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동물] 성서 속의 동물들: 참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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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3 | 조회수3,942 | 추천수0 | |
성서 속의 동물들 : 참새
어느 겨울 아침의 일이다. 정원 끝에서 2마리의 제주 직박구리가 격하게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렸나 했었을 때 한 마리의 작은새가 날아와 유리문에 심하게 부딪혔다. 정원에 떨어진 것 같아 밖을 보자 동박새 한 마리가 있었다. 정원으로 나가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살짝 양손으로 잡아 들어올려 손바닥에 놓아도 발끝을 오무리고 불안해하며 목을 움추리고 반은 위를 향해 부리를 조금 열고 흰 동자도 집중 할 수 없이 멍해 있었다. 뇌출혈을 일으킨 것이다.
그대로 손바닥에서 손가락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자 동박새는 동그랗게 오무리고 있던 발을 펴고 주둥이를 다물고 눈을 깜박거리더니 일어나 그리 멀리는 날지 못하고 처마 끝에 매달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같은 동박새를 부르는“쯔이”라 소리를 내더니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때 나는 “아 하느님의 용서가 없었구나”라 생각하며 잘 알려져 있는 성구를 생각해 냈다. “참새 두 마리가 단돈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런 참새 한 마리도 너희의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태 10,29)
같은 비유가 루가 복음서에서는 “참새 다섯 마리가 단돈 두 푼에 팔리지 않느냐? 그런데 그런 참새 한 마리까지도 하느님께서는 잊지 않고 계신다.”(루가 12,6)로 되어있다. 한 아사리온으로 두마리이면 두 아사리온으로 4마리일 것이지만 이 경우에 1마리가 덤으로 되었다. 이것은 사람으로서는 ‘잡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작은 새들의 모습을 보고있으면 절대로 ‘잡기에는 부족한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머리를 다친 동박새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동박새(역주: 우리나라 동박새는 5cm 정도의 크기 새로 남부 해안 지방에 주로 분포하며, 동백꽃 주변에 살고 있다.)를 쫒은 제주직 박구리는 까마귀와 물까치처럼 육류를 먹는 새는 아니기 때문에 거의 동박새를 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단지 동박새도 제주 직박구리도 꽃의 벌레를 좋아한다. 정월 정원에는 겨우 1-2그루의 동백이 피어 있었던 것뿐인데 동박새는 먹이를 잡으러 온 것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제주직박구리와 벌레를 두고 싸우다가 일어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벌레가 적은 추운겨울에 일어난 일임에는 틀림없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모습으로 우리들을 즐겁게 해 주는 작은 새들의 세계에도 나름대로의 엄격함이 있고 지키지 않으면 안될 것이 있다. 참새처럼 마을에 살며 사람들 근처에 살고 있는 작은 새는 때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잡혀 먹히기도 하고 팔리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기에 살아가는 것도 필사적이다. 런던에 사는 박새는 주택에 배달되는 우유팩을 열고 우유를 마시는 것을 기억해, 곧바로 그 마을의 박새들이(역주: 폭설 등으로 인해 먹이를 구하러 사람들에게로 내려오는 박새는 민가 근처에도 많이 살고있다.) 그것을 배워 알고 있었다.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 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 주신다.”(마태 6,26)라고 쓰여있지만 새들도 여간 생활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최근 사람들이 살기 위한 개발이 진행되어 산림이 사라져가 새들의 보금자리가 줄어 많은 종류의 새가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 하느님께로부터 생명을 받은 새가 없어지면 인간의 힘으로는 그 종(種)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참새와 동박새처럼 작은 새도 하느님은 잊지 않으신다. 그것을 우리 인간이 멸종시킨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에서는 매년 5월 10일부터 1주간은 “새 사랑 주간”이다. 작은 새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임무임을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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