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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서의 세계: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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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3,588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소금

 

 

사해(死海) - 소금 바다

 

성서의 땅 가나안은 전통적으로 요르단 강이 동쪽 경계를 이룬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이 강은 상류에서 주변의 여러 작은 개천들과 함께 갈릴래아 호수로 모아진다. 그리고 직선 거리로는 100여 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그것의 세 배나 되는 거리를 굽이굽이 흘러 마침내 사해로 들어간다.

 

이 사해는 자연이 이루어놓은 가장 큰 놀라움 가운데 하나이다. 해발 750미터 산악 지방에 위치한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유다 광야를 가로지르면서 가파르게 내려가면, 유명한 오아시스 도시인 예리고가 나온다. 예리고에서 다시 남쪽으로 조금 가면, 특히 우리 나라와 같은 곳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희귀한 경치가 시작된다. 생물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니 존재할 수조차 없는 것처럼 메마르고 삭막한 풍광 한가운데에 사해가 자리잡고 있다. 이 호수는 길이가 85킬로미터, 가장 넓은 곳이 15.7킬로미터, 가장 깊은 곳이 491미터로, 조그마한 가나안 땅과 비교하면 매우 큰 편이다. 거기에다 지중해보다 약 400미터나 더 낮고, 염분이 20-26%로 바다보다 여섯 배 정도가 더 높다. 그러니 그 둘레에 동물이건 식물이건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물의 깊이가 낮아지는 남쪽 끝에는 ’소금 기둥’들이 삐죽삐죽 때로는 기이한 모습으로 솟아나와(창세 19,26 참조) 괴이한 풍경과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정말 ’죽음의 바다’라는 ’사해(死海)’가 이 호수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다. 그러나 이 명칭은 기원후 2세기부터서야 쓰이기 시작하였다. 구약성서에서는, 서쪽의 지중해에 대비시키는 의미에서 "동쪽 바다"(에제 47,18; 요엘 2,20; 즈가 14,8), 광야 지방에 있다고 하여 "아라바(= 광야) 바다"라고 불렀다(신명 3,17; 4,49; 여호 12,3; 2열왕 14,25). 그러나 본디 이름은 "소금 바다"이다(창세 14,3; 민수 34,3; 신명 3,17; 여호 3,16; 15,5 등).

 

이스라엘인들의 땅에는 이렇게 "소금 바다"가 있었다. 그래서 이 "바다"가 그들의 식생활, 그리고 소금과 관련된 생각과 언어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소금과 식생활

 

욥은 "간이 맞지 않은 것을 소금 없이 어찌 먹겠는가?" 하고 묻는다(욥 6,6). 집회서의 저자는 소금을 인간 생명에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집회 39,26). 이처럼 소금은 달리 강조할 필요도 없이 식생활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도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도 얼마 전까지 소금이 국가의 전매(專賣) 물품이었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듯이, 소금이 흔하게 된 것은 별로 오래되지 않는다(옛날 이스라엘에서도 적어도 한때, 특히 식민 통치 시대에는 소금세와 염전세가 있었다: 1마카 10,29; 11,35). 사실 옛날에는 소금이 귀하였고 매우 귀중하게 취급되었다. ’봉급’을 영어로 샐러리(salary)라고 한다. 이는 라틴 말 살라리움(salarium)에서 온 용어인데, 그 첫 음절인 살(sal)은 라틴 말에서 ’소금’을 뜻한다. 로마 제국에서는 관리나 군인에게 봉급을 소금으로 지불하던 때가 있었는데, 나중에 그 소금 값으로 주던 급여를 살라리움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소금을 주고 노예를 사기도 하였다. 이렇게 화폐처럼 사용되기도 한 소금은 지방이나 나라 사이의 주요 교역 물품이기도 하였다.

 

이스라엘 땅에는 다행히 "소금 바다"가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소금 성읍"과(여호 15,62) "소금 골짜기"가 있었다(2사무 8,13; 2열왕 14,7; 1역대 18,12; 2역대 25,11; 시편 60,2). 이는 가나안 땅에서 일찍부터 "소금 바다"를 중심으로 소금을 채취하거나 제조하여 유통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인들이 다른 민족들과는 달리 소금을 상대적으로 풍족하게 섭취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음식과 별도로 소금을 섭취할 필요가 없다. 이와는 달리 이스라엘인들은 빵을 만들 때에 약간의 소금을 넣고, 흔히 따로 먹기도 하였다. 그래서 유다인들에게는 "소금 없는 식사는 식사가 아니다."라는 속담이 내려오기도 한다.

 

 

소금과 전례

 

인간은 아주 옛날부터 신(神) 또는 하느님께 제물을 바쳐왔다. 제물은 각 민족이 어떤 형태의 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달랐다.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농경 사회를 이루었으므로 곡물로 된 음식이 주된 제물이었다. 이스라엘 땅에도 곡식제물이 있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목축을 많이 하였으므로 집짐승이 주된 제물이었다. 이 경우에는 음식으로 만들지 않고 그것을 불에 태움으로써, 연기의 형태로 희생제물을 바쳤다.

 

옛날 사람들은 제물을 신이나 하느님께서 드시는 일종의 음식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음식은 간이 맞아야 한다(앞에서 인용한 욥 6,6 참조).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제사에도 소금을 사용하였다.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도 그렇게 하였다. 반면에, 이스라엘에 여러 가지로 영향을 끼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그러한 관습을 볼 수 없다.

 

이스라엘에서는 소금이 들지 않은 곡식제물은 바칠 수 없었다(레위 3,13). 모세 오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에제키엘서 43장 24절에 따르면, 불에 태워 바치는 "번제물" 위에도 소금을 뿌려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 앞으로 피워 올리는 향료도 소금을 쳐서 만들었다(출애 30,35). 이렇게 전례에 쓰이는 소금의 양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성전 안뜰 북쪽에는 소금을 저장해 두는 방도 따로 있었다. 유다의 어떤 전통에 따르면, 성전에서 쓰이는 소금은 옛 소돔 부근에서 추출한 것으로 특별히 짠 사해 소금만을 쓰게 되어있었다. 유다인들의 재정(財政)이 어려웠을 때에, 당시 유다 땅을 식민지로 다스리던 페르시아 왕국에서는 성전에서 필요로 하는 여러 물자를 대어주었는데, 거기에는 소금도 들어있었다(에즈 6,9; 7,22).

 

이렇게 소금을 전례에도 쓰는 것은 단순히 예물과 제물의 맛을 돋우려는 것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소금이 음식의 간을 맞추고 음식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정화하는 기능도 지녔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성전에서 쓰이는 향료의 제조 규정에는 이런 말이 들어있다. "소금을 쳐서 깨끗하고 거룩한 것(= 향료)을 만들어라"(출애 30,35). 엘리사가 물을 ’되살렸다’는 이야기도 소금의 정화와 치료 효과를 반영한다(2열왕 2,21). 소금은 더 나아가서 강화(强化)하는 힘을 지녔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을 자른 다음에 물로 몸을 씻고 소금으로 문질러주었다(에제 16,4).

 

 

소금 - 생명과 죽음

 

이스라엘인들은 소금의 양면성도 알고 있었다. 소금은 위험성과 악성(惡性)도 지님을, 소금이 과하면 죽음까지 불러옴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소금 바다" 곧 사해나, 서리가 내린 것처럼 소금이 뿌려진(집회 43,19 참조) 그 부근의 "소금 땅"을(욥 39,6; 시편 107,34; 예레 17,6) 한번 보거나 그것에 대해서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그래서 소금은 한쪽으로는 생명의 유지와 강화를 뜻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황량과 황폐와 폐허, 불모와 죽음, 그리고 저주를 가리키게 된다(신명 29,22; 집회 39,23; 스바 2,9). 아비멜렉이 세겜을 함락한 다음에 그곳을 파괴하고 소금을 뿌린 것은 소금의 이러한 부정적 의미를 드러낸다(판관 9,45).

 

이러한 소금의 이중성은 새 성전과 새 땅에 대한 에제키엘의 환시에도 잘 드러난다. 새 성전에서 ’생명수’가 나와 점차 큰 강을 이루고서는(묵시 22,1-2의 "생명수의 강"도 참조), 사해로 흘러 들어가서 그 물을 ’되살린다’. 그리하여 그 강과 "소금 바다"와 그 둘레에 온갖 동식물들이 생겨나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러나 사해의 "늪과 웅덩이 물"은 소금을 얻을 수 있도록 그대로 남는다(에제 47,1-12).

 

 

세상의 소금

 

소금이 음식의 부패를 막고(바룩 6,27) 맛을 내며, 생명을 지속시키고 강화하기 때문에, 그것을 함께 먹음은 유대감, 그리고 상호 성실성을 뜻한다(에즈 4,14 참조). 이러한 생각에서 "소금 계약"이라는 표현이 나온다(민수 18,19; 2역대 13,5). 이스라엘인들도 그리스인이나 아랍인들처럼 계약을 맺을 때에 실제로 소금을 나누어 먹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기에서 "소금"은 계약으로 성립된 관계의 지속성과 변치 않는 충실성을 가리킨다. 그래서 "소금 계약"은 영원한 계약을 의미한다. 레위기 2장 13절에 나오는 "계약의 소금"은, 제물에 소금을 치면서 하느님과 맺은 영원한 계약을 상기한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소금의 이러한 의미들을 담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그 소금을 짜게 하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마르 9,50. 그리고 루가 14,34-35도 참조). 여기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이어진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 5,13).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이 세상에서,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지를 가리키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 말씀에는 경고의 뜻도 담겨있다.

 

[경향잡지, 2000년 4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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