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어리석은 부자(루카 12,16-21 참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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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3 | 조회수4,276 | 추천수0 | |
[성서의 인물] 어리석은 부자(루가 12,16-21 참조)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얻게 되었다. 한해 동안 지은 농사가 너무나 잘되어 곡식이 넘쳐흘렀다.
"주인님, 소출이 너무 많아 창고가 모자랍니다. 어떻게 할까요?"
부자는 한참 궁리를 했다. 무언가를 안전하게 쌓아두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자가 재산을 쌓아둘 곳을 걱정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생각이다. 그러나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지 않고 쌓아두려고 하니까 쌓아둘 곳이 없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너무 많이 가져서 문제이고,어떤 사람은 너무 없어서 문제가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의 한 모퉁이에서는 계속 굶어 죽어가고 있는 반면에 어떤 곳은 농산물이 너무 많아서 처치 곤란이다. 인간은 본래 같이 나누어 먹고 함께 살도록 되어있다. 자기 생각만을 했기 때문에 저장할 곳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집에 보화가 많은 사람은 걱정이 많기 마련이다. 재물이 많은 사람은 대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집을 비워도 항상 걱정이 태산 같다. 어차피 땅 위에는 재물을 영원히 안전하게 쌓아둘 곳은 없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재물을 영원히 쌓아두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그러나 곧 그러한 노력이 결국 헛수고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것 외에는 없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고 더 가치 있고, 더 큰 경우가 많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서 확인되는 것만이 진리가 아니다. 보이지 않지만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진리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부자는 불행하게도 그런 깨달음을 갖지 못했다. 자신이 오랫동안 생각해서 고안해낸 방법은 고작 창고를 크게 짓는 것이었다.
"여봐라,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창고를 헐어 더 큰 창고를 지어라. 그리고 거기에다 곡식과 재산을 넣어두면 될 것 아니냐?"
부자는 잠자리에 들면서 재물과 곡식으로 가득 찬 창고를 생각을 하니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에게 중얼거렸다.
"내 영혼아, 많은 재산을 쌓아두었으니 이제 몇 년 동안은 걱정 없다. 이제부터는 먹고 마시고 즐겨보자."
그러나 하느님은 그날 밤 그 어리석은 부자의 영혼을 거두어 가셨다. 가장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인생이 영원한 줄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어리석은 자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려고 한다.
"당신들은 내일 당신의 생명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들의 생명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와 같다."(야고 4:14)
우리의 인생은 실로 안개와 같다. 해가 떠오르면 금새 사라져버리는 안개처럼 가볍고 허무한 것이 인생인 것이다.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너의 영혼이 너를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둔 재물과 곡식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아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 어렵게 모은 재산을 한푼도 못쓰고 눈을 감다니... 말도 안됩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얼마나 비참한 이야기인가?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결국 내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나에게 없어지고 말 것들이다. 단지 지금 나에게 맡겨져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이 진리를 모른다면 분명 어리석은 사람이다. 물질의 본질을 모르면서 물질을 위해서 살고 물질을 저장하려고 버둥댄다면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불쌍한 삶인 것이다.
어리석은 부자는 부지런하고 영리하며 출세한 사람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행복했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의 마음 속에 하느님이 없었고 오직 이 세상이 전부였다. 참 생명에 대한 인식과 깨달음도 없었다. 또한 그에게는 자신의 것을 나누어줄 이웃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장 어리석은 자라 할 수 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헐벗고 배고픈 사람들이 세상에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깊이 새겨볼 일이다. 우선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진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생은 유한하다는 사실이다. 이 진리를 깨달은 자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평화신문, 2002년 6월 9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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