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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상처 많고 한 많은 인생, 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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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13 조회수2,593 추천수1

[허영엽 신부의 ‘나눔’] 상처 많고 한 많은 인생, 롯

 

 

창세기를 읽다 보면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중에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그의 인생 여정을 항상 같이했던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떠날 때, 그리고 흉년이 들어 이집트로 피난 갔을 때에도 롯이 동행했습니다. 두 사람은 일반적인 삼촌 조카가 아닌 마치 부모와 자식 같은 사이였습니다.

 

불행하게도 롯의 아버지 하란은 할아버지 테라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시대의 아버지는 삶의 가장 든든한 후견인입니다. 롯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큰 충격과 상처가 되었습니다. 삼촌 아브라함도 자식이 없어 조카 롯의 후견인 역할을 하지만 아무래도 피를 나눈 친아버지와는 모든 것이 달랐을 것입니다.

 

“나의 조카, 롯아 너는 나의 아들과 같다. 그러니 나를 아버지처럼 의지하고 항상 내 곁에 있어라….”

 

“삼촌, 이 세상에 제가 의지할 사람은 삼촌밖에 없습니다. 이제 삼촌과 함께라면 목숨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을 가엽게 여기고 많은 사랑을 주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아들이 없던 아브라함은 더욱더 조카 롯에게 신경을 썼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을 떠받들어주고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봐주기를 바라는 형태로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결핍의 상태가 심하면 변화와 성장의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이기적이고 노골적으로 다른 이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심적으로 강한 피해의식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을 통해 자신의 결핍상태를 해소하려는 보상심리를 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잘못 표출되면 부모나 형제에게서 받았어야 할 사랑을 타인에게 부적절하게 요구하기도 합니다.

 

사람들 중에도 일방적인 도움은 처음에는 고맙게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시되고 오히려 도움이 없을 때 서운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인간관계에서는 일방적이 아닌 상호쌍방적인 사랑이 있어야 건강한 관계가 유지됩니다.

 

 

싸움이 잦아지자 결별하는 아브라함과 롯

 

롯은 할아버지마저 잃고 고향을 떠나 여러 지역으로 옮겨 다니고 친아버지 같았던 아브라함과도 결국 헤어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돈독했던 아브라함과 롯 사이도 양떼와 소떼 등 재산이 많아지자 문제가 생깁니다. 우선 그들이 데리고 있는 목자들 사이에서 다툼이 생겼습니다. 인생사가 보통 그렇습니다. 형제자매 간에도 결혼을 하고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경제적인 문제가 생기면 관계에 틈이 생기게 됩니다. 인간관계에서 싸움은 재물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식솔들의 싸움이 잦아지면서 두 사람의 관계도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분쟁이 반복되면 동거보다는 분가하는 것이 지혜로울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서로 힘을 합해야만 간신히 살 수 있었던 과거의 가난했던 시절엔 오히려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가진 것이 많아지자 관계가 어려워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조카와 결별하려고 결심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자기 품에 두려고 노력해도 롯이 더 이상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컸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분가하기를 권하며 롯에게 먼저 땅의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롯아 너와 나는 한 핏줄이 아니냐? 네 목자와 내 목자들이 싸워서야 되겠니. 따로 나가 독립해서 살림을 차려라. 네 앞에 얼마든지 땅이 있으니 네가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어디든지 먼저 차지하려무나. 나머지는 내가 가질 테니….”

 

사실 아브라함이 먼저 선택할 수 있지만 조카 롯에게 양보한 셈입니다.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지는 것은 마치 부모의 품에서 떠나 자녀가 독립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롯은 그동안 모든 것을 지원해준 아브라함에게서 떠나 심리적으로 독립을 해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삼촌의 그늘에서 살던 롯이 분가해서 혼자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롯도 나이가 들고 재물도 늘어가면서 독립하려는 마음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보통 어느 정도의 능력이 주어지면 자유롭게 독립해서 살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눈으로 볼 때 올바른 판단과 선택할 수 있어

 

롯은 겉이 번지르르한 소돔 땅을 선택했습니다. 롯의 세속적 판단과 욕심은 결국 판단을 흐리게 했던 것입니다. 롯은 불행하게도 그가 무엇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물질 우선의 시각으로 결정하는 잘못을 범합니다. 겉으로 화려한 소돔은 실제로는 죄가 범람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롯이 욕심을 가지고 한 선택은 고통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죄악이 판을 치는 소돔은 결국 하느님의 벌을 받아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보낸 천사들이 롯에게 당부했습니다. “이 성읍에 벌이 내릴 때 함께 휩쓸리지 않으려거든, 아내와 여기에 있는 두 딸을 데리고 어서 가시오.” 그런데도 롯은 망설입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이 성읍 밖으로 나갔습니다. 주님께서 롯에게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늘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퍼부으셨고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이 없어졌습니다. 롯이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재물도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롯이 모든 재산을 송두리째 잃고 도망치는 순간에 그의 아내는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재물과 땅이 못내 아쉬워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이제 롯이 가진 모든 것이 다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롯은 가장 믿었던 재물과 사랑하는 아내마저 죽게 되는 엄청난 상실을 경험합니다. 후회와 죄책감 그리고 재산과 아내를 빼앗아간 하느님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견디기 힘든 시간들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삼촌 아브라함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죄책감 혹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을까요? 그건 모를 일입니다.

 

롯은 재산이 사라지면서 결국 믿음도 잃게 됩니다. 롯은 초아르를 떠나 산으로 올라가서 자신의 두 딸과 함께 동굴에서 비참하게 살게 됩니다. 초아르에서 사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롯의 두 딸이 아버지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롯에게서 태어난 두 아들이 모압족, 암몬족의 조상들이 되어 아브라함의 자손들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보이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1900∼1944)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은 욕심으로 인해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 중요한 것은 잊고 영적인 눈으로 보지 못하면 삶의 고통이 가중됩니다. 마음의 눈, 영적인 눈으로 볼 때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창세기 13장, 18장-19장을 읽어보세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4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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