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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성탄] 주님 성탄 대축일 전례의 기원과 거행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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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07 조회수3,870 추천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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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성탄 대축일 전례의 기원과 거행의 뜻


하늘에서 큰 빛이 내려오셨도다

 

 

1. 들어가는 말

 

전례 역사를 보면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를 해마다 거행하는 관습이 굳어진 다음에야 주님의 탄생과 관련된 축제들이 발전되었다. 서방교회에서는 성탄(과 공현) 시기가 이루어진 다음에 그 준비 기간으로서 대림시기가 생겨났다. 이 시기들을 아우르는 성탄 주기는 전례주년의 두 번째 기둥으로서 파스카 주기와 함께 전례주년을 확정한다. 현재 성탄시기는 예수 성탄 대축일 제1저녁기도로 시작하고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주일에 끝난다(「전례력과 축일표에 관한 일반 지침」, 33-38항 참조). 성탄 축제는 파스카 축제처럼 근본적으로 구원의 신비를 기념하지만, 거행 내용으로는 특별히 강생의 신비에 초점을 맞춘다.

 

 

2. 성탄 축제의 기원

 

성탄 축제는 언제부터 거행했을까? 주님의 탄생을 기념했다는 가장 오래된 증거는 로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354년에 만들어진 F.D. 필로칼루스 달력에는 “로마 주교 기록”과 “순교자 기록” 두 가지 목록이 들어있다. 그런데 전례력의 초안이라고 할 수 있는 “순교자 기록”에는 로마 순교자 24명에 대한 이름과 묘지(성당)에 대한 정보가 실려있는데 맨 앞에 그리스도 탄생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12월 25일, 그리스도,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심(viii Kal Ian. Natus Christus in Bethleem Iudeae)”.

 

이것이 우리가 알 수 있는 성탄 축제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이 연대기의 가장 오래된 본문은 33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므로 로마에서는 이미 4세기 전반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12월 25일로 보고 기념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그리스도 탄생 기록이 맨 앞에 나오므로, 로마에서는 성탄에 전례력이 시작된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젤라시오 전례서와 그레고리오 전례서와 같은 문헌들도 이 전례력 체계를 따른다.

 

그렇다면 왜 성탄 축제가 생겨났을까? 왜 예수 성탄 대축일은 12월 25일인가? 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싣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정확한 날짜는 말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성탄의 기원을 호교론과 종교사 관점에서 생각한다. 성탄이 12월 25일로 선택된 이유는 로마에 있었던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 숭배와 관련이 있다.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274년 ‘무적의 태양신’(어두움을 정복한 신, 미트라)을 로마에 들여와 로마 제국의 신으로 선언하였다. 황제는 거대한 태양신 신전을 세우고 특별 사제단을 임명하였으며 태양이 ‘커가기’ 시작하는 동짓날인 12월 25일을 국경일로 삼았다.

 

이 이교 축제를 거슬러 로마 교회는 12월 25일을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날로 정하여 경축하고자 하였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벌써 주 그리스도께서 참된 빛이시며 태양이시라는 믿음에 익숙했다. 그분은 “정의의 태양”(말라 3,20, 대중 라틴말 성서는 4,2)이시고 “세상의 빛”(요한 8,12)이시며 “구원의 태양”(루가 1,78)이시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대 세계에서 태양에게 주었던 모든 찬미의 속성들을 그리스도께 차츰 적용하였다. 그분은 “우리의 새로운 태양”(암브로시오 성인), 한마디로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주시는 “구원의 태양”이셨던 것이다. 교회 사목자들의 열성스런 사목 정책과 황제들의 지원으로 성탄절은 이교도 숭배의식을 물리치고 신자들을 보호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성탄 축제의 제정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혼합주의 정책에도 잘 맞았다. 실제로 황제 자신이 성탄 축제일 제정에 관여했을 가능성도 있다.

 

나아가 성탄 축제는 그리스도론 논쟁과 함께 강생의 신비 안에서 믿음을 확인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더욱 발전되었다. 이는 로마에서 생겨난 성탄 축제가 그리스도교 세계 전체에 빠르게 확산된 사실을 설명한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아리우스파 주장을 단죄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사람이며 하느님이심을 강조하였다. 성탄 축제는 그리스도의 이러한 두 본성에 대한 근본 진리를 전례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이런 뜻에서 성탄 축제를 “이념 축제”라고 일컫는 사람도 있다.

 

 

3. 예수 성탄 대축일에 드리는 세 미사의 기원

 

로마 교회는 예수 성탄 대축일에 전야 저녁미사 외에 세 대의 미사를 드린다. 중세에 위령의 날에 미사를 세 번 드리는 풍습은 갈리아에서 시작되었지만, 성탄 대축일에 미사를 세 번 드리는 것은 고대 로마 교회의 고유한 관습이었다.

 

12월 24일에는 성모 대성당에서, 밤에는 구유 경당에서, 새벽에는 성 아나스타시아 성당에서, 낮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전례를 거행하였다(그레고리오/아드리아노 전례서 609).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이 말하는 세 대의 미사는 벌써부터 있었던 관습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든 사제가 세 번 미사를 드렸다는 뜻이 아니라 교황 자신이 세 번에 걸쳐 장엄한 ‘순회 미사(Missa stationalis)’를 거행하였음을 말한다. 전례에서 ‘순회(statio)’란 거행을 위한 모임이나 회중을 뜻하며, 보통 행렬과 미사를 포함한다. ‘순회 미사’는 로마 전례의 특징으로서, 교황이 성직자들과 교우들과 함께 정해진 날에 도시의 지정된 성당(순회 성당)에서 드리는 미사를 말한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이 ‘순회 미사’ 체계를 정리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로마 미사 전례서』에 이 ‘순회’가 표시되어 있었다.

 

1) 낮미사: 성 대 레오 교황 시대까지 로마 교회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낮미사 하나만을 거행하였다. 이 미사는 아침나절에 드렸고, 요한복음 서문을 읽었는데, 로마에서는 초기부터 성탄 거행 때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요한 1,14)라는 구절을 주제로 삼았다. 11세기부터는 이 미사를 성모 대성당에서 거행하였다.

 

2) 밤미사: 로마에서 성탄 대축일에 밤미사를 거행하는 전통은 아마도 5세기에 나타난 것 같다. 예루살렘 전례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는 5세기 초에 공현 축일(실제로는 동방의 성탄 축제)을 지내면서 성대한 밤 전례를 거행했는데, 여기에는 베들레헴 순례가 들어있었다(『에테리아 여행기』). 베들레헴에서 한밤중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세운 대성당 안에 있는 성탄 동굴에서 미사를 거행하고, 교우들은 새벽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잠깐 쉰 다음 두 번째 미사에 참여했다. 이 거행을 로마가 본받은 것으로 보인다.

 

로마 교회는 성모 대성당 안에 베들레헴 동굴 경당을 본떠 측면 경당을 만들어 ‘구유 경당’이라고 불렀는데 성탄 밤 예식은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예식이 구유 경당에서 이루어졌고 구유의 표지가 있었기 때문에 밤미사는 교우들의 정서에 맞게 다듬어졌다. 그 결과 밤미사에는 성탄에 관련된 역사 사건들, 천사, 목동, 구유에 계신 아기에 관한 복음이 선택되었다.

 

3) 새벽미사: 마지막으로 생긴 미사는 새벽미사이다. 6세기에 교황은 성 아나스타시아 성당에서 두 번째 성탄 미사를 드렸다.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로마 팔라티노 언덕에 있는 ‘아나스타시아 성당(titulus Anasta-siae)’ 미사와 관련이 있다.

 

비잔틴 통치 시대에 이 성당 가까운 곳에 비잔틴 궁전이 있었고, 비잔틴 관리들은 이 성당을 궁정 성당으로 만들었다. 이날 그들은 이 성당에서 비잔틴에서 깊은 공경을 받던 시르미움의 순교자인 아나스타시아 성녀를 공경하였다(우연히 이 성당의 수호성인과 이름이 같다). 비잔틴 사람들을 존중하여 교황은 이날 순회 전례를 이곳 아나스타시아 성당에서 하였으며, 미사 때 성녀 고유 기도문 대신에 성탄 기도문을 사용하게 되었다. 성모 대성당에서 밤미사를 마치고 성 베드로 대성당에 가는 도중 성 아나스타시아 성당을 지날 때는 새벽이었기 때문에 두 번째 미사는 새벽미사가 되었다.

 

교황청 전례서가 알프스를 넘어 북쪽으로 이동할 때 샤를마뉴 황제는 세 대의 성탄 미사도 함께 받아들였다. 그 뒤 이 풍습은 서방교회 전체에 퍼지게 되었다.

 

 

4. 성탄 축제의 몇 가지 요소

 

성탄 거행은 미사와 시간전례가 근본적이다. 그 밖에도 거행을 위한 장식, 신심을 위한 물건이나 행위 또는 다른 요소들도 거행을 돕는다.

 

1) 성탄 팔일축제: 성탄 팔일축제는 파스카나 성령강림 축제에 견주어 나중에 들어왔다. 오히려 공현 대축일이 먼저 팔일축제를 가졌다. 그러나 성탄 후 팔일째 되는 날, 1월 1일은 축일로 여겼다. 처음에는 이날을 “하느님을 낳으신 분” 축일로 경축하였다(로마의 마리아 축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어서 갈리아 전례의 영향으로 “주님의 할례”(트렌토 미사 전례서) 기념이 들어왔다. 새 미사 전례서는 이 축일이 지닌 마리아 성격을 되찾았다. 그리고 새 전례력에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성탄 다음 주일(또는 12월 30일)에 지낸다. 팔일축제 가운데 특히 성탄 다음에 오는 사흘은 대중의 인기를 누린 전통이 있다. 성 스테파노 축일은 부제들, 성 요한 복음사가 축일은 사제들, 무죄한 어린이들은 신학생들을 위한 축제로 여겨졌다.

 

2) 대영광송: 대영광송은 성탄 축제의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대영광송은 본래 미사 밖 기도에서 쓰던 찬가였으나 첫 구절이 성탄 밤 목동들이 들었던 천사들의 합창(루가 2,14)이기 때문에, 4세기 중반부터 교황이 거행하는 성탄 미사에 들어왔다. 6세기에는 주일과 순교자 축일 미사에서도 불렀다. 처음에 이 찬가는 주교만 시작할 수 있었으나 10세기에는 사제들도 할 수 있게 되었다.

 

3) 목동들의 기도: 과거에는 성탄 축제의 요소로서 “목동들의 기도(officium pastorum)”가 있었다. 성탄에 대한 예언, 주님의 탄생 예고,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에 도착함, 천사들의 찬가, 목동들을 부름과 같은 장면을 연극식 또는 대화식으로 구성하여 성탄의 놀라움을 강조하려 하였다.

 

4) 성탄 구유: 구유는 성탄 전례 교리와 사목에서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미 고대부터 구유에 관한 여러 가지 증거가 있다. 이미 오리게네스는 248년에 베들레헴 성당의 그리스도 탄생 동굴에서 있었던 예절에 대해 말하면서 구유란 말을 사용한다(첼수스 반박 1,51). 예로니모 성인은 성탄 강론에서 은으로 구유를 만들었다고 말하여 구유에 대한 신심이 널리 퍼져있었음을 증언한다(주님의 탄생 강론). 또한 로마 성모 대성당에 있는 구유 경당은 구유 신심이 이미 6세기부터 있었음을 확인해 준다. 또 성모 대성당 밑에 보존되어 있는 나무 조각은 12세기부터 예수 구유의 유물이라고 믿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전해지는 성탄 구유 풍습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서 유래한다. 이 성인은 1223년 그레치오에서 강생의 신비를 현실로 경축하고자 소박하게 구유를 만들고 나귀와 소도 놓아두었다(토마스 첼라노, 『프란치스코의 생애』, 30). 이후 프란치스코 회원들은 이 신심을 널리 전파하였다. 성탄 구유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직접 이해하게 도와주며 그분의 가난과 자기 비허(卑虛)에 대한 묵상에 집중하게 도와준다. 그러나 성탄의 파스카 의미, 곧 어둠에 대한 참 빛이요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승리는 덜 드러낸다.

 

5) 성탄 나무: 오늘날 유행하는 성탄 나무 장식의 기원과 뜻은 그리스도교에서 나왔다. 독일 지방에서는 12월 24일을 아담과 하와를 기념하는 날로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이때 ‘천국 나무’라고 말하는 작은 나무를 준비하고, 이 나무에 상징적으로 과일들을 달아놓기도 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과일 대신 ‘베들레헴 별’과 반짝이는 장식들을 달아 구유 옆에 놓아두게 되었다. 성탄 나무는 생명의 나무,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5. 성탄 축제 거행의 뜻

 

무엇보다 성탄 축제는 파스카 신비를 거행한다. 위에서 본 대로 처음에 성탄 축제는 전례주년 성인록에 들어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를 첫 순교자(증인)로 여겼다. 이러한 배경에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탄은 단순한 연례 기념일이기 때문에 성사의 특징을 지니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성사는 성찬례나 세례나 파스카 축제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우리 구원의 실재, 죽음과 부활의 표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 대 레오 교황은 설교를 통하여 성탄에 대한 전례신학을 세우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후 성탄이 성사임을 밝히는 미사 전례문들이 나타났다. 그렇지만 성탄이 파스카 신비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성탄은 우리를 파스카 신비와 만나게 한다. “성자의 탄생으로 저희 구원이 시작”(전야 저녁미사 예물기도)되며, 파스카 신비가 시작된다. 또한 성탄은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어 파스카의 신비를 더 잘 이해하도록 우리를 준비시켜 준다. 그리고 성자의 강생한 그 힘 때문에 우리에게는 파스카의 신비를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둘째, 성탄 축제는 빛의 신비를 거행한다.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이 태어나신 것은 빛이 나타난 것이라는 주제는 매우 오래된 것이며, 근본을 이룬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성탄 축제 거행을 통하여,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둠 안에 누워계신 베들레헴 동굴의 신비를 새롭게 이해한다. 동지가 상징하던 어두움을 빛이 이겼음을 묵상한다. 하느님께서 “찬란한 빛으로 이 거룩한 밤을 밝혀주셨다”(밤미사 본기도). 강생하신 성자는 “아버지의 광채시요 빛”(성탄시기 저녁기도 찬미가)이시고 “영원한 천주성의 찬란한 광명”(성탄시기 독서기도 찬미가)이시다.

 

전례 독서는 이렇게 기억한다.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입니다.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올 것입니다”(이사 9,1-2). 또한 성탄 이야기를 하면서 루가도 이를 기억한다. “주님의 영광의 빛이 그들에게 두루 비추면서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다”(루가 2,9). 이것이 밤미사 기도 특히 감사송에서 강조된다.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저희 마음의 눈을 새롭게 밝혀주시나이다”(성탄 감사송 1). 그리스도의 빛에서 계시가 밝혀지고 믿음의 빛이 온다.

 

셋째, 성탄 축제는 하느님께서 인류와 세상을 복구한 신비를 경축한다. 성탄은 원죄 이후 혼란스러워진 세상이 복구되기 시작하는 신비이다. 강생하신 말씀은 인간 본성에 결합되고 이를 통하여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결합된다. 그리하여 죄 때문에 깨진 하느님과의 친교가 올바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새 하와이고 천국의 새로운 땅인 마리아의 협력으로 인류와 세상, 역사의 복구가 시작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인성을 취하시고 가난한 이가 되시어, 추락된 육신을 일으키시고 당신의 모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옛 모상을 회복시키시며,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신다”(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강생하신 말씀은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이 세상을 축성하신다. 이제 모든 피조물, 역사, 백성들은 메시아를 바라본다. 모든 피조물은 구세주가 탄생한 기쁨에 참여한다. 성탄 감사송은 이 뜻을 담아 노래한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보이는 인간으로 나타나시고, 영원하신 분께서 이제는 이 세상에 들어오셨나이다. 그분께서는 타락한 만물을 당신 안에 일으키시어, 온전히 회복시키시고, 버림받은 인류를 하늘나라로 다시 불러주셨나이다”(성탄 감사송 2).

 

넷째, 성탄 축제는 “거룩한 교환(sacrosanctum commercium)”의 신비를 거행한다. 성탄 신학과 영성의 절정은 “거룩한 교환”(밤미사 예물기도, 성탄 감사송 3 참조)이란 표현으로 압축된다. 우리 구원을 하느님과 사람의 상호교환의 신비로 이해한다. 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에 나타난다. 말씀은 사람이 되시고 그분을 알아보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아들로 변할 수 있는 권능이 주어진다. 이것이 거룩한 경륜의 원리이다. 이를 통하여 사람이 하느님으로 변하도록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곧 사람은 말씀 안에서 다시 창조되고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고, 사람이 하느님 본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느님의 아들로 변하는 것이고, 인간의 것을 하느님의 것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탄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의 존엄성을 경축하고 새로운 출생을 경축한다. 성탄 감사송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면서 이 놀라운 교환의 신비를 요약한다. “오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친교의 길이 열렸으니, 말씀이신 성자께서 연약한 인간이 되시어, 죽을 인간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나이다”(성탄 감사송 3).

 

마지막으로 성탄 축제는 동정 마리아를 기억하는 아주 특별한 기회이다. ‘하느님을 낳으신 분(Theotokos)’은 구원에 협력하시며 성탄 축제에서 주역을 맡으신다(『마리아 공경』, 5항 참조). 그러므로 교회는 특별히 성탄 축제에서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신 어머니 동정녀를 묵상하고 경축한다. 이렇게 성탄 축제에 특별한 방식으로 교회는 마리아의 현존을 경축하고 공경하며(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영성체 후 기도 참조) 그분의 모범을 본받으려 한다(『마리아 공경』, 19.21항 참조). 더군다나 1월 1일 성탄 8일째 축제일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 축제를 지낸다.

 

 

6. 사목 제안

 

주님의 성탄 거행을 위해서 신자들이 하느님의 나타나심에 다가갈 수 있도록 전례 표현과 행위를 준비한다. 그리고 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덕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1) 깨어있음과 관상 분위기: 밤미사 준비는 맑음과 차분함과 주의 깊은 관상 분위기가 필요하다. 신자들이 신비에 다가가도록 준비하는 순간을 배려하는 것이 좋다. 신자들이 미사 전에, 성탄 대축일 독서 기도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하지 못한 신자들을 위하여 성탄에 관련된 음악과 음향, 시청각 도구를 쓰는 것도 유익하다. 특별한 민중 신심 행사는 이러한 준비에 끼워 넣을 수 있다.

 

입장은 성대하게 할 수 있다. 밤미사에서 행렬을 하는 동안 성탄 성가를 부르며 아기 예수님을 모시고 갈 수 있다. 회중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참회 행위를 하는 자리에 기쁨의 분위기를 간직하면서 구세주 탄생을 알리는 내용(구세주 탄생 역사)을 노래할 수 있다. 본문은 로마 순교록에 나오는 내용과 비슷한 것으로 하거나 거행 환경에 맞춰 활용할 수 있다. 이 알림 노래에 곧바로 성대한 대영광송 노래가 이어진다.

 

2) 아기 예수님 상과 입맞춤, 구유 안치: 공동체에서는 미사 거행을 마치면서 아기 예수님 상에 경의를 표시할 수 있다. 또는 구유나 적합한 장소에 모셔놓는 예식을 할 수 있다. 미사 거행이 끝나면 신자들은 형편에 따라 구유에 나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게 된다.

 

3) 구유 순례: 보통 성탄 구유에서 마리아는 항상 아기 예수님 가까이에 있다. 요셉은 조금 떨어져 있다. 그리고 말구유 가까운 곳에는 언제나 소와 나귀가 있다. 흔히 나귀는 무거운 죄를 지고 있는 이방인들을 표상한다. 소는 멍에를 메고 있는 유다인들을 표상한다. 나귀와 소에게는 다음의 성서 본문이 적용될 수 있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준 구유를 아는데”(이사 1,3). “너는 두 동물 가운데 드러나리라”(대중 라틴말 성서 역 하바 3,2).

 

미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구유 신심에서 강생의 신비와 관련된 복음을 듣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빼놓지 않도록 한다.

 

4) 선물 교환의 신비: 성탄 분위기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선물을 나눔으로써 봉헌을 강조할 수 있다. 또는 평화의 인사를 더욱 기쁜 분위기에서 할 수 있다.

 

 

7. 나가는 말

 

교회는 이교도 의식을 그리스도교 예식으로 바꿔가면서 고유한 기념 주기를 확립해 나갔다. 또한 부활 축제에 이어서 이렇게 성탄 축제를 확립함으로써 전례력 체계를 완성하였다. 곧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부활, 승천으로 이어지고 순환하는 달력 체계이다. 이렇게 교회는 그리스도의 삶과 신비를 기억하며 다시 살게 되었다.

 

한편, 주님의 탄생 축제는 문화로 변한 전례 축제라고 말할 수 있다. 성탄 축제와 관련된 상업주의 분위기가 축제의 본질을 흐리게 할 수도 있다. 교회 안에서도 성탄 축제의 알맹이보다 겉치레에 마음을 더 쓰면서 정작 중요한, 경축하는 신비의 내용은 잊을 위험이 있다. 성탄 축제가 생겨난 4세기에 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 축제를 그리스도교화했다면 현대 그리스도교 축제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세속 축제, 다시 말해 이교 축제로 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탄 축제는 또 한 번의 전환을 요청받고 있는 셈이다. 

 

갓 태어난 그리스도교가 살던 로마 제국은 수많은 문화들이 녹아든 거대한 용광로와 같았다. 교회는 이러한 로마 문화 요소들을 파괴하거나 없애지 않고 고치고 바꾸어 ‘하느님의 문화’로 변형시켰다. 성탄 축제 자체도 이교도 축제에 그리스도교 ‘세례’를 베풀었던 본보기이다. 한국교회는 어떤 요소들에 세례를 주어, 성탄 축제에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목, 2004년 12월호, 심규재(작은형제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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