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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과의 계약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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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성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09 조회수651 추천수0 신고

성서의 세계 : 계약

 

 

하느님과 계약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 계약을 맺는다. 예컨대 취직할 때에는 고용 계약을, 집이나 토지를 사고 팔 때에는 매매 계약을, 재산을 맞바꿀 때에는 교환 계약을, 남에게서 돈 같은 것을 빌릴 때에는 대차 계약을 맺는다. ‘계약’은 관련되는 사람들이나 조직체들이 서로 지켜야 할 의무에 관하여 말이나 글 또는 행동으로 정하여두는 것을 뜻한다. 좀더 법적으로 표현하면, 일정한 법률 효과를 발생할 목적으로 둘 이상의 사람이 의사를 표시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계약이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지만, 직업상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계약을 자주 하지도 않고 그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계약’이라는 말을 듣는다. 사제는 성작을 들고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때에 하신 말씀을 되풀이한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미사 때만이 아니라 성서를 읽을 때에도 ‘계약’이라는 낱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사실 ‘계약’이야말로 성서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성서가 바로 이 낱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곧 ‘구약’은 ‘옛 계약’을, ‘신약’은 ‘새 계약’을 뜻한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에 ‘성서’라는 말을 붙이지만, 그리스 말이나 라틴 말, 또 현대의 서양 말에서는 그냥 ‘구약’과 ‘신약’이라는 표현만으로 각각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가리킨다.

 

이렇게 성서와 교회에서 ‘계약’이 자주 쓰이는 것을 보면서, 신자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신앙생활에서 집이나 토지를 사고 팔 때처럼 계약할 일이 있다는 말인가? 하느님과 도대체 무슨 계약을 맺는다는 말인가? 우리 나라에서는 주로 경제적인 의미로만 사용하기 때문에, 성서에 나오는 ‘계약’이라는 낱말 자체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 개신교에서는 ‘언약(言約)’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말로 약속함이나 그러한 약속을 뜻하는 ‘언약’은 불필요하게 ‘말’을 강조한다는 단점이 있다.

 

평화를 보장하는 계약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도 토지 같은 것을 사고 팔 때에 계약을 하고 매매 증서를 작성하였다(예레 32,9-12).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달리, 재산이나 노동 같은 것을 두고 약조하는 경제 활동을 ‘계약’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에게 ‘계약’은 평화를 목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구약성서의 사람들은 매우 다양하고 의미가 풍부한 계약을 맺으며 살아간다.

 

야곱은 식구들을 데리고 외삼촌 라반 집을 떠나 이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라반은 품삯을 제대로 지불하지도 않으면서 자기의 노동력만 이용하려 하고, 외사촌들은 자기들에게 돌아올 재산을 야곱이 차지해 버린다고 불평하는 것을 보고 도망쳐나온 것이다. 뒤를 쫓아간 라반은 결국 야곱과 계약을 맺는다(창세 31,43-54). 그 내용은 야곱이 라반의 딸들 곧 자기의 부인들을 잘 보살피며, 악의를 품고 서로의 경계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로 평화를 유지하며 사이 좋게 지내자는 계약이다.

 

계약은 구체적으로, 어길 경우에는 천벌을 받겠다는 맹세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맹세는 행동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짐승을 반으로 갈라놓고 계약 당사자들이 그 사이를 지나간다. 계약을 위반하면 그렇게 반쪽으로 잘리는 벌도 감수하겠다는 것을 드러내는 상징적 행동이다. 그래서 ‘계약을 맺다’를 ‘계약을 자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창세 15,7-11 참조).

 

그리고 맹세를 할 때에는, 저마다 자기가 섬기는 하느님이나 신을 증인으로 내세운다. 야곱과 라반의 경우에는 또 계약의 가시적인 증거로 돌무더기를 만들고, 계약을 확인하고 경축하는 뜻으로 음식을 함께 나눈다. 이 밖에 성서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정을 보여주는 요나단과 다윗(1사무 18,1-4), 반정(反正)을 꾀하는 여호야다 사제와 군대 지휘관들도 계약을 맺는다(2열왕 11,4-8).

 

이렇게 개인과 개인만이 아니라, 자기 씨족을 대표하는 아브라함 또는 이사악과 네겝 땅의 임금 아비멜렉이나(창세 21,22-32; 26,26-32) 이스라엘 백성과 기브온족처럼(여호 9,3-27), 종족들도 계약을 맺어 서로의 평화를 보장한다. 계약은 임금과 백성 사이에도 체결된다(2사무 3,12-21; 5,1-3; 2열왕 11,17). 또 옛날 이스라엘은 주변의 많은 나라와 때로는 평화롭게 때로는 적대적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선린을 도모하기 위한 국제 조약이 자주 체결된다. 여기에는 동등한 국가들이 맺는 이른바 ‘평등 조약’(1열왕 5,26; 15,19; 20,34; 에제 17,13-14), 그리고 종주국과 속국 또는 강대국과 약소국이 체결하는 ‘불평등 조약’이 있다(호세 12,2; 아모 1,9). 구약성서에서는 이러한 국가 사이의 조약도 계약을 뜻하는 ‘버리트’라는 똑같은 말로 표현한다.

 

하느님의 계약

 

성서의 계약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가장 놀랍고 결정적인 것은, 야훼님이 한 민족을 선택하시어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다는 사실이다.

 

 모세의 영도 아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인들은 시나이에서 모세의 중개로 야훼님과 계약을 맺는다. 근본 내용은, ‘야훼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야훼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이 시나이 계약으로 야훼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의 관계가 정립된다. 두 인격체 사이에 정립된 관계에서는 서로 지켜야 할 것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선택하고 구원해 주셨으며 앞으로도 자기들의 하느님으로서 당신의 계약을 성실히 지켜주실 하느님께 대하여 지켜야 할 것이 일차적으로 십계명이다(출애 20,1-17).

 

그런데 이스라엘인들의 수가 많아지고 생활이 복잡해짐에 따라 계약을 실생활에서 구체화하는 규정들도 많아진다. 이것이 ‘계약의 책’ 또는 ‘계약 법전’이라고도 불리는 출애굽기 20,22-23,33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더불어 이러한 추가 과정이 계속되어, 마침내 오경에 담긴 ‘율법’ 전체가 하느님과 체결된 계약의 법으로 선포된다. 그래서 율법은 변천하는 삶 속에서 계속하여 하느님, 또 그분과 맺은 계약에 충실하려는 이스라엘인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시나이 계약은 여러 가지 말과 행동으로 체결된다.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가리키는 기념 기둥 열둘을 세운 다음, 하느님께 제사를 바치고 희생제물의 피 절반을 제단 위에 붓는다. 이어서 모세가 ‘계약의 책’을 봉독하면, 백성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끝으로 모세는 나머지 피를 백성에게 뿌리며, “이것은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하고 선포한다(출애 24,3-11).

 

십계명의 처음 셋은 하느님께 대한 것이고, 나머지 일곱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율법 전체도 비슷하다. 하느님과 맺은 계약은 그분만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정립한다. 그래서 시나이 계약은 이스라엘의 종교는 물론, 사회·경제·군사·정치 등 그들의 개인적인 삶과 공동체적인 삶 전체를 관장하는 헌장이 된다.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법적 관계만이 아니라 도덕적인 관계까지 내포한다. 때문에 그뒤 이스라엘인들이 전례를 통하여 정기적으로 되새기게 되는 시나이 계약은,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이라는 존재의 바탕이 되고 또한 목적이 되기도 한다.

 

계약은 근본적으로 양쪽에 의무를 지우지만 한쪽의 의무만 강조되기도 한다. 시나이 계약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이른바 ‘다윗 계약’이 여기에 해당된다(2사무 23,5; 시편 89,3 등). 하느님께서는 다윗을 선택하시고 그에게 영원한 왕조를 약속하신다(2사무 7,1-17).

 

 이와 비슷하게 하느님은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의 후손들에게 영원한 사제직을 보장하는 “평화의 계약”을 맺어주신다(민수 25,10-13). 역사를 또 거슬러 올라가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후손과 땅을 약속하시며 “영원한 계약”을 맺어주신다(창세 15장; 17,1-14). 이 계약의 증표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할례를 받게 된다(사도 7,8). 이러한 계약들은(창세 9장의 ‘노아 계약’도 참조) 결국 어떤 법적 약조보다는 하느님의 무상적(無償的) 약속에 더 가깝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 가운데에는 기존의 계약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쪽의 의무가 더 강조되는 것도 있다. 이스라엘인들이 세겜에서 여호수아의 중개로 하느님과 맺는 계약(여호 24장), 유다 왕국의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할 때에 이 임금의 중개로 온 백성이 하느님과 맺는 계약이 여기에 속한다(2열왕 23,1-3). 유배 이후에는 에즈라의 주도 아래 아브라함 계약과 시나이 계약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의무를 재확인하는 계약이 체결된다(느헤 9-10장).

 

새 계약의 백성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에 당신의 피로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다고 말씀하신다(마태 26,28; 마르 14,24; 루가 22,20; 1고린 11,25). 이로써, 구약의 사람들이 그 많은 율법에도 야훼님의 참 백성이 될 수가 없어 예레미야가 예고한 “새 계약”이 마침내 이루어진다(예레 31,31-34).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피”는 시나이 계약 체결 때에 사용된 희생제물의 피와 함께, 당신께서 곧 맞이하시는 십자가 죽음을 가리킨다. 계약은 본디 관련 없는 사람들을 견고한 관계로 한데 묶어준다(야곱과 라반의 경우는 예외에 속한다). 예수님은 바로 죽음으로써 당신과 당신을 믿는 이들의 사이를 죽음도 가를 수 없는 밀접한 관계로 만드신다.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리시는 “새 계명”이 이 “새 계약”의 헌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새 계약의 백성이다.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사람들이다.

 

<임승필 요셉 신부님,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번역담당 총무, 경향잡지, 200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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