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동물] 성서 속의 동물들: 늑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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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3 | 조회수4,643 | 추천수0 | |
성서 속의 동물들 : 늑대
늑대는 세계각지 민화에 나온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북 아메리카까지 넓게 북반구에 분포하며 가축을 키우거나 사람과는 예로부터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늑대의 분포로 서남단으로 보지만 귀중한 양에게 해를 입히는 잔인한 동물로 알려져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양으로 박해하는 사람들을 늑대로 그리고 자신을 좋은 목자로 비유하고 있다.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은 마치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양순해야 한다.”(마태 10,16. 루가 10,3)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목자가 아닌 삯꾼은 양들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떼는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요한 10,11-12)
늑대의 잔인함을 부정한 고관으로 비유해 그 욕심을 위선자로 비유한 구절도 있다. “이 성읍 안에서 고관들은 짐승을 잡아 찢는 늑대 같아, 죄없는 피를 흘려 사람들을 죽이며 남의 재산을 털어 먹고 있다.”(에제 22,27) “귀하신 몸들은 성 안에서 사자처럼 으르렁거리고 판사들은 벌판을 주름잡는 늑대처럼 뼈도 안 남기고 사람을 씹어 삼킨다.”(스바 3,3)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나타나지마는 속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 있다.”(마태7,15)
늑대는 사자, 표범과 함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사자가 숲에서 뛰어 나와 사람들을 물어 죽입니다. 벌판을 쏘다니던 늑대가 덤벼들고 표범이 성읍 밖에서 노리다가 나오는 사람을 모두 잡아 갑니다”(예레 5,6)
이처럼 늑대의 잔인함과 탐욕도 바꾸어 보면 용감함과 민첩함에 익숙한 동물로 보여지고 있다. “표범보다고 날래고 저녁에 나오는 늑대보다도 사나운 말을 탄 기병들이 먼 곳으로부터 먹이를 찾아 덮치는 독수리같이”(하바 1,8)
이스라엘 12지파의 선조가 된 야곱의 아들들 중 유다는 젊은 사자로 비유하고 베냐민은 늑대로 비유하고 있다. “베냐민은 약탈하는 늑대라, 아침에는 그 움킨 것을 삼키고 저녁에는 잡은 것을 나누어 먹는다.”(창세 49,27) 베냐민족은 매우 용감한 부족이였던 것 같다. 내분에서 이스라엘 전 부족과 싸우게 되었을 때 베냐민족의 병사에 대해서. ‘그 군대에는 왼손잡이 정예부대 칠백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머리도 점호를 하니, 베냐민 지파를 빼고 칼을 찬 군인이 사십 만이나 되었다.”(판관 20,16)로 표현되어지고 있다.
성서에 없지만 로마 시조 로물루스 레물루스 형제가 늑대에 의해 성장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며 로마에는 늑대 젓을 먹고 있는 어린형제 모습의 동상도 있다. 그러나 플루타크 영웅전의 젊은이는 라틴어에서 숫늑대를 lupus, 암늑대를 lupa라 하지만 매춘여성을 루파라 말하며, 로무루스 형제를 키운 여성도, 그러한 여성이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제국의 시조 같은 자의 경력으로 어울리지 않기에 루파를 동물로 암늑대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담을 놓고 늑대는 악함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키워본 적이 있는 사람은 대개 늑대는 키우는 주인에게는 충실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예언자 이사야는 오실 주님의 평화의 날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늑대가 새끼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수염소와 함께 딩굴며 새끼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이사 11,6)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뜯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고 살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나 서로 해치고 죽이는 일이 없으리라. 야훼의 말씀이시다.”(이사 6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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