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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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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06 조회수3,062 추천수0

[정영식 신부의 신약 성경 읽기] 23.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바오로 사도의 편지 중에는 옥중 서간(감옥에서 쓴 편지)이 두 편 있다. 하나는 필레몬에게 보내는 서간이고 또 하나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간이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내용이 바로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이다.

 

필레몬은 누구일까. 바오로 사도는 오늘날 터키 지방의 골로사이라는 곳에 전교를 한 일이 있다. 바오로 사도는 그 곳에서 교회를 세우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서 공동체를 이끌어갈 공소회장을 한 명 임명했다. 그 공소회장이 바로 필레몬이다.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은 바로 공소회장에게 보낸 서간인 셈이다.

 

그럼 바오로 사도는 필레몬 공소회장에게 어떤 내용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썼을까.

 

당시에는 노예제도가 있었던 시절이었다. 필레몬 공소회장님 댁에도 노예가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필레몬이 상당한 재력가 혹은 명문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노예 중 오네시모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노예가 그만 필레몬의 금품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오네시모스가 왜 달아났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 서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필레몬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기 전에는 노예를 약간은 학대를 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탈출에 성공한 노예는 또 다른 고민에 직면한다. 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노예의 몸에는 노예임을 알리는 문신 같은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런 몸으로 길거리를 다니다간 체포돼 사형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노예는 고민했다. “어디로 갈까….” 노예는 자신의 주인(필레몬)집에 머물며 감동적인 설교를 하던 바오로 사도를 기억해 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바오로 사도나 한번 찾아가 보자. 바오로 사도처럼 인자한 분이라면 자신을 받아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후 노예는 바오로 사도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소문을 듣는다.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 있다는 것이다. 노예는 체포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바오로 사도를 찾아가 면회를 한다. 그리고 옥바라지를 했다. 죽음에 임박한 바오로는 감옥에서 이 노예에게 예비신자 교리를 가르쳐 세례를 베푼다.

 

세례를 주고 난 이후 바오로 사도는 고민에 빠졌다. 노예는 어차피 주인이 풀어주어야 자유의 몸이 되는 법. 자신이 죽으면 노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목숨이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노예에게 편지 한 장을 써 주며 주인에게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 그 편지가 바로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이다. 다급하게 써서 주다보니 분량이 1장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은 성경 중에서 제일 짧은 서간이다. 내용을 보자.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필레 1, 10~12)

 

지금 노예를 돌려 보내는 그것은 내 심장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가 노예 오네시모스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는 “그가 그대에게 손실을 입혔거나 빚을 진 것이 있거든 내 앞으로 계산하십시오. 나 바오로가 이 말을 직접 씁니다. 내가 갚겠습니다”(필레 1, 18~19) 라고 말할 정도다.

 

노예는 이 편지를 들고 주인(필레몬)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이후 노예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필레몬의 환대를 받으며 행복한 여생을 보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을 읽을 때마다 ‘소유’에 대해 묵상하게 된다. 바오로 사도는 필레몬에게 “그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필레 1, 15) 라고 말한다. 내가 지금 잃은 것은 잃은 것이 아니고, 얻은 것은 얻은 것이 아니다.

 

주님의 생애는 그렇게도 철저한 나눔의 생애로 부서졌지만, 우리는 어찌 이리 소유를 위해서만 숨이 찬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가져 온 것이 없고 아무것도 가져갈 것 없는 순례자인 우리가 이기와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잠시 빌려 받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가톨릭신문, 2007년 6월 17일,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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