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문화] 법적 지위를 누렸던 유다인 노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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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7 | 조회수3,813 | 추천수0 | |
[성서의 풍속] 법적 지위를 누렸던 유다인 노예
- '람세스 2세의 노예', 고대 이집트 제19왕조, 누비아 아부심벨 신전, 이집트. 자료제공=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감독).
'히브리 노예의 합창'은 베르디(Giuseppe Verdi)의 초기 오페라 '나부코'(Nabucco)에 나오는 유명한 합창곡이다. '나부코'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 2세를 가리킨다.
'히브리 노예의 합창'은 유다인들이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노역하면서 잃어버린 조국,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합창곡이다. 유다인들이 사슬에 묶여 노역을 하면서 유명한 노예들의 합창을 부르는 장면은 오페라의 압권이다.
그런데 바빌론 유배지의 유다인들은 포로였지만 실제로는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집을 짓고 농사도 지을 수 있었고,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며 공동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빌론이 멸망한 후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가 유다인 노예들의 해방을 알리는 칙령을 내렸을 때 상당수 유다인들은 바빌론에 그대로 남아 있기를 원했다. 유다인들 중에서 야훼 신앙에 특별히 충실한 사람들과 고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만 본국으로 돌아갔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노예란 자유가 없이 주인의 지배 밑에 있는 비천한 지위의 사람을 의미하는 경멸적 단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다인 노예들은 일반적 생각과 다르게 비참하지 않았고 나름대로 법률적 지위도 지녔다.
그래서 주인도 유다인 노예를 함부로 다룰 수 없었고 노예에게 상해를 입혔을 때는 주인이 처벌을 받아야 했다(출애 21장 참조).
유다인이 노예가 되는 경우는 대개 절도를 저질렀을 때, 율법대로 도둑이 자신이 훔친 것을 네 배로 배상하지 못할 때였다(출애 21,37 참조). 또한 스스로 살림이 옹색하여 노예가 되기를 원하는 이도 있었다(레위 25,39 참조).
유다인 여자가 성인이 되기 전에 노예로 팔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어린 여자 노예들은 자신을 산 주인이나 그 아들과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 관습이었다.
유다인 사회의 노예들은 유다인 노예와 외국인 노예로 나뉘어졌다. 실제로 전쟁이나 노예 시장에서 팔려온 외국 노예들과 유다인 노예들은 법적 지위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외국인 노예들은 자손 대대로 노예 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유다인 노예들은 대개 6년이 지나면 보상 없이 자유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출애 21,2 참조). 이처럼 유다인 노예들은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에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신명 15,12-18참조).
그러나 노예 생활이 끝났는데도 먹고 살 길이 막막하거나 자기 처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몸이 되어 혼자 나가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하면, 주인은 그를 하느님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의 귓바퀴를 문짝이나 문설주에 대고 송곳으로 뚫어서 죽을 때까지 평생 노예로 남을 수 있게 했다.
주인이 노예를 결혼시켜 자녀를 낳게 되면 노예가 자유인이 되었을 때 아내와 자녀는 주인의 소유이기 때문에 주인집에서 자기 혼자 나가야 했다(출애 21,1-11 참조).
일반적으로 유다인 노예들은 주인의 발을 씻어주거나 신발을 신겨주는 행위 등 명예롭지 못한 노동을 하지 않았다. 또 법률적으로도 많은 것들이 보장되었다.
예를 들면 유다인 노예는 주인처럼 좋은 음식과 의복 그리고 잠자리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그래서 '히브리인 노예를 산 사람은 상전을 산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말이 있기도 할 정도였다. 그리고 유다인 노예들은 자신의 재산을 소유하고 땅을 살 수도 있었다.
이방인 노예들은 모든 수입이 주인 몫이 되었지만 유다인 노예들은 돈을 벌어서 스스로 노예 신분을 벗어나기도 했다. 또한 유다인 노예들은 정식 가족은 아니었지만 주인집 딸이나 아들과 결혼해서 가족 대접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유다인 밑에 있었던 노예(종, 하인)들은 한 인간으로서 인격적 대우를 충분히 받았다.
그래서 유다인 노예들은 미리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평화신문, 2004년 1월 1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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