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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12: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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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3,695 추천수0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 (12)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마음으로부터 표준 가르침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가르침에 여러분 자신이 넘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죄에서 자유롭게 되어 의로움의 종이 되었습니다.”(6,17-18 필자 직역).

 

 

문맥 보기

 

5장에서 바오로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조하면서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삶으로 들어섰다고 설명하였다. 6장에서는 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설명한다. 1-14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 믿는 이들이 얻게 된 삶의 특징을 설명하고, 15-23절에서는 이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라고 권고한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단지 지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체험을 내 삶에서 새롭게 하는 것이다. 바오로는 이런 변형(變形)의 여정이 죄와 갈라서고 그리스도를 닮으며 살겠다고 선택한 세례의 순간에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세례를 통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선물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라고 초대한다.

 

 

세례의 의미

 

바오로가 6,17-18에서 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지 이해하려면, 그가 6장에서 세례라는 용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지 알아야 한다. 바오로는 세례 받은 이는 죄에 머무를 수 없다고 확신한다(6,1 참조). 믿는 이는 세례를 받아 명확하게 죄와 갈라섰기 때문이다. 6,2은 6장 전체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죄에서는 이미 죽은 우리가 어떻게 여전히 죄 안에 살 수 있겟습니까?” 바오로는 이 구절에서 세례 받은 이의 정체성을 ‘죄에서 죽은 사람’으로 소개한다. 이런 강한 확신은 아마 바오로의 체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뒤에 죄를 지으며 사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것이 양립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세례 받은 사람은 ‘새로운 창조물’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갈라 6,15; 2코린 5,17 참조).

 

6,3에서 처음으로 세례라는 주제가 등장한다. 바오로는 세례를 ‘그리스도 안의 세례, 그의 죽음 안에 세례’라고 표현한다. ‘그리스도 안에(《성경》에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라는 표현에서 전치사 ‘안에’(에이스, ειs)는 보통 장소의 이동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세례 행위의 결과로 나오는 후속 행위 전체를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런 해석은 신약성경에서 ‘세례 받다’는 말의 일반적 쓰임과 일치한다.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를 죄의 용서를 위한 것이었다(마르 1,4; 루카 3,3; 사도 2,38 참조).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 참여하기 위한 부르심이다. 6,4에서 바오로는 즉시 죄에 물든 삶과 세례 사이의 불연속성 원칙을 단언한다. 믿는 이는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삶(죽음, 매장, 부활)에 참여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깊이 일치하며 살아기기 때문에 죄가 지배하는 삶을 살 수 없다(필리 3,10-11; 2티모 2,8-12 참조).

 

이런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6,11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위해 산다’는 표현으로 절정에 달한다.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이들, 곧 믿는 이들은 결국 하느님께 속한다. 그래서 그들의 새로운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단지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만 의미하지 않고, 죄와 육과 죽음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본보기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아마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위해 산다’는 말은 바오로의 삶을 이끄는 좌우명이었을 것이다(갈라 2,19 참조). 이 표현은 또한 바오로가 로마서의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복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마치 자기 것처럼 체험하는 사람이다(2코린 6,10; 12,10; 필리 3,10 참조). 그 체험은 세례를 통해 시작되고 계속 성장해 간다. 그래서 믿는 이의 세례는 ‘그리스도 안의 세례’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6,17은 해석하기 힘든 구절이다. 해석의 첫 번째 어려움은 ‘표준 가르침’(튀포스 디다케스, τυποs διδαχηs)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튀포스’는 ‘각인, 표시, 표상’이나 종교와 철학의 주제를 체계 있게 다룬 것 또는 그 요약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그 용법 외에도 바오로 서간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모델’이 되는 사람, 특히 신앙의 모범이 되는 사람을 가리킨다(1코린 10,6; 필리 3,17; 1테살 1,7; 2테살 3,9; 1티모 4,12; 티토 2,7 참조). 그러나 6,17에서는 ‘튀포스’가 ‘가르침(디다케)’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모델이 되는 어떤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표준 가르침’은 믿는 이의 삶의 모든 차원을 이끌어 가는 ‘복음 또는 가시적 가르침, 삶의 모델이 되는 가르침’을 가리킬 것이다.

 

해석의 두 번재 어려움은 6,17 후반부 문장이 보기 힘든 문장 구조라는 데서 비롯된다(에이스 혼 파레도세테 튀폰 디다케스, ειs ον παρεδοθητε τυπον διδαχηs), ‘표준 가르침’이 믿는 사람들에게 넘겨진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 ‘표준 가르침’에 넘겨졌다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바오로에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권위, 믿는 이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감사를

 

로마의 그리스도인은 ‘표준 가르침’을 마음으로 순종하며 받아들였기에 죄에서 자유롭게 되었고 의로움의 종이 되었다. 바오로는 로마의 그리스도인의 과거와 현재의 바뀐 신분을 생각할 때 절로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감사란 자기 삶이 온전히 창조주에게 달렸음을 믿는 신앙의 행위이자 자신이 선물로 받은 것을 헤아릴 줄 아는 행위이다(6,11 참조).

 

6,17-18에서 바오로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가 한때는 죄의 종이었는데도 이제는 의로움의 종이 되었으니까요. 제가 한때의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의로움의 종, 하느님의 종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감사는 하느님께서 자기 삶 안에 행하신 사실에 대한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진정한 감사는 이런 좋은 일을 해 주신 분께 행동으로 보답하는 것, 하느님의 종이 되어 그의 소명인 성화에 도달하는 것이다(6,19-23 참조). 인간은 하느님의 종이 되지 않으면 죄의 종이 된다. 아담 안에 있거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오직 하느님의 종이 되는 것,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을 빚으신 창조주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데 달렸다(1,18-32; 5,12-21 참조).

 

 

바오로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

 

6장은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으로 부르심을 받으 것에 대한 찬미가라고 할 수 있다. 초대 교회는 세례를 외적 죄를 거부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택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으 입문 의식으로 여겼다. 바오로는 초대 교회가 지녔던 세례에 대한 생생한 감각과 체험을 많이 상실한 우리에게 신앙의 시작인 세례 체험으로 돌아가라고 초대한다. 세례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위해 살라’는 부르심이자 죄에 머물지 말고 끊임없이 회심하나는 초대이다. 6장에서 바오로는 로마의 그리스도인에게 세례라는 용어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이 왜 ‘감사’가 되어야 하는지 말하고자 한다. 세례 받은 이는 하느님의 은총과 ‘신앙의 눈’으로, 힘든 인생도 길고 넓고 깊게 바라볼 줄 안다. 그의 시선은 현세에 멈추지 않고 종말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세례는 정말 귀하고 놀라운 선물이다. 하느님께 감사할 일이다.

 

* 임숙희 님은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로마서의 바오로 기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회의 신앙과 영성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며 글쓰기와 강의를 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2년 12월호(통권 441호), 임숙희 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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