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축일] 수호 천사 기념일(10월 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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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8-01-10 | 조회수3,970 | 추천수0 | |
[이 달의 전례] 수호 천사 기념일 (10월 2일)
전례적 개관
“세례 받은 모든 사람은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임명된 천사를 가진다.” 이 가르침은 성서와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사도행전(5,19;12,7-15), 히브리서(1,14), 복음서(마태 18,10)는 천사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교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가 그 증인들이다. 수호천사에 대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는 우리 신앙 안에서 의무적으로 정의된 가르침은 아니다. 천사에 대한 가르침은 교회의 기도 유산과 신심에서 나온 가르침이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가르침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교회의 축일표 안에서 수호천사 기념일이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자리 잡지는 않았다.
레오 10세 교황은 스페인의 로데즈 주교가 정한 수호천사 축일을 인준했지만, 비오 5세 교황은 미사경본(1570년)에서도, 성무일도 안에서도 수호천사 축일을 명시하지 않았다. 그레고리오 8세 교황은 1582년 발렌시아 교구에 수호천사 축일을 허락하였고, 바오로 5세 교황은 1608년 전 교회에 수호천사 축일을 지내도록 명했다. 또 클레멘스 9세 교황은 1667년 페르디난도 2세 황제의 청원에 따라 그의 제국에 9월 첫 주일에 수호천사 축일을 지내도록 명했으며, 클레멘스 10세 교황은 다른 교회들에 10월 2일에 이 수호천사 축일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비오 10세 교황에 이르러서야 10월 2일을 일반적인 축일로 정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의 전례력 개정에서는 이 날을 의무 기념일로 하여 존속시켰다.
묵상 (마태 18,10)
오늘날 누가 천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전혀 상반된 극단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천사라는 존재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나 아동극에 등장하는 대상으로 여기거나 또는 천사라는 단어를 사랑스럽거나 남을 즐겨 도와주는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씁니다. 어떻든 일반적으로 천사는 지난 시대, 중세 그리스도교와 그 이전의 다신교 문화의 잔재나 유물로 여깁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과도한 천사 공경과 신심이 유포되어 올바른 신앙에서 벗어난 그릇된 신심을 전파하는 일단의 추종자들도 있습니다.
교회의 신앙은 위의 두 가지 극단적인 형태를 거부합니다. 천사가 존재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은 예부터 교회의 신앙에 속했습니다. 또한 천사는 그 본성상 온전히 영적이며 죽지 않도록 창조된 존재라는 점 또한 교회의 신앙에 속합니다. 중세기의 신학자들은 즐겨 천사의 존재와 본성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켰으며 오늘날 우리에게 내려오는 사변적인 이론들을 내세웠습니다.
성서는 우리가 천사들의 존재와 그 임무에 대해 알게 해줍니다. 성서가 천사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구약성서는 천사들이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거룩하시다’라는 외침을 알고 있으며, 신약의 교회는 이 환호를 전례에 받아들였습니다. 구약성서는 또한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에서 인간에게 행하는 천사의 임무와 다양한 파견을 알려 줍니다.
신약성서 또한 구약성서와 같은 관련성 안에서 천사의 존재를 알려 줍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선구자 요한에 관한 소식을 전해 주며 마리아에게 기쁜 소식을 전달합니다. 요셉은 천사의 지시에 순응하며 예수님 탄생 때 천사들의 합창은 오늘날까지도 교회가 ‘대영광송’ 안에서 노래합니다.
하느님의 영이 예수님을 40일간의 고행을 위해 광야에로 인도하실 때 천사는 예수님을 동행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또한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예루살렘 부인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세상의 완성 날, 곧 세상 종말 때에 천사들은 주님 곁에서 임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미사의 감사기도 제1양식에서 교회는 “전능하신 아버지, 간절히 청하오니 거룩한 천사의 손으로 이 제물이 존엄한 천상 제단에 오르게 하소서.”하고 기도합니다.
구약과 신약성서에 나타난 이 같은 증언은 천사의 존재를 유치한 사고방식으로 몰아붙이는 경향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성서의 증언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군주들과 세력, 권세와 제왕들 위에 자리하신 주님이심을 확립하길 요구합니다.’ 사도 바울로의 로마서 말씀은 이와 같은 성서의 증언들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고 있습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그러나 무엇보다도 천사에 관한 예수님 자신의 말씀이 우리를 고무시킵니다. “너희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마태 18,10)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신학적인 사변의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본뜻은 전혀 다른 데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작은이들에 대한 멸시의 거센 물결을 체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생명의 고귀함을 과연 올바르게 인정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과도한 수호천사 공경이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곧 세상에서 도외시되거나 경시 또는 무시당하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는 하느님 안에서 확실하게 보호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작은이들의 권리에 대해 약속하거나, 그들의 권리를 보증해 줄 수 없습니다. 작은이들, 잊혀진 사람들, 멸시받는 이들의 권리는 하느님 안에서 비로소 보증하고 보호받습니다.
이 같은 기본 확신이 오늘날 더 이상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를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우리가 그 대변자가 되어야 하고 태어나지 못하고 죽어 가는 태아들의 권리를 부르짖어야 합니다. 생명의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짧은 순간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결코 어떤 문제도 풀지 못합니다.
수호천사를 생각하는 교회력의 기념일은 단지 과도한 천사 공경을 촉진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 구원을 위한,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깨닫게 하는 데 있습니다. “너희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마태 18,10)
[월간 빛, 2005년 10월호, 최창덕 F. 하비에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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