기를 요한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우깁니다. 사람들은 또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이름에는 항렬에 따른 돌림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아기 어머니가 나서서 전혀 다른 엉뚱한 이름을 댄 것입니다. 사람들은 즈카르야에게 가서 묻습니다. 말을 할 수 없었던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에 ‘아기 이름을 요한’이라고 씁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이상함에서 놀라움으로 바뀝니다.(1,63)
그런데 그 순간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즈카르야가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1,64)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놀라움은 이제 두려움으로 번져갑니다.(1,65)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 퍼져 화제가 되면서 사람들은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1,66) 하고 말합니다.
즈카르야의 노래(1,67-79)
즈카르야는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다시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제일 먼저 한 말은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1,68) 하는 찬미의 노래였습니다. 복음사가 루카는 즈카르야의 노래를 전하기에 앞서 노래의 두 가지 특징을 언급합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서 노래했다는 것과 노래 내용이 단순한 찬가가 아니라 예언이라는 것입니다.(1,67)
즈카르야의 노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하느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에 대한 감사의 노래입니다.(1,69-75.78-79) 이 부분은 다시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풀어주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계약을 잊지 않고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를 일으키셨다. ②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하고 의롭게 하느님을 섬기도록 해주시려는 것이다. ③ 메시아(높은 곳에서 찾아온 별)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선구자 이곳에서 출생하다’.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 경당 제대 아래의 탄생자리.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둘째 부분은 세례자 요한의 사명을 예언합니다(1,76-77). 요한은 단순히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이 늘그막에 하느님의 자비로 얻은 아들이 아닙니다. 요한은 지극히 높으신 분 곧 주님의 예언자가 되고 주님의 길을 미리 준비하는 선구자가 되어 주님의 백성을 일깨우게 될 것입니다.
즈카르야의 노래는 성직자ㆍ수도자들이 매일 바치는 성무일도(시간 전례)의 아침기도에 수록돼 있습니다. 매일 아침 하느님께서 구세주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놀라운 구원을 감사드리면서 하루를 “거룩하고 의롭게”(1,75) 하느님을 섬길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요한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1,80)
루카는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라고 짧게 요한의 성장 과정을 소개하는 것으로, 세례자 요한의 출생과 관련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되새겨보기
세례자 요한의 출생과 즈카르야의 노래에서 다음 두 가지를 더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느님의 주도하심 혹은 하느님의 이끄심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은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신 일이었습니다. 이 점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노래하는 즈카르야의 노래에서도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시고(1,68.78), 자비를 베푸시고(1,72.78), 계약을 기억하시고(1,72) 하는 구절들은 모두 하느님이 주도권을 쥐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하느님의 주도하심에 맡겨 드리는 것, 이것이 신앙인의 자세가 아닐까요.
둘째, 하느님의 주도권은 또한 인간의 응답, 인간의 협력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자식이 많은 다복한 가정에서 태어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평생 애타게 아들을 원한 늙은 부부를 택하셨습니다.(1,13.18 참조) 즈카르야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다시 말을 하게 된 것 또한 즈카르야가 계시를 받은 대로 아기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을 때였습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주님의 이끄심에 내어 맡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또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생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를 이끄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무시하고 외면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삶을 가만히 되돌아보면 정녕 주님의 손길이 우리를 보살피고 계심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 내(우리) 삶에서 하느님의 손길이 나(우리)를 보살피고 계심을 느끼거나 확신한 적이 있는가?
- 내(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적은 언제였나?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4월 2일, 이창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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