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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사무엘 상권: 하느님을 두려워하여야 - 정치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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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3 조회수2,917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구약] 사무엘 상권 : 하느님을 두려워하여야 - 정치가의 길

 

 

이스라엘 백성은 유일한 왕이신 하느님 아래 자유로이 살고 있었다. 이웃 국가와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던 백성들에게 하느님께서는 필요한 지도자들(판관)을 선택하여 주셨지만,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 안정이 결여되었었다. 사막을 방랑하는 동안 움직이는 계약궤 안에서만 머물던 하느님의 지혜는 “안식처”(집회 24,7)를 찾고 있었다. 일시적인 지도자들을 대신하는 세습적인 왕들은 정복의 시기가 지난 후 백성들의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터닦기의 수단이었다. 그래서 판관들의 일시적인 중재를 대신하는 왕과 하느님 사이에는 더욱더 본질적이고 친밀한 일치가 필요했다. 하느님과 기름부음을 받은 왕 사이의 끊임없는 “마음의 일치”가 백성들이 갈망해 오던 안정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왕들의 역사에 관한 첫 두 권은 사무엘서라 불린다. 사무엘이 쓴 책이 아니라 사무엘이 그 시기의 정신적인 지주였기 때문이다. 사무엘의 탄생에서 우리는 완전히 분열 상태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발견한다. 정치적으로 그들의 자유와 독립은 불레셋 사람들로부터 위협받고 있었다. 맨손에다 분열된 백성들로서는 적을 당해낼 수 없었다. 정신적으로는 더 나쁜 상태였다. 늙고 힘없는 사제 엘리와 그의 사악한 아들들 아래서 사제직은 타락일로를 걸었다. 결국 피할 수 없는 파국을 맞았으니, 불레셋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3만 명이 죽고 야훼의 궤마저 적의 수중에 넘어가버렸다. 하느님의 영광이 이스라엘로부터 떠난 것이다(4,22).

 

사제 엘리는 그 소식을 듣고 넘어져 목이 부러졌다. 성서는 이 사제가 나이 많다는 것을 기술(4,13-18)하려는 것이 아니라, 옛 질서가 물러가고 바야흐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루가 복음에서 “저는 늙은이입니다…”(1,18)라고 말한 사제 즈가리야가 벙어리가 되고,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라고 말한 젊은 처녀 마리아가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게 된다는 것을 상기하여야 한다.

 

이 루가 복음 1장과 사무엘 상권 앞부분 사이의 유사성은 사무엘의 탄생에서 더욱 감동적으로 드러난다. 구원의 역사를 통해서 보면 새 시대의 여명은 항상 하느님 자비의 새로운 계시에 의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거룩한 여인이 “구원의 문”처럼 그 맨 앞에 서있고, 그 문을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이가 역사의 무대에 들어서는 것이다. 사무엘도 이사악처럼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태어났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자신의 기도에서 “여종”이란 핵심적인 낱말로 주님께 가까이 다가간다. 괴로움과 비탄에서 비롯된 기도였지만 그녀는 이미 하느님의 자비를 확신하고 있다 : “그 얼굴에는 어느덧 수심이 걷히었다”(1,18).

 

“야훼께 빌어서 얻은 아기”라는 뜻의 사무엘을 낳은 한나는 매우 아름다운 감사와 찬양의 노래(2,1-10)를 불렀다. 이는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 : 루가 1,46-55)로 다시 반복되고, 두 어머니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이 힘으로써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기 비하 즉 희생적인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이해한다.

 

석녀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는 사무엘의 삶을 통하여 구원 활동을 계속하신다. 사무엘은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는 하느님 종의 훌륭한 모범이다. 그는 구세주의 겸손한 선구자로서 다른 사람을 높이고 자신은 낮춰지기를 원했던 세례자 요한과 같은 인물이다. 이스라엘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던 판관으로서 자신의 최소한의 위치와 영향력에 괘념치 않고 백성의 요구를 따른다.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그만큼 잘 생긴 사람이 없을 만큼 끼끗하게 잘 생긴 젊은이”(9,2)였던 사울이 백성들의 열의로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되었다. 본래 훌륭하고 용감했던 그는 곧 그의 주위로 백성들을 규합했고, 처음에는 그를 경멸했던 사람들에게까지 아량을 베풀어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11,13-15). 그러나 사울은 사무엘이 지적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실패하고 말았다. 사무엘과 다윗과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성심껏 사랑했음에도 그에게는 한 가지 사실 즉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 부족하였다. 그의 성격은 까다롭고 변덕스러워졌다. 한 번은 사제를 호출했다가 곧 무시해 버렸고(14,18-19), 나중에는 모든 사제들을 살해했다(22,18). 제사를 지내려고 사무엘을 기다리다 마지막 순간에 인내심을 잃고 계명을 어기면서 자신이 봉헌해 버렸다(13,8-10). 또한 미신 행위들을 금지시켜 놓고는 나중에 스스로가 그것을 어기고 말았다(28장). 말하자면 사울은 타고난 미덕과 재능이 있었지만 참 믿음이 부족하여(그가 얻은 것들은 모두 거저 주어진 것이었다), 그것들을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다. 결과로 그의 성격은 순식간에 타락하고 만다. 아들 요나단과, 한때 사랑했던 다윗의 성공에 질투를 느끼고 그것이 마음을 좀먹어 그를 비참하게 만들고 분노를 일으켰다. 결국 좌절과 깊은 상처를 입었고, 자신의 칼에 죽을 때까지 우울과 증오의 심연에 깊이 빠져들었던 것이다. 뉴먼은 말한다 : “불신의 마음은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유다의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울의 딸 미갈은 야훼의 궤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그 앞에서 춤추던 남편 다윗을 보고 말했다. “제 가문의 남자들은 당신보다 훨씬 더 위엄있게 보였습니다. 손이나 발을 결코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대답했다. “당신의 말이 옳소. 사울의 자식들은 자신의 명예만을 구하였소. 그러나 나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이라면 내 명예 따위는 상관하지 않소”(2사무 6,20-23 참조).

 

사울과 다윗의 본질적인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윗은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 속에 살았고, 그 이름대로 “야훼의 마음에 드는 사람”(13,14)이었다. 그는 백성을 사랑하는 착한 목자였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훌륭한 시인이었다. 사울처럼 멋있는 외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하느님은 한 인간을 볼 때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속마음을 들여다보신다(16,7).

 

사무엘이 기름을 붓자 “야훼의 영이 다윗에게 내려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러 있었다”(16,11-13). 지금까지 판관들과 사울에게 야훼의 영이 내렸다고 말했지만, 그들 중 누구에게라도 “그날부터 줄곧”이라고 표현한 적은 없었다. 하느님의 지혜가 다윗에게서 “안식처”를 찾은 것이다. 다윗을 통해 하느님과 왕 사이의 견고하고 끊임없는 유대가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여기서 다윗은 이사야가 말하는 구세주 같은 왕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난다…”(11,1).

 

소년 다윗의 삶에는 그리스도와 연관되는 여러 특정들이 보이는데, 특히 골리앗과의 싸움(17장)에서 드러난다. 이스라엘은 이 거인의 선성 모독 발언에 감히 대응조차 못했다. 그때 돌팔매끈과 막대기 하나, 돌맹이를 든 어린 다윗이 최신예 장비(17,3)를 갖춘 골리앗을 격파해 버린 것이다. 여기서 십자가로 사탄의 세력을 꺾으신 분, 그리스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의 징표는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에 있다(18,20). 사울의 후계자였던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18,3) 아껴 우정을 단념하기보다는 차라리 아버지에게 버림받기를 원하였다. 왕자의 겉옷과 칼과 창과 허리띠까지 벗어줌으로써 자신의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친구의 자비에 완전히 맡겼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그분의 우정론을 알려주신다 :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너희는 나의 벗이다(요한 15,13-15).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다윗보다 더 많은 우정을 실천했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었다. 벗들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신 것이다. (Pathways in Scripture에서 강동성 편역)

 

[경향잡지, 1988년 9월호, 다마수스 빈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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