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예수와 함께 처형된 강도들(루카 23, 39-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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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3 | 조회수5,930 | 추천수0 | |
[성서의 인물] 예수와 함께 처형된 강도들(루가 23, 39-43)
로마 병사들은 예수의 옷을 벗기고 십자가 위에 뉘어 대못을 박았다. 잠시 후 대못이 예수의 손목과 발등 위로 박혀졌다. 순간 예수의 얼굴은 일그러지면서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얼마 후 병사들은 여럿이 달려들어 예수가 달린 십자가를 똑바로 세웠다. 그리고 사형수인 죄수 두 사람도 십자가에 못박아 예수 좌우 편에 한 사람씩 세워놓았다.
예수는 죽음을 앞둔 고통 속에서도 십자가에 달려 조롱하고 욕을 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기도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를 못박은 병사들은 주사위를 던져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유다교 지도자들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쳐다보고 조롱을 했다.
"어이, 거기에 달려있는 예수,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살렸으니 정말 그리스도라면 어디 당신 자신도 한번 살려보시지 그래."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함께 예수를 놀리며 모욕을 했다.
병사들도 신 포도주를 적셔서 예수에게 주며 "네가 유다인의 왕이라면 자신이나 한번 살려보시지..." 하며 빈정거렸다. 그리고는 나무 팻말에다 "이 사람은 유다인의 왕 그리스도"라고 써서 십자가 위에 붙여 놓았다.
그런데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죄수 중 하나가 숨을 몰아 쉬며 예수를 모욕했다.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네가 그렇게 죽은 사람도 살리고 병도 고치고 여러 가지 일들을 했으면 지금 그런 기적을 베풀어서 너도 십자가에서 내려오고 우리도 죽지 않게 해 봐라. 당신도 살리고 우리도 살려보시오. 왜 대답이 없소?"
그러나 예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강도는 예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마치 그 강도는 자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것이 마치 예수 때문인 것처럼 자신의 울분을 쏟아내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 있는 강도가 듣다못해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보게, 하느님이 무섭지도 않나? 우리는 이렇게 나쁜 강도 짓을 하고 죄를 졌기 때문에 사형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내 옆에 계신 이분은 무고한 사람이네. 왜 자네는 저분에게 욕을 하고 그러나?"
그리고는 예수를 향해 공손한 태도로 말을 했다. "선생님, 선생님이 왕이 되어 오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때 예수께서 그 강도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당신에게 약속합니다. 오늘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이오."
"감사합니다. 정말 저를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옆에서 듣고있던 다른 강도는 코웃음을 치며 빈정거렸다.
"웃기고들 자빠졌네. 무슨 낙원은 낙원이야? 지금 이 십자가 위에서 죽어 가는 주제들이…."
예수님의 곁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한 그 강도는 죽기 바로 전에 구원을 받아 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느님은 회개하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구원받은 강도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무엇보다 자기가 죄인인지를 알아야 한다. 자기의 죄를 깨달을 때 회개할 수 있다. 회개한 강도는 같이 달려 있는 예수를 보며 마음이 변화되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향하여 욕하고 십자가에 못박고 채찍질하던 그 사람들을 향해서도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셨다.
이 강도는 그러한 예수의 모습을 보며 자기가 죄인임을 깨달았다. 또한 회개한 강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다. 이 강도는 간단한 고백을 주님께 했다. "예수님, 제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저를 기억해주십시오." 자기를 의탁한 이 믿음이 바로 그를 구원한 것이다. 구원은 바로 이런 것이다.
새는 죽을 때에 그 울음소리가 구슬퍼지고 사람은 죽음의 자리에 이르러 그 입의 말이 착해진다고 한다. 죽음은 모든 것을 무력화시킨다. 인간의 한계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죽음 또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인간의 순수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단순해진다. 이것은 결코 체념이 아니다. 어쩌면 참으로 위대한 자기 발견이다. 세상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는 것보다 더 귀한 깨달음이 또 있을까?
[평화신문, 2002년 7월 21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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