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히브리어 산책: 학 - 축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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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4-17 | 조회수6,880 | 추천수0 | |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학 : 축제 주님 잔치 초대받은 이들, 모두 기뻐하라
- 학. 축제.
학을 하다
히브리어 ‘아사-’는 ‘만들다’(make) 또는 ‘하다’(do)를 뜻하는 동사로서 구약성경에 2600번도 넘게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학을 아사하다’는 관용어구가 자주 쓰이는데, ‘학을 만들다’ 또는 ‘학을 (실천)하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말로는 대개 ‘축제를 지낸다’로 번역한다. 이런 말마디를 자세히 관찰하면, 본디 고대 이스라엘에서 학(축제)을 지낸다는 것은 실천과 행위가 중심에 있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주님의 성전을 봉헌하고 감격적인 기도를 올린 다음, 백성을 모두 모으고 제물을 넉넉히 준비하여 성대한 ‘학을 하였다.’(“축제를 지냈다” 1열왕 8,65; 2역대 7,8) 솔로몬이 벌인 축제는 조용히 기도하는 차분한 분위기의 행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크고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진심으로 기뻐하는 잔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모세는 마지막 유언에서 이스라엘의 축제를 규정하였다. 하느님 백성은 “주 너희 하느님을 위하여 주간절 학을 해야(축제를 지내야) 한다.”(신명 16,10) 그리고 “초막절 학을 해야(축제를 지내야) 한다.”(신명 16,13) 이런 표현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축제가 지닌 생생한 느낌을 엿볼 수 있다. 축제는 장례식처럼 침묵의 분위기에서 엄숙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다. 실제 기쁨의 느낌을 서로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 아사. 만들다(make) 또는 하다(do)를 의미하는 말로서, 무척 자주 쓰인다. 우리말 성경에 ‘축제를 지낸다’는 히브리어로 ‘축제를 하다’로 직역될 수 있다. 동사원형을 표현할 때는 위처럼 어근만 적지만 관습적으로 ‘아’(?)를 넣어 읽는다. 그러므로 위 글자는 ‘아사-’로 발음한다.
기쁨의 잔치
신명기에서 모세는 예루살렘 성전을 거듭 강조한다. 성전은 전례의 장소요 학(축제)의 장소다. 백성이 성전에서 할 일은 “주 너희 하느님 앞에서 기뻐하는”(신명 12,12.18; 16,11; 27,7) 것이다. 이렇듯 전례의 본질은 학(잔치)이며, 백성은 그 잔치에서 내면으로부터 기쁨을 느껴야 한다.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전례는 학(축제)이라고 할 수 없다.
백성은 예루살렘 중앙 성소에서(신명 12,7.12.18), 주간절 축제 때에(신명 16,11), 초막절에(신명 16,14), 맏물을 봉헌할 때(신명 26,11), 친교 제물을 바칠 때(신명 27,7) 참된 기쁨을 누리며 ‘학을 한다.’ 이렇게 주님의 학에 참여하는 백성이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복음의 기쁨」 1항)는 가르침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교회는 잔치와 기쁨의 공동체다.
- 심하. 기쁨을 의미한다. 복음의 기쁨에서 ‘기쁨’(gaudium)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찾으라면 이 말을 들 수 있다. 윗첨자 e는 발음되지 않지만 초보자를 위해서 표기한 것이다.(무성셰와)
이집트 탈출의 이유
학은 이집트 탈출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기도 했다. 하느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학에 참여하여 기쁨을 누리며 사는 삶이었다. 파라오가 누가 이집트에서 나갈 것이냐를 묻자 모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희의 아이들과 노인들을 데리고 가야겠습니다. 아들딸들과 함께, 양 떼와 소 떼도 몰고 가야겠습니다. 저희가 주님의 학을 해야(축제를 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탈출 10,9) 주님의 학이 기쁨의 잔치라는 점을 성찰하면, 이 대답의 의미가 새삼스레 다가온다. 이집트 종살이의 힘든 노역과 고통에서 해방되어 참된 주님의 학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고 싶은 히브리 백성의 염원이 이 대답에 담겨 있다.
또한 모세는 노인과 아이들과 가축도 학에 참여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학은 공동체의 구성원 전부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구약성경은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주님의 잔치에 분명히 초대받았고, 그들이 공동체 내부에서 소외되지 말아야 함을 거듭 강조한다. 곧 딸과 아들, 남종과 여종, 레위인들(신명 12,12.18)은 물론이고, 소외되고 약한 이방인, 고아, 과부도(신명 16,11.14; 26,11) 주님의 학에 어엿한 자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집트 탈출 사건이 완성되기 직전에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 기쁨의 학을 절대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학을 해라.(축제를 지내라)”(탈출 12,14; 참조 13,6) 고대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학인 파스카 축제의 본질도 이렇게 모두가 기쁘게 참여하는 잔치였다. 잔치와 기쁨의 하느님 나라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께서 다시 일어나시어 영원한 삶을 증명하신 부활절이다. 소외된 사람 없이 모두가 학의 기쁨을 맞이하길 고대한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4월 16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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