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서의 해: 레위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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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9-07-08 | 조회수7,264 | 추천수0 | |
[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레위기 I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탈출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이뤄진 탈출이 아니라 하느님의 이끄심과 섭리 속에서 이뤄진 탈출이었습니다. 아울러 탈출기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킨 목적을 알려줍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탈출 3,12; 7,16; 8,21; 9,13).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고자 탈출기는 먼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계약 이야기와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줍니다. 또한 하느님 현존의 장소이며 상징인 성막을 건립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탈출 40,16-33). 그리고 뒤이어 등장하는 레위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다음, 만남의 천막에서 그에게 말씀하셨다”(레위 1,1). 만남의 천막, 바로 탈출기의 마지막에 건립된 성막이 중심 무대가 되어서 레위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제 그 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레위기 이야기는 이집트 탈출과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앞선 탈출기 내용에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기억나실까요? 창세기가 이집트로 내려간 야곱과 그 후손의 이야기로 마무리되고(창세 50), 탈출기가 “이집트로 들어간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탈출 1,1)으로 시작되는 것을. 이처럼 레위기도 탈출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줍니다.
계약을 체결하고, 하느님 현존의 장소인 성막을 건설하면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탈출한 노예 집단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 이스라엘 백성이 온전하게 그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 그것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찾아갈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바로 레위기입니다. 레위기에 읽기 어렵고 따분하게만 다가오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레위기를 읽어보신 모든 분들이 거의 동의하실 겁니다. 제사에 관한 이야기, 예물 봉헌과 축성 예식, 부정을 씻는 법 등이 나오면서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모두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위기는 성막을 중심으로 하느님께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제사는 언제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제물은 어떻게 봉헌해야 올바른 것인지에 관한 그 구체적 내용을 알려주면서 이것을 지키는 것, 그것이 곧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굳건하게 해 준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러한 의미는 책 제목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레위기의 명칭은 히브리어로 ‘봐이크라(ויקרא)’로 ‘그가 부르셨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소명이라는 사실을 레위기는 알려줍니다. 단순하게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서, 하느님 안에서 이스라엘이 하느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 구체적인 방법과 길을 알려주는 것이지요. 탈출기에서 밝힌 하느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스라엘의 소명을 분명하게 암시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인 칠십인역에서는 레위기를 ‘레위티콘(λευιτικόν)’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서 우리말 제목인 ‘레위기’가 오게 됩니다. 이는 ‘레위인들의’, ‘레위 지파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책이 바로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 사제 직무를 수행하는 레위인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전체 내용에서 레위인들만을 위한 지침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의 많은 내용은 하느님의 사제로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그 대상으로 삼고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계시는 성막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바로 레위기입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거룩해야 하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향한 여정, 우리가 보기에는 낯설게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 복잡한 제사와 예배와 규정이 하느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줍니다. 광야라는 삭막한 공간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새로운 신원을 얻고, 새로운 여정으로 큰 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2019년 7월 7일 연중 제14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레위기 II
레위기의 중심 무대는 탈출기에서 이어지는 ‘만남의 천막’입니다(레위 1,1). 바로 이 만남의 천막을 중심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와 관련 법령에 따라서 레위기는 전반부와 후반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다섯 가지 제사(1-7장), 첫 제물 봉헌 및 사제 축성 예식(8-10장), 정결과 부정에 관한 법(11-16장)을 다룹니다. 후반부는 성결법(17-26장)과 부록(27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미사를 봉헌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도 하느님께 제사를 봉헌하였습니다. 하나의 제사가 아니라, 다양한 제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이를 주제별로 구별하여 살펴보면 레위기 1-15장의 중심에는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예배에 사용되는 제물과 사제에 관한 이야기가 1-10장에, 예배 참여를 위한 정결의 조건이 11-15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와 부정을 씻어내는 ‘속죄일’에 대한 이야기가 16장에서 언급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과 자유를 선사하셨다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제사를 봉헌하면서 하느님과 일방적 관계가 아닌,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의 쌍방향의 관계를 갖게 됩니다.
각종 제사와 예배, 그리고 세부적인 제사집전 방식과 절차를 읽고 있노라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별히 제물을 봉헌할 때, 어떤 짐승을 봉헌하는지, 또 어떤 목적으로 제물을 봉헌하느냐에 따라서 피를 뿌리는 방식이 다양하게 묘사됩니다. 피를 가져다가 만남의 천막 어귀에 있는 제단을 돌면서 뿌리거나(1,5.11), 제단 벽에 대고 짜내기도 합니다(1,15). 또 제물의 목적이, 친교 제물의 경우에는 아론의 아들인 사제들이 제단을 돌며 거기에 피를 뿌리고(3,1.8.13), 속죄 제물의 경우(사제와 회중)에는 사제가 손가락에 피를 찍어 성소 휘장 앞면에 그 피를 일곱 번 뿌립니다(4,6.17). 또 수장의 속죄 제물의 피는 번제 제단 밑바닥에 쏟고(4,25), 일반인의 속죄 제물의 피는 사제가 손가락에 조금 묻혀 번제 제단의 뿔들에 바르고, 나머지 피는 모두 번제 제단 밑바닥에 쏟습니다(4,30). 이외에도 피를 뿌리고 처리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레위기가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피를 다룰 것을 알려주는 이유는 바로 구약성경에서 피는 ‘생명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피는 생명을 의미하며, 이는 곧 하느님의 영역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어떠한 피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3,17; 7,26; 17,10-16). 그뿐만이 아닙니다. 생명 곧 피가 들어있는 살코기를 먹어서도 안 되었습니다(창세 9,4). 또한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목 졸라 죽인 짐승은 죽은 몸속에 아직 ‘생명의 피’를 담고 있기에 그것을 먹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피가 영혼을 운반하는 도구라고 여겼던 것이지요. 피는 인간이 아닌, 하느님께 속한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피를 먹지 않거나, 혹은 피를 직접 제단에 봉헌하지 않고, 하느님 제단에 뿌리거나, 바르거나, 쏟는 행위로 생명을 하느님께 다시 돌려드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피는 ‘생명’을 상징하기에 인간의 잘못에 대한 속죄와 용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속죄의 제사를 통하여 하느님께 속한 ‘생명의 피’를 봉헌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잘못과 죄악에 대하여 용서를 받고 부정한 상태에서 다시 정결한 상태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피를 대하는 다양한 모습은 목적과 대상에 따라 철저하게 구분되었습니다. 재미없고 따분한 제사의 이야기는 이렇듯이 나름의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 세부적 규칙을 수행하면서 하느님께 속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새로운 하느님 백성인 우리도 하느님께 제사를 봉헌합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제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제물로 봉헌한 동물과 짐승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생명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봉헌합니다. 고귀한 제물을 봉헌하는 제사입니다. 레위기가 알려주는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를 통해 우리들 삶의 자리를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제사, 우리는 어떠한 몸과 마음으로 봉헌하고 있는지요? [2019년 7월 14일 연중 제15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레위기 III
언어의 전문성과 생소함으로 다가오는 내용들로 인해 우리에게 쉽지 않은 레위기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요? 레위기가 담고 있는 핵심주제는 다음의 한 구절로 요약됩니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 레위기는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느님 소유인 이스라엘 백성 또한 거룩함의 길을 걸어야 함을, 아울러 하느님이 이끄시는 공동체이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 어떤 윤리적 부정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그 구체적인 내용을 ‘성결법전’(레위 17-26장)이라고 불리는 본문이 담고 있습니다.
우선 거룩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에 우리는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거룩함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거룩함’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코데쉬(קדש)’입니다. 이 단어는 ‘카다쉬’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구분하다’, ‘분리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살펴본다면, ‘거룩함’이라는 단어는 ‘구별됨’과 ‘성별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이든지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듯이 다른 민족과 구별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하는 내용이 바로 ‘성결법전’에 담겨있는 것이지요. 성결법전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하는 것을 요약하여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생명을 담고 있는 피를 먹지 말아야 하며(17장), 남녀 간의 성관계에서도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18장).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세부 항목들을 알려주며(19-20장), 사제들 또한 하느님께 제물을 봉헌하는 이들이기에 정결함을 유지하고 신체적으로도 흠이 있어서는 안 되며(21장), 제사에 봉헌하는 제물 역시 흠이 없어야 합니다(22장).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한 모임으로 소집되어야 하는 이스라엘의 축일들 - 안식일, 파스카, 무교절, 오순절, 초막절, 안식년, 희년 - 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함을 강조합니다(23-25장). 그리고 26장에서는 하느님의 계명을 성실하게 따르면서 순종의 길을 걸으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겠지만, 순종이 아닌 거역의 길을 따르면 벌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경고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함은 단순하게 제사와 제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윤리적 영역에서의 거룩함까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계명을 지키는 한 개인에게만 거룩함이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일상을 함께 사는 이웃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함께 거룩함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흔히 거룩함을 전례와 성사의 영역에만 한정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함을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부터 하느님과 직접 만나는 제사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해당되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탈출기의 마지막과 레위기의 시작은 ‘만남의 천막’에서 이뤄집니다. 하느님 현존의 자리인 만남의 천막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하신 하느님과 함께이기에 거룩하게 살아가야 했습니다. 레위기는 이처럼 ‘만남의 천막’이라는 장소가 지닌 거룩함과,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지녀야 하는 거룩함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레위기 전체의 주제를 주조합니다.
거룩함은 야훼 하느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우리들에게나 추구해야 하는 지향점이고 목적지가 되어야 합니다. 미사에 열심히 참례하는 것도, 고해성사를 진실하게 보는 것도 모두 거룩함의 여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자리 속에서 이웃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가는 것, 그 모든 노력들이 우리를 조금씩 조금씩 주님의 거룩함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2019년 7월 21일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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