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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히브리어 산책: 하샤브(계획하다,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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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23 조회수6,968 추천수0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하샤브


하느님 계획 깨달아 자비 실천에 동참해야

 

 

하샤브는 ‘계획하다’ 또는 ‘생각하다’는 뜻의 동사다.

 

하샤브. 머리를 짜내어 계획하고 고안하는 일을 표현하는 동사로서, ‘생각하다’, ‘계획하다’, ‘인정하다’, ‘셈하다’ 등으로 다양하게 옮긴다. 동사 어근을 표현할 때는 이처럼 어근만 대문자로 적지만 관습적으로 ‘아’(a)를 넣어 읽는다. 그러므로 위 글자는 ‘하샤브’로 발음한다.

 

 

고안하고 계산하다

 

하샤브는 원래 ‘(천을) 짜다’는 뜻이었는데, 그런 본래의 의미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말 ‘짜다’도 ‘실을 결어서 천을 만들다’는 뜻도 있고 ‘의논하여 계획을 세우다’는 뜻도 있으니 이 점에서도 히브리어와 우리말이 통한다고 할 수 있다. 하샤브는 머리를 짜내어 계획이나 생각의 틀 등을 고안하는 것을 의미했다.

 

몇 가지 예를 보자. 이집트에서 탈출한 백성이 주님의 성막을 지을 때, 주님께서는 ‘유다 지파에 속한 브찰엘”을 지명하셨고, 그는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여러 가지를 하샤브하여(고안하여) 금, 은, 청동으로” 갖가지 성물을 만들었다.(탈출 31,1-4; 35,30-32)

 

숫자를 헤아리는 것도 하샤브라 했다. 하느님은 작고 가난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과거의 어려운 때를 잊지 말라고 권고하시고, 희년 규정을 두시어 토지(자본)나 인력의 독점과 착취를 방지하고자 하셨다. 그래서 희년이 되면 백성은 “제 소유지를 되찾아야 한다.”(레위 25,13) 또한 이스라엘 사람이 종이 되면 희년에 그를 풀어주어야 했다.(25,40) 그러므로 종을 사고팔 때는 “희년까지가 몇 해인지 하샤브하여(헤아려), 그 햇수에 따라”(25,50) 값을 매겨야 한다. 만일 “희년까지 남은 햇수가 얼마 되지 않으면, 그 햇수에 따라 하샤브한(계산한) 다음”(25,52) 값을 치러야 한다. 만일 자기 밭을 주님께 봉헌하면, “사제가 희년까지 얼마인지 하샤브하여(따져) 그 값의 총액을 계산한다.”(레위 27,23)

 

호셰브.‘하샤브 하는 사람’이란 뜻으로서, ‘천을 짜는 사람’, ‘직조공’, ‘자수가’ 등으로 옮긴다. 하샤브가 본디 ‘천을 짜다’는 뜻이었기에 이런 파생어가 생겼다.

 

 

악을 꾀하다

 

하샤브는 악을 ‘꾀할’ 때도 사용된다. 사울은 딸 미칼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다윗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1사무 18,20-21) 그는 다윗에게 사위가 되는 조건으로 “필리스티아인들의 포피 백 개”를 요구했는데, 그 이유는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으로 그를 죽일 하샤브였던(생각이었던) 것이다.”(1사무 18,25) 호세아 예언자도 이런 맥락에서 하샤브란 말을 썼다. 그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길러주셨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은 “나를 거슬러 악을 하샤브한다(꾀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질책하였다.(호세 7,15)

 

 

하느님의 생각

 

하느님의 자비로운 계획도 하샤브라고 한다. 일찍이 하느님께서 아브람을 선택하셔서 계약을 맺으실 때, 성경은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하샤브해(인정해) 주셨다”(창세 15,6)고 전한다. 이 표현에는 하느님의 하샤브는 인간의 하샤브와 다르다는 깊은 성찰이 들어 있다. 하느님의 하샤브는 절대자께서 인간을 위해 ‘생각을 해 주시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 높으신 분께서 ‘인정해주시는 것’과 같은 의미다. 또한 우리는 이 구절에서, 하느님의 생각은 그저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실천으로 드러나리라는 믿음도 읽을 수 있다. 아브람께 베푸신 계약은 역사에서 실행되지 않았는가. 하느님의 모든 하샤브가 역사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힛샤본. ‘생각’ 또는 ‘계획’을 뜻하는 말이다. 가운데 연두색 점(강한 다게쉬)은 두 번 썼음을 표시하므로 s을 겹쳐 써야 한다.

 

 

자비로운 생각

 

구약성경에는 하느님의 하샤브와 인간의 하샤브가 대립하는 듯한 구절이 있다.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 말미를 보자. 이제 모든 사연이 속속들이 밝혀졌고, 형들은 요셉에게 과거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창세 50,18-19) 그러자 요셉은 이렇게 말했다.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하샤브하였지만(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하샤브하셨습니다(바꾸셨습니다).”(창세 50,20) 이처럼 비록 인간이 악을 꾀하였어도, 하느님은 자비와 사랑의 원대한 계획으로 대응하신다. 그분은 결국 인간적 악연의 모든 고리를 끊으시는 분으로서, 인간의 악업(惡業)을 신의 선업(善業)으로 바꾸셨다.

 

오늘 복음에서 토마스 사도는 자신의 하샤브를 내세웠지만, 주님은 줄곧 선한 하샤브로 대응하셨고, 결국 사도는 믿음으로 응답하고 증거했다. 하느님의 하샤브를 뒤늦게라도 깨닫는 자는 그분의 자비로운 실천(慈悲行)에 동참한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4월 23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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