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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구약인물과 함께하는 치유여정: 히즈키야의 넓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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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18 조회수8,422 추천수0

[구약인물과 함께하는 치유여정] 히즈키야의 넓은 마음

 

 

그날 이후, 저의 삶에는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의 소식이 담긴 일간 신문이 제가 평생 간직하고 싶은 몇 안 되는 물건들 속에 포함되었고, 남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내 뼈에서 나온 뼈, 내 살에서 나온 살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4월 27일 오전 아홉 시 삼십 분,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치러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염원이 담긴 종소리가 교정에 울려 퍼졌습니다. 모든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종합 강의실에 모여 남과 북의 대표자가 만나는 역사의 현장을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멋지게 펼쳐졌습니다. 마음 깊은 데서부터 뜨거운 감동이 올라왔습니다. “본래 이런 것이었구나!” 우리의 관계는 본래 이런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서로 존중하고 맞아들이는 형제 관계였는데, 지난 시간들은 형제가 형제로서 살 수 없었던 비정상적인 시간이었고, 잃어버린 시간이었습니다. 이 특별했던 만남으로 저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직하신 꿈의 구체적인 모습을 더욱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꾸시는 꿈은 인류에게 에덴 동산을 되돌려주시는 것입니다. 태초의 인간이 살도록 만들어주시던 그 환경을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첫 권인 창세기가 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이 막혀버린 이유를 말해준다면,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묵시록은 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이 열리는 비전을 제시해줍니다. 하느님께서 세우실 새 예루살렘 한가운데는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그 강가에는 생명 나무가 자라며, 그 생명 나무의 잎은 온 민족들을 치료하는 치료제가 될 것입니다(묵시 22,2 참조). 하느님께서 꾸시는 이 꿈, 이 비전에는 소외와 배제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모두가 좋은 것을 함께 나누는 세상이 하느님께서 꿈꾸시는 세상이라면 저 역시 그런 세상을 꿈꿀 것입니다. 내 편 네 편이 있는, 편 가름이 쳐놓은 장벽은 이제 저의 비전에서 말끔히 치워버리겠습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였고, 하나여야 하며,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주의나 주장으로 머물지 않으려면 하나가 되는 비전을 현실 안에서 구체화하는 작업이 요구됩니다. 저는 그 한 예를 히즈키야 임금이 보여준 모범에서 발견하고자 합니다. 그는 남왕국 유다의 임금이었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을 마음에 품을 줄 알았고, 마음만이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던 임금이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고대 이스라엘도 남과 북이 서로 갈라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유다의 히즈키야 임금 시절에 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시리아 제국은 북이스라엘의 주민들을 아시리아 제국으로 끌고 가서 제국의 여러 곳에 흩어져 살게 하였습니다. 이때 많은 북이스라엘 주민들이 아시리아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남쪽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히즈키야 임금은 그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예루살렘의 거주지를 대폭 확장하여 그들이 정착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때 확장된 예루살렘의 거주지는 “신시가지”(2열왕 22,14; 2역대 34,22; 스바 1,10)로 불렸습니다.  

 

히즈키야 임금이 북이스라엘의 유민들을 한 겨레로 여기고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역대기 하권 30장이 전하는 일화를 통해서도 증명이 됩니다. 이 일화를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히즈키야 임금의 넓은 마음을 닮아보고자 합니다. 히즈키야 임금은 왕위에 오른 후 성전을 정화하고 종교를 개혁하는 노력에 박차를 가합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인 아하즈 임금이 펼친 친 아시리아 정책과 그에 수반된 종교혼합 정책으로 오염된 성전의 전례를 정화하고, 모든 우상을 제거하며, 백성들이 순수한 야훼 신앙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히즈키야의 종교개혁의 토대는 북이스라엘의 지식층이 가지고 내려 온 중요한 문서들 안에 포함되었을 신명기가 아니었을까 추정됩니다.  

 

역대기 하권 30장은 성전을 정화하고 난 후 히즈키야 임금이 그 성전에서 온 백성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는 사실을 보도합니다. 이 파스카 축제의 특별함은 히즈키야 임금이 유다의 백성들뿐 아니라 유배를 가지 않고 그 땅에 남아 있던 북이스라엘의 유민들도 모두 초대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법적으로 보면 그들은 자신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그의 마음은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까지 미쳤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두 지파라고 할 수 있는 에프라임과 므나쎄 지파에 손수 편지를 써서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오도록 초대합니다. 히즈키야는 그 편지에서 그들의 조상들처럼 목을 뻣뻣하게 하지 말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하느님을 섬기라고 촉구합니다. 그들이 하느님께 돌아오기만 한다면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유배를 갔던 이들이 모두 돌아올 수 있게 하실 것이니, 하느님께 돌아온다는 표지로 예루살렘으로 와서 파스카 축제를 지낼 것을 당부합니다. 히즈키야가 보낸 보발꾼들은 즈불룬에 이르기까지 에프라임과 므나쎄 지방을 두루 다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발꾼들을 비웃고 조롱하였지만 아세르와 므나쎄와 즈불룬에서 몇몇 사람이 이 초대에 응하였습니다.  

 

히즈키야 임금은 신명기의 규정에 따라 모든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파스카 축제를 지내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수많은 희생제물을 잡는 데 필요한 사제들의 수가 충분하지 않아서 본래대로 니산 달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러자 히즈키야 임금은 대신들과 예루살렘의 온 회중과 의논하여 두 번째 달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이는 민수기에서  말하는 두 번째 파스카 축제에 관한 규정(9,6-12)에 따른 결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히즈키야 임금 시절에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으로 브에르 세바에서 단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파스카 축제를 함께 지냅니다.  

 

드디어 엄청나게 많은 회중이 파스카와 무교절 축제를 지내려고 예루살렘으로 모여 왔고, 모든 것이 율법의 규정에 따라 잘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축제 당일에 많은 백성들, 특히 에프라임과 므나쎄와 이사카르와 즈불룬에서 온 사람들이 정결하지 못한 몸으로 파스카 양을 먹었습니다. 먼 길을 달려오느라 자신을 정화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없었던 탓이었든지, 율법의 규정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던 까닭이었든지, 어쨌거나 그들은 율법을 어겼으니 이제 그들 위에 벌이 내릴 것입니다. 그들이 벌을 받아 죽게 된다면, 그들을 초대한 히즈키야 임금에게도, 어렵사리 축제에 참여하고자 먼 길을 달려왔던 그들에게도 그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히즈키야 임금은 그들을 위하여 선하신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선하신 주님, 이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들이 비록 성소의 정결 예식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하느님을 찾기로 마음을 굳힌 사람들입니다.” 히즈키야 임금은 사람의 마음을 굽어보시는 하느님께 북이스라엘 땅에서부터 파스카 축제를 지내려고 온 저들의 마음과, 그들을 한 민족으로 여겨 굳이 초대하려고 했던 자신의 마음을 굽어보아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주님께서는 히즈키야 임금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들이 화를 입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에는 기쁨이 넘쳐흘렀습니다. 유다의 온 회중과 이스라엘에서 온 모든 회중, 이스라엘 땅에서 넘어온 이방인들과 유다에 사는 거류민들이 파스카 축제의 기쁨 안에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스라엘의 임금 다윗의 아들 솔로몬 시대 이래 예루살렘에서 이처럼 큰 기쁨이 넘쳐흘렀던 적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그 날에도 히즈키야 임금 시대의 그날처럼 기쁨이 넘쳤습니다. 서로의 번영을 간절히 바라는 하나 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새롭게 써나가야 할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렸습니다. 이 새로운 역사를 평화의 시대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모든 좋은 것을 기꺼이, 그리고 너그럽게 서로 나누려는 마음으로 분열과 배제, 비난과 차별을 적극적으로 치워버리는 곳에서 평화는 열립니다. 이제 저는 제 마음 안에 저도 모르게 자리 잡았던 모든 장벽을 뜯어내고자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같은 꿈을 날마다 부지런히 꾸렵니다.

 

* 김영선 -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 수도자로,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생활성서, 2018년 6월호, 김영선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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